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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Oct 05. 2023

최초의 방

초등학교 8살 때였다. 우리 가족은 원래 살던 주택에서 나와 아파트로 이사를 한 것은. 부모님의 첫 내 집 마련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새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였는데 복도식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왼쪽으로 꺾자마자 보이는 집이었다.


난생처음 나만의 방이 생겼다. 방문을 열면 왼편에 민트색 책상이 있었다. 기다란 책상 위에는 유리 덮개가 얹어져 있고, 초록색 잔디같이 까끌까끌한 시트가 유리 아래에 깔려있었다. 왼편에 책장도 붙어 있었는데,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높았다. 방 안쪽에는 침대가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방이 꽉 찼었다. 상과 의자가 있었고, 푹신한 침대도 모두 새것이었다. 가족들이 밥을 먹을 때 쓰는 작은 상을 꺼내 엄마가 다리를 펴주면 거기서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더 이상 그럴 필요도 없어졌다.


나는 침대 위로 올라가 마음껏 뛰었고, 의자에서 빙글빙글 돌았고, 책상 위에 손바닥만 한 세일러문 프리즘 스티커를 붙였다. 아직 새 가구 냄새가 빠지지 않은 책상 유리 덮개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리고 책상에 얼굴을 대자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난생처음 생긴 이 특별한 공간을 어떻게 해야 더 멋지게 꾸밀 수 있을까, 더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올 때 동네에서 가장 큰 문방구에 들렀다. 빽빽이 꽂혀있는 볼펜과 옷 꾸미기 스티커 코너를 지나 더 깊숙이 안쪽으로 향했다. 값이 나가는 장난감 상자들이 쌓여 있는 곳이었다. 나는 전에 봐두었던 상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비상금을 꺼냈다. 문방구 주인아줌마는 돈을 센 다음 거스름돈을 건네주었다. 나는 박스를 품에 안고 쉬지 않고 뛰어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여니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가방을 의자에 걸어놓고 바닥에 앉아 상자를 뜯었다. 상자 안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야광별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나는 야광별을 하나씩 바닥에 늘어놓았다. 별, 행성, 초승달, 별똥별. 내가 원하는 것들은 다 들어 있었다.


플라스틱별을 집어 뒷면에 붙여진 테이프 비닐을 뜯어냈다. 침대 위로 올라가 손을 뻗은 채로 높이 뛰었다. 그러나 천장까지 손이 전혀 닿질 않았다. 여러 번 시도하다 지친 나는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할까 망설였지만, 혼이 날까 봐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의자를 침대 위로 올린 다음 의자를 밟고 올라섰다. 천장에 손이 닿았다.

야광별을 하나씩 붙이기 시작했다. 가장 많은 별 모양을 듬성듬성 천장에 붙이고 엄지손톱만큼 작은 동그라미별들을 사이사이에 넣었다. 그리고 손바닥만 한 초승달을 변두리에 붙이고 나니 땀이 삐질 났다.


아껴뒀던 토성 모양까지 머리 위쪽에 붙이고 나자, 천장은 별로 가득 찼다. 나는 별들이 잘 떨어지지 않도록 플라스틱 끝부분을 한 번씩 꾹꾹 누른 다음 침대에서 내려왔다. 이마에 땀이 흘러내렸다.

방문을 닫고 불을 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사이로 천장에서 밝은 별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꺾은 채로 한참 별들을 바라보았다. 별똥별, 달, 그리고 행성들. 내가 시선을 맞출 때마다 별들이 더 환하게 반짝이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천천히 손을 더듬어 침대 쪽으로 다가가 누웠다. 그때였다. 비로소 온전한 나만의 공간을 가지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은.     




대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였다. 방학이 되어 부산에 내려갔는데 엄마가 물었다.

"우리 예전에 살았던 아파트 있잖아. 마침 두 달 정도 비게 되었거든. 거기서 미희랑 공부 좀 하는 게 어때?"

부모님은 내년에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여동생이 신경 쓰였던 것 같고, 나도 마침 교환학생을 준비로 일본어 공부를 하던 참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한 짐만 챙겨 아파트에 도착했다. 아파트 외벽은 페인트칠이 곳곳에 벗겨져 있었다. 1층에는 하품을 하는 경비원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는데 나는 무언가 들킨 사람처럼 어색하게 로비를 지나쳤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니, 덜컹거리며 문이 열렸다.


9층 버튼을 누르며 나는 동생에게 말했다.

"예전에 말야. 9층 누르면서 아파트가 나보다 한 살 더 많다고 생각했다?"

"그게 뭐야?"

동생이 쿡쿡 웃었다.

"어렸으니까. 그게 신났나 보지"


복도는 예전보다 훨씬 좁아 보였다. 자전거 두 대가 항상 놓여있던 옆집은 이제는 작은 화분이 놓여있었다.

문을 열자 싸구려 방향제 냄새가 났다. 우리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 바닥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주방 싱크대와 가스레인지는 처음 보는 것이었고, 화장실 타일에는 모르는 캐릭터가 붙어있었다. 내 방은 닫혀있었다. 반쯤 지워진 캐릭터 스티커가 붙여진 문을 보니, 어쩐지 열고 싶지 않았다.


"많이 변했다. 그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실 한가운데에 짐을 풀고 가져온 책들을 쌓았다. 낮은 책상을 펼쳐놓고 마주 보고 앉았다. 나는 일본어 단어를 외웠고 동생은 수능 문제집을 풀었다. 평소에 보았던 단어들인데 이상하게 집중되지 않았다. 얼마 못 가 책을 덮고 거실 바닥에 벌렁 누웠다. 그러다 시선이 작은 방문으로 갔다. 저기서 난 만화책을 보고, 그림을 그리고, 연애편지를 쓰곤 했었지, 라며.


저녁에는 부모님이 찾아왔다. 엄마는 음식과 이불을 내려놓고 나서는 아빠에게 받은 돈을 건네주었다. 회사에서 장학금이 나온 거라며 한달  생활비로 쓰라고 했다. 나와 동생은 저녁밥까지 먹고 공부를 조금 하고 거실에서 각자 휴대폰을 만지다가 결국 자기로 했다. 누가 먼저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예전에 잠을 잤던 방으로 들어갔다.


닫혀있던 방문을 열었다. 나는 불을 켰다. 노랗게 바랜 벽지가 보였다. 하지만 예전 벽지와는 달랐다. 그곳엔 민트색 책상도, 의자도, 침대도 없었다.

나는 예전 침대가 있었던 자리로 이불을 깔았다. 그리고 불을 끄고 누웠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쳐다봤다. 아무것도 없는 천장이었고, 캄캄한 어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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