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동안 사귀면서 우리는 내가 당첨된 이벤트 티켓으로 자주 데이트했다. 그때마다 남편은 놀란 눈으로 물었다.
"이게 어떻게 당첨이 된 거야? 나는 해도 안 되던데"
한 번은 그의 생일 축하 겸 강원도에 여행을 갈 계획을 세울 때였다. 그 시기에 나는 우연히 주택청약으로 아파트가 당첨되었고, 모델하우스 오픈일과 여행일이 겹쳤다. 그래서 남편의 손을 잡고 강원도에 가기 전 둘이 모델하우스에 보러 갔다. TV에서 볼 법한 반짝반짝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모델하우스를 보면서 역시, 너는 운이 좋다니까 라며 그는 중얼거렸다.
게임 뽑기 운도 좋고, 간단한 주사위 게임에서도 제법 잘 이기기까지 하니, 남편은 나를 운빨로 세상을 사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우리 가족 역시 내가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스스로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나도 동의한다. 살면서 운이 없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도 하고, 가끔 던져지는 행운에 놀란 적도 많다. 운은 좋다고 말하면 말할수록 좋아진다고 여기는 것도 내 삶의 가치관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니 없는 행운이라도 끌어모아야 할 로또 같은 이벤트에 시큰둥한 나를 보면서 툴툴거리는 것이다.
가끔 남편 손에 이끌려서 로또를 산 적도 제법 된다. 그는 로또 판매점에 데려가 나에게 돈을 쥐여준다. 나는 느낌 가는 대로 수동으로 번호를 고르거나, 주인에게 자동이요, 하고 돈을 건네준다. 주인에게 건네받은 로또 종이는 한 장씩 나눠 가진다. 나는 종이를 반으로 고이 접은 뒤 지갑에 넣는다. 그리고 발표날이 되면 남편과 함께 맞춰본다. 4등이 되었을 땐 돈으로 바꿔 동생에게 용돈을 주거나, 추석 때 친척들에게 5천 원 로또 한 장씩 선물로 주었다. 5등이 되면 다음 회차 로또로 바꿨다. 그러나 스스로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돈을 내고 사본 건 손에 꼽는다.
한 번은 지인이 로또를 거의 매주 산다고 들었을 때 놀란 적도 있다.
"로또를 사면 일주일간 이런저런 상상에 행복해져. 집도 마련하고, 차도 사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면서 행복회로를 돌리는 거지. 일주일간 행복한 상상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지 않니?"
나는 과연 그렇군 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미래에 대한 로망이 없는 건 아니다. 남편에게 좋은 차도 사줄 수 있으면 좋겠고,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을 갈 때 돈을 모두 댈 수 있으면 좋겠다. 주택 담보 대출도 갚고, 하와이나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할 수도 있으면 좋겠다. 캐나다에서 오로라를 보면 좋겠다. 로또 1등만 되면 버킷리스트의 대부분은 해결되고도 남았다. 그런데도 왜 사지 않는 걸까? 나는 로또에 대해 왜 이다지도 심드렁할까.
생각해 보니 그다지 복권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닌듯하다. 스크래치 카드 형태의 복권은 사 본 기억이 몇 번 있다.
어린 시절 엄마는 과일 가게를 했는데, 밤이 되어 손님의 걸음이 뚝 떨어지면 나에게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넸다. 나는 그 돈을 들고 가서 근처 슈퍼 아저씨에게 찾아갔다. 그리고 긴 스크래치 카드를 펄럭이며 가게로 뛰어갔다.
엄마는 앞치마 깊숙한 곳에서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꺼내주었고, 나는 스크래치 카드의 반을 엄마에게 건넸다. 나는 무릎을 꿇고 의자에 놓인 스크래치 복권을 긁었다. 일부러 스크래치 껍질은 천천히 긁었는데, 숫자를 하나씩 맞춰보는 게 좋았다. 복권은 3개의 똑같은 금액이 쓰여 있으면 그 금액이 당첨되는 단순한 구조였는데, 5장의 스크래치 카드 중 운이 좋으면 2, 3개가 당첨되곤 했다. 그러면 다시 슈퍼로 달려갔다.
"또 걸렸어? 운이 좋네"
그럴 때마다 슈퍼 아저씨가 넉살 좋은 웃음을 띠며 새로운 복권을 건네주었다.
우리는 전부 꽝이 되기 전까지 그 일을 반복했다. 마치 한번 뜯으면 멈출 수 없는 맛있는 쿠키를 먹는 것 처럼.
그러보니, 오빠와 스페인으로 신혼여행 갔을 때도 스크래치 복권을 산 적이 있다. 세비아에서 레스토랑에서 늦은 점심을 와인과 곁들여 먹고 오빠와 나란히 걷고 있을 때였다. 길거리에 ONCE라고 적힌 초록색 스크래치 카드가 다닥다닥 붙여져 있는 간이 가판대가 보였다. 나는 멈춰 서서 오빠에게 말했다.
"복권 사자"
오빠와 나는 지갑을 열어 동전을 모았다. 그리고 가판대 주인에게 5유로를 건넸다. 그는 줄줄이 달린 스크래치 복권을 뚝 하고 뜯어 건네주었다. 2유로짜리 두 개와 1유로짜리 한 개였다. 나는 그걸 건네받아 바로 긁었는데, 신기하게도 5등 당첨이었다. 나는 다시 복권을 교환해 손가방에 넣어둔 뒤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복권이 생각난 건, 말라가로 떠날 때쯤이었다. 말라가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올리브 숲을 지나갈 때 스크래치 카드가 떠올랐다. 나는 가방을 뒤져 스크래치 복권을 꺼냈다.
"뭐야. 또 걸렸어? 우리 이러다가 스페인에서 부자 되는 거 아냐?"
당첨된 복권을 말라가에서 바꿨다. 하지만 다음은 꽝이었고내 일기장에 가져다 붙였다.
어라, 또 생각해 보니 다른 복권도 산 적이 있다. 유학 시절 일본에서 연말에만 살 수 있는 점보 복권이었다. 1등은 2억 엔을 받을 수 있는데 흥미롭게도 당첨자는 1명이 아닌 2명을 뽑았다. 나는 추운 겨울 후쿠오카 텐진에서 파르코 앞 가판대에서 점보 복권을 샀다. 300엔짜리 복권은 밤하늘에 눈사람이 이끄는 썰매를 타고있는 가족그림이 그려져있었다. 썰매에는 '2011'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고 가족들은 선물을 공중에 뿌리며 웃고 있었다.
복권을 집에 들고 가 뒷면에 이름과 일본 주소, 휴대폰 번호를 정성스럽게 썼다. 그리고 지갑에 한동안 부적처럼 넣고 다녔다. 해가 지나고 당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푸른색 투명한 비닐을 벗기지 않은 채로 지갑에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그 복권은 여전히 가지고 있다.
어쩌면 나는 복권을 싫어한다기보다는 로또 6/45의 형태에 로망이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돈을 건네주고 받는 정사각형에 영수증처럼 숫자가 박힌 종이가 무척 단조로워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물론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테지만, 나에게는 의외로 눈에 보이는 게, 그런 형태가 중요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