내가 어렸을 적 아빠는 과묵한 편이었는데 술을 마시고 오면 평소보다 말이 많아졌다. 얼큰하게 취한 날이면 길거리에서 사 온 꽈배기 같은 걸 봉지에서 꺼내놓고 나와 동생들을 당신 앞에 앉혔다. 그리고 불콰한 얼굴로 '아빠는 어렸을 적에- '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레퍼토리는 비슷했다. 비가 많이 와 집까지 헐레벌떡 뛰어 돌아왔는데, 할아버지가 양반은 뛰어다니는 거 아니라고 크게 혼났던 이야기, 혼자 목포항을 타고 제주도에서 친척 형이 운영하던 공장의 빵을 팔았던 이야기, 가끔은 부산에 처음 과일 장사를 하러 왔을 때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백구두에 폼나는 옷을 갖춰 입고 팔았던 무용담도 있었다. 몇 번이나 들었던 내용이라 외울 지경이어서 나는 가끔 아빠의 말을 뺏어 뒷이야기를 빨리 요약해버리는 맹랑한 짓도 했다. 대개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지만. 시계를 보면서 '곧 <토요미스터리 극장> 시작하는데'하며.
대충 아는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마지막에는 몇 가지 당부를 했다. 자기가 죽으면 화장하지 말고 꼭 산에 묻어달라고 했고, 나중엔 시골에 내려가 혼자 살 거니 찾지 말라고도 했다. 혹시 누군가에게 맞으면, 맞지만 말고 한 방 먹여주라는 조언도 있었다. 그러다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마무리했다.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라. 안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공부에 대한 유일한 조언으로 기억한다. 하면 된다, 최고가 되어라, 더 열심히 해라도 아니고 그냥 '하는 데까지만 하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 하는 데까지만 할게'라고 무뚝뚝한 부산 사투리로 답했다. 아빠는 그래, 그래야 내 딸이지, 하며 호탕하게 소리 내며 웃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 마음 한구석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어디까지인 걸까'
할 수 있는 데까지라는 건 결국 최선이라는 말과 다를 게 없었다. 최선을 다하라.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최선인가. 어느 정도를 하면 이만하면 됐다고 만족을 할 수 있는 걸까. 나의 능력이 눈에 보여서 한계를 알고 싶었다. 그러면 그만큼만 하면 되니까. 최선에는 한계가 없어 보였고 오히려 극한으로 자신을 밀어붙여야 하는 건 아닐지 고민했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막막했다.
일종의 격려였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아빠는 마음을 편하게 먹으라고 했던 말일지도 몰랐다. 부모님에게 공부로 잔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었고,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다.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학원을 보내주었고, 그만두고 싶다고 하면 그만두게 해 주었다. 단과학원 역시 친구와 놀고 싶어서 내가 먼저 부모님께 다니고 싶다고 했다. 고등학교 진학이나 대학교 진학, 일본 유학도 그렇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부모님께는 말씀을 드렸다. 이렇게 하고 싶은데 괜찮냐고. 부모님은 항상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나의 선택에 유일하게 건네는 말은 '할 수 있을 데까지만 해라. 안되면 어쩔 수 없지'였다. 아빠는 늘 말했다. 나의 최선은 어디까지인 걸까. 그럴 때마다 '최선'이란 단어가 녹지 않는 돌멩이처럼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결국 나는 답을 찾지 못하고 부모님 곁을 떠났다.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산 지도 15년이 넘었다. 더 이상 공부를 하는 학생도 아니게 되었고, 아빠에게 저 말을 듣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그런데도 그 말은 잊을만하면 머릿속에서 살아난다.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라. 안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소설을 배우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깊은 바다를 헤엄치듯 자주 허우적거렸다. 소설은 예전 내가 알던 글쓰기의 세계와는 달랐다. 쓰면 쓸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고 재능의 영역이 아닐까 낙담했다. 소설 한 편을 며칠 만에 손쉽게 써내는 것처럼 보이는 문우들이 부럽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했다면. 서른 중반에 소설가가 된다는 게 애초에 너무 늦은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좋아해서 시작한 소설이었지만, 고통스러운 구석이 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남편의 말처럼 요즘 나는 소설을 쓰려고 책상에 앉아 있기 전부터 온몸을 배배 꼬았으니까. 그 말이 맞았다. 예전 습작을 하지 않고, 그냥 작법서를 읽을 때는 소설 쓰기가 오히려 쉬워 보였다. 그렇군, 이렇게 하면 된다 말이지. 언뜻 머릿속으로 이해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첫 번째 습작, 두 번째 습작까지도 즐거웠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흐르고, 소설을 보는 눈이 예전 같지 않아 지자 더 이상 쉽게 느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캐릭터, 사건, 배경, 주제 이 네 가지가 잘 어우러진 소설이 좋은 소설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직접 소설이란 것을 쓰게 된다면, 그런 균형 잡힌 소설이란 환상 속 유니콘처럼 느껴질 것이다. 마치 바이올린 연주와 비슷하다. 머릿속에는 선명하고 아름다운 음이 떠오르고,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처럼 활을 그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막상 바이올린을 손에 들어 왼쪽 어깨와 목 사이에 끼운 다음 활을 켜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그렇다면 나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인가. 현재 상태에서 그냥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면 되는 것이다.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한다는 건. 나의 지금 상태가 어떤지를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나에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있고, 그걸 얼마큼 쏟아부을 수 있는지. 하루에 몇 자를 쓸 수 있는지, 어떤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고, 또는 무엇을 그만둬야 하는지. 그런 다음 그저 남은 시간만큼 하면 그게 '하는 데까지'가 되는 것이다.
그런 객관적인 파악 없이 지금 실력보다 잘 쓰려면 고통스럽고 힘들기만 할 뿐이다. 잘 쓰려고 애쓰는 마음이 현재의 나의 상태와 이상 간의 괴리를 만든다. 초보는 초보처럼 하면 된다. 그게 초보의 최선이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안되면 말고' 정신은 마음을 가볍게 한다.
어렸을 때는 그 말에 대해서 고민했지만, 지금은 그 뜻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주어진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서 포기하지 않고 마무리하는 것. 결과물이 아쉬워도 어쩔 수 없다. 그만큼이 나의 최선이었으니까. 지금의 최선을 다하면 된다. 그리고 다시 복기하면 된다. 동일했던 시도에 대해서,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 아쉬운 점과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아쉬워도 어쩔 수 없다. 할 만큼은 했으니까.
오늘 소설 수업에서는 합평이 이루어질 것이다. 나는 소설의 출발점과 어떤 의도를 가지고 썼는지를 모두에게 말할 것이고, 소설을 읽은 문우들은 장점과 보완점을 말할 것이다. 나는 지금 쓰고 있는 내 수준에 대해서 받아들일 것이다. 그래야 그다음이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는 나는 이 말을 스스로 되뇌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무거웠던 이 말이, 이제야 나를 격려하고 따뜻한 말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의 어떤 말은 먼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의미가 닿을 수도 있다고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