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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경희 Jul 26. 2021

순수함 가득 라오스

라오스 수도 비엔티앙/루앙프라방/방비앵에서 만난 행복

2018년 2월, 교육전문직 동기 10여 명과 라오스 북부지역에 가게 되었다.  메콩강의 젖줄 따라 발달된 수도 비엔티안, 액티비티 한 방비앵, 우아한 루앙프라방 여행에 들떴었다. 인도차이나의 슬픈 진주로 알려진 나라, 바다를 만나지 못하는 내륙국가 라오스이다.

 인구 680만 명 정도이며, 면적 23만 km². 한반도보다 조금 크지만, 열쇠 형태이며,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국토의 70% 산지에서 발원한 강은 4,500Km의 장대한 메콩강으로 흘러든다. 열대 몬순 기후 지역이라 우기에 해당하는 여름에는 비가 많이 내리지만 겨울은 건기라 여행하기에 좋다. 연평균 기온은 22도에서 27도 정도이다. 2월은 여행하기에 딱 좋다.


라오스 국가와 북부 도시



5시간 정도 비행 후 왓따이 공항에 밤늦게 도착, 2시간 느린 시차를 맞추고 밖으로 나오니 열대기후 지역답게 후덥지근하다. 라오스 문자로  ສະບາຍດີ, 사바이디!라고 읽는데 우리말로 안녕하세요? 인사말이다. 라오스 문자는 태국어와는 또 다른 모양이다.  자국민 일자리 창출 보호정책으로 현지인 가이드를 동행해야 하는데, 최고의 직업이 공무원, 다음이 가이드라고 한다. 공항에서 반겨주는 현지인 가이드 차림이 생각보다 괜찮았다.  


왓따이 국제공항


어디서 본듯한 느긋함과 순수함이 묻어나는 사람들이 열대 밀림과 메콩강에 평화롭게 모여사는 곳이 라오스이다. 조금 불편할 뿐  순박하게 살아가는 라오스의 국민 1인당 GDP가 700달러에도 못 미치고, 평균 수명은 53세를 밑돌며, 문맹률은 인구의 절반이나 된다. 의료 , 교육 , 문화시설은 열악하며 아직도  유상 · 무상 원조에 의존하고 있는 가난한 나라이다. 그런데, 뉴욕타임스는 왜 이런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라오스를 꼭 가봐야 할 나라 1위로 꼽았을까?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을까?


비엔티앙-산지앙 그랜드호텔


너무 늦은 시간이라 바로 호텔로 들어가 다음날, 아침 일찍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니 나의 살던 고향의 모습이었다.  열대 과일로 조식을 마치고 바로 향한 곳은 비엔티앙의 사원들. 라오스 북부는 4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주변국들로부터 침략이 많았던 나라다. 와중에 불교 사원의 80%는 전쟁으로 소멸되었고 20% 정도만 유적으로 남아있다. 불교 국가라 거리 곳곳에 화려한 사원들이 많이 보였다.


란쌍대로 대통령궁


먼저, 란쌍대로에 위치한 대통령궁 앞에 내렸다. 1893년 프랑스가 라오스에 총독 관저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 우아한 프랑스 건축 스타일의 저택이다. 황실의 거주지로 공사가 재건되었으나 1975년 빠뎃 라오 공산혁명 세력 집권 후 11년 동안 완공되지 못했다. 일반인에게는 공개하지 않으며, 국가적인 행사에만 종종 사용된다. 대통령궁 왼쪽 에메랄드 사원으로 알려진 왓호파케우 사원과 맞은편에 있는 비엔티안에서 가장 오래된 왓 시사켓 사원으로 향했다.


대통령 궁 옆 호 파케우 사원


왓 호 파케우 사원은 세타리랏왕이 1565년 수도를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안으로 옮길 때 에메랄드 불상을 모시기 위해 지은 왕실 사원이었다. 그러나 1779년 태국이 비엔티엔을 점령하여 건물이 불타고, 에메랄드 불상도 태국으로 약탈당해 지금은 대불이 모셔져 있다. 현재의 사원은 1936년 프랑스 식민지 시절 복원되었다. 본당은 왕실의 불교행사를 치르던 곳이었으나, 현재는 라오스 각지에 흩어져 있던 불상을 전시해 놓았다.


쟈르 평원에서 옮겨온 돌 항아리와 나무에 새겨진 조각을 둘러보고 정원이 아름다운 호 파케우 사원 안으로 들어가려니 입구 양쪽에 뱀머리가 조각되어 있다. 캄보디아에서도 봤던 뱀 모양이다. 불교에서 경전을 수호하는 물의 신으로 여겨지는 'Naga'라고 불린다. 입구에 두 손을 내밀고 서있는 여신상,  건물의 지붕과 벽면에 정교하고 섬세한 조각장 식이  눈길을 끌었다. 건물 회랑에도 각지에서 모셔진 좌불상이 줄지어 있고 후면에 서있는 불상이 아름답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회랑 사이로 안치된 불상에도 빛이 머문다.


아침 햇살 받는 회랑의 불상


파케오로 불리는, 에메랄드 불상은 인도에서 만들어져 오랜 역사 속에서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 라오스를 거쳐 다시 태국으로 돌아갔다. 특히, 라오스의 마지막 왕 아누웡은 현재의 라오스 지역에 18세기까지 존재했던 란쌍왕국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달성하려고, 1826년 태국과 전면전에 돌입했었다.

아누웡은 1827년 수도 방콕 근처까지 진격했으나 태국 북동부 우돈타니 전투에서 대패하였고, 태국군이 비엔티안까지 진격하여 도시를 초토화하면서 전리품으로 에메랄드 불상을 가져갔다. 아누웡이 도망치자 태국은 비엔티안의 모든 사찰을 파괴하고 라오스를 피로 물들였고, 소식을 들은 왕이 직접 태국의 왕을 찾아가 용서를 구했으나, 포로가 되어 방콕으로 끌려가 돼지우리에 갇혔다. 손목마저 잘리고 입으로 돼지죽을 먹다 비참하게 죽게 되자 그때서야 측은히 여겨 라오스 침공을 멈추게 되었다고 한다.  

 

옥으로 만들어진 에메랄드 불상이 있을 때 ‘왓 파깨우’라고 불렸으나 지금은 ‘호 파케우’라고 불린다. 사원 이름에 왓들어있지 않는 사원은 스님이 없는 사원이라 한다. 음 그러니까!! 방콕의 왕궁사원에서 봤던 태국 국보 1호 에메랄드 불상이 바로 라오스에서 모셔진 것이었군!!!


왓 씨사켓 입구
왓씨사켓 사원


길 건너 맞은편, 1824년에 건립된 왓씨사켓 사원으로 들어가니 붉은 장삼을 걸친 스님들이 눈에 띈다. 비엔티안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사원인 만큼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황금빛 회랑의 기둥들이 법당을 둘러싼 ㅁ형태의 태국 양식으로 1818년 건축되었다. 건축 양식 덕분인지 19세기 초태국과의 전쟁으로 수도 비엔티안이 모두 전소된 상황에서 유일하게 위기를 모면한 곳이다. 이곳을 태국 군대의 본부로 사용되기도 했다. 1829년 화재로 인해 불타고 현재의 모습은 1935년 프랑스인들이 복원했으며, 태국의 사원들과 유사한 모습이다.


왓씨사켓 회랑 감실의 불상들


왓씨사켓은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라오스 고대 사원 중 하나이다. 대법전을 감싸고 있는 외부 건물의 회랑 벽면 감실에  6,800여 개의 작은 부처상들이 빼곡히 위치해 있다. 은과 도자기로 만든 불상이  2.000개 이상 보관 중이다. 감실이 있는 벽면 앞쪽에는 청동 좌불상 외 목이나 몸통이 잘려나간 상처 입은 불상들이 있어 전쟁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수많은 벽감의 불상에게서 경건함이 느껴진다. 목조기둥을 가까이 보니 세밀하고 정교한 조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법전 내부의 탁발 행렬 묘사 및 불전이 벽화를 살펴보고, 나가는 쪽에 공명 장치로 소리 나는 북이 있어 손으로 만져보니 신기하다. 사원 벽면에 hanghod 라는  Naga신을 조각한 나무통이 있다. 축제 시 불자들이 승려와 불상의 머리에 향을 섞은 물을 붓는 데 사용하는 도구라고 한다. 담장을 따라 사리탑들이 줄지어 서있는데, 그중 부유한 사람들의 납골당은 화려하게 세워져 있다. 재미있는 건축물과 다양한 불상들이 있어 독특함이 느껴졌다. 사원을 나오면서 라오스 전통복장을 한 화려한 생김새의 마그네틱을 샀다.


왓 시므앙 사원


근처, 어머니의 사원이라고 부르는  서민적인 왓 시므앙 사원이 있다. 입장료가 없어서 이곳 주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며, 일상적인 소원을 빌 때 찾는 곳이라고 한다. 란쌍왕국 시절인 1563년, 크메르 사원 터 위에 지어질 때, 임산부가 신에게 제물로 바쳐졌다는 전설이  있다. 그 여인의 이름인 시므앙이어서 사원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사원은 크지 않으며 공간이 둘로 나뉘어 있는데 앞쪽은 스님들이 복을 축원하거나 기도하는 곳이고 뒤쪽에는 불상과 탱화들이 모셔져 있다. 사원의 바깥쪽에도 와불과 금부처 등의 여러 불상이 있다.

사원에서 스님이 손목에 실을 묶어주며 축원을 하는 마텐 의식을 해주는데 휴일에 가족들이 찾아와 손목에 색실을 묶고 있다. 실이 자연적으로 끊어질 때까지 손목에 차고 있으면 장수한다고 한다.


뱀의 머리 9개 달린 불상


보리수 아래 부처님 머리 위 9개의 머리가 달린 힌두교의 물의 신, 혹은 뱀신 나가라자가 불교를 만나는 과정을 보여주는 불상이라고 한다. 꼬리 9개 달린 여우가 아닌 머리 9개의 뱀에서 히드라가 떠오른다. 불교의 정신을 잘 모르지만, 어떤 유혹과 두려움에서도 정진할 수 있다는 내면의 힘을 보여주는 듯하다. 새로운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하고 싶은 일 도전하라는 용기와 호연지기의 기상을 일러주는 듯하다.  


셋타리랏왕의 조각상


비엔티안에서 멀지 않은 반 농본 마을에 위치한 탓루앙(위대한 탑)은 황금 사원으로 불리는 라오스의 대표 사원이다. 석양 무렵에 도착하여 넓은 광장을 지나는데 불탑이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모습에 눈이 번쩍 띄었다. 한참을 걸어 셋타리랏 왕의 동상을 보려는데 신발을 벗고 올라가라는 문구가 보였다. 왕의 동상 뒤로 황금이 불타오르는 광경을 함께 카메라에 담았다.


 탓루앙은 3세기에  인도 아소카 왕이 부처님 말씀을 전하려 파견한 스님들에 의해 처음 세워졌다. 1566년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안으로 수도를 옮긴 셋타티랏 왕이 불심을 모으기 위해 세워졌다. 13세기에 지어진 크메르 형식의 불탑 위에 세웠으나 태국의 침략으로 소실되면서 황금을 약탈당했다. 루이 델라뽀르뜨를 비롯한 프랑스 출신 건축가와 고고학자들에 의해 보수 및 복원 과정에서 금색을 입혀 완성했다.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손상된 부분을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긴 역사를 갖는 곳이다.


탓루앙 스투파


피라미드 모양으로 구성된 45m 높이의 스투파는 30여 개의 작은 가시 모양 스투파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윗부분은 우아한 연꽃 봉우리를 연상시키는 모양이다. 스투파 첫 번째 층은 세상 혹은 속세를 상징하는 나가으로 장식돼 있고 두 번째 층은 신성한 영역임을 표시하는 수백 개의 경계석들과 30개의 작은 스투파, 부처님 모습을 담은 그림이 있고, 부처님의 머리카락과 가슴뼈 사리가 모셔진 귀한 곳이다. 세 번째 층은 깨달음의 경지를 암시하는 뾰족한 첨탑 모습을 갖추고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가파르고 좁아지듯이 마음을 수련하는 것이 어렵고 좁은 길이지만, 가장 높은 곳의 깨달음에 도달하려면 용기와 인내심을 갖고 헤쳐나가야 하는 것이 부처님께서 바라신 인간들의 모습이라고 한다.


상크랏이 거주하는 북부 사원
거대 와불로 알려진 남쪽 사원


탓 루앙에서 사원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우물은 부처가 나가를 타고 온다는 우물로 탓루앙이 이곳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물 양 옆에는 머리 여럿 달린 나가상이 호위하듯 서 있다.

북쪽에 자리 잡은 네라 사원은 라오스 불교계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른 지도자이자 스님이 머무는 곳으로, 현재 라오스의 최고 승려로 꼽히는 쌍크랏이 거주하고 있다. 세 개의 연이은 붉은 지붕과 부드러운 느낌이 흘러내리는 듯한 사원이었다. 탓루앙 남쪽에 자리 잡은 사원은 거대한 와불로 알려진 곳이다. 길게 누운 와불 옆 불상들이 늘어서 있었고, 담장 너머에는 탓루앙이 보였다. 특히 화려하게 그림이 그려진 어여쁜 사원이 있어 안으로 들어갔다. 하얀 기둥이 지붕을 받혀주고 사면이 통하는 건물, 천장과 벽면의 섬세하고 멋진 벽화에 마음을 빼앗긴 곳이었다.


탓루앙 남쪽 사원의 벽화
라오스 지폐 속 탓루앙


불교 국가인 라오스의 상징 같은 곳, 웅장한 규모와 강렬한 단순미로 순수  라오스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히며, 현재 라오스에서 사용 중인 지폐 여러 곳에 새겨져 있는 탓루앙이었다.  


빠뚜싸이 모습


비엔티앙은 라오스의 정치·문화의 중심지. 그 심장부에 자리 잡은 독립기념관이 빠뚜싸이다. 1958년 라오스가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기념하고, 희생된 추모자들을 기리며 지은 탑이다. 파리의 개선문을 본떠 유럽풍의 개선문에 라오스만의 멋과 색을 입힌 독특하고 이국적인 건축물이다. 내부는 라오스 풍으로 만들어졌다. 빠뚜싸이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도로가 뻗어 있으며, 그 앞으로 작은 정원과 분수가 있다.


빠뚜싸이에서 바라본 시가지


빠뚜싸이 전망대에 올라가면 비엔티안 시내 전경을 둘러볼 수 있다. 분수와 정원, 시가지의 조화를 위해 빠뚜싸이 보다 높은 건물은 허가를 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기념하고  미국이 공항 건설을 위해 원조해 준 시멘트로 지어져 ‘서 있는 활주로’로 불리기도 한다. 점심으로 먹었던 라오스 쌀국수 페는 베트남 쌀국수보다 향이 덜한 듯했다. 시중에 판매되는 고기국수 맛이라고나 할까?

 

라오스 쌀국수 페


바다가 없는 내륙 국가 라오스에서 바닷물을 이용한 염전으로 소금을 채취하는 곳이 있다. 비엔티안에서 13번 국도를 따라 빡산 방향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에 있는 콕사앗 소금 마을이다. 이곳에서 짭짤하고 하얀 소금이 채취되고 있는데, 바로 바닷물을 정제한 것과 같은 천일염이다.


지하에서 염수를 끌어올리는 펌
햇빛에 암염을 말리는 염전


땅속 지하수에 녹아내린 암염을 증발하여 소금을 얻는 모든 과정은 전통적인 수작업 과정이었다. 매일 200m의 지하수를 펌프로 퍼 올려 염전에서 햇볕에 물을 증발시킨 후, 사각 대형 철판에 부은 후 나무장작 불로 약 20여 시간 끓이면 정제된 소금을 얻을 수 있다. 바구니에 담아 남을 물기와 간수를 제거하면 금보다 더 귀한 천일염 소금을 얻게 된다.  이렇게 얻은 소금 생산은 하루 25∼30㎏ 정도. 지하수를 증발시켜 소금을 얻는 곳이 라오스에 2곳 있는데,  과거 수심이 깊은 바다였고, 아직 지하에 바닷물이 고여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각형 철판에 소금을 끓임
대나무 광주리에 담긴 소금과 소금 고드름


최근 tv 연예 프로그램에서 방영된 영향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화려한 볼거리는 없지만, 주민 생활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뜨거운 불 앞에서 땀을 뻘벌 흘리고, 소금을 끌어모으는 과정이 힘들어 보였다. 그렇게 하루 생산한 소금을 팔면 우리 돈으로 4천∼5천 원, 한 달 15만 원 안팎을 번다. 그래서 라오스 소금 몇 봉지 그냥 샀다.


루앙프라방 공항


조촐한 비엔티앙 공항으로 가서 국내선 라오항공을 타고 루앙프라방으로 향했다. 북부터미날에서 슬리핑 버로 14시간 걸리지만 항공기로 가면 40분 만에 도착한다. 북쪽으로 향하는 항공기에서 내려다본 라오스 북부의 초록숲 사이로 붉은 지붕들이 간간이 보였고, 메콩강 물줄기가 휘돌아 흐르는 모습을 한눈에 들어왔다. 붉은 지붕과 산뜻한 느낌의 공항 건물, 규모는 작지만 나름 깨끗했다.

라오스 북부에 위치한 옛 수도, 루앙프라방은 인구 10만 명 정도의 고대 사원도시이다. 도시 자체가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1353년에 란상 왕국의 초대 왕이 도읍으로 삼은 이래, 란상 왕국의 중심으로 발전하다 1975년 파테트라오의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왕궁이 있었다.

 

에메랄드 빛 층층이 지형


루앙프라방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시내에서 약 30㎞ 정도 떨어진 꽝시 폭포. 노란색 엔젤트럼프가 우아하게 피어난 강가를 따라 쭉 걸으면, 사냥꾼에 의해 다치고 보호가 필요한 야생 곰들을 구조한 곰 보호 센터가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까맣고 작은 곰 몇 마리가 모여있는데 안쓰럽다. 숲 속으로 들어가니 계곡에 코발트 빛깔의 계단식 층층이 지형이 보였다. 이곳은 석회암 지형이구나!  오랜 침식작용으로 생긴 웅덩이가 계단식으로 이어져 천연 풀장을 만들어 낸 카르스트 지형. 푸르고 시원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에메랄드 빛의 폭포수가 쏟아지는 모습은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처럼 우아하다.


꽝시폭포


 상당한 거리를 걸어 올라가니 우렁찬 소리와 함께 꽝시 폭포의 시원한 모습이 드러났다. 눈부신 자연 폭포가 하얀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곳에서 요가하는 사람, 수영하는 사람, 물놀이하는 사람들은 유쾌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얀 폭포수 안마를 즐기는 청춘들, 비키니를 입고 에메랄드 층층이를 활보하는 여인들, 웅덩이로 뛰어드는 사람들과 계곡에 몸을 담그고 책을 읽는 모습들이 풍경화 그림이다.


루앙프라방 시내로 돌아와 먼저 왓시앙통부터 찾아갔다. 시앙통은 구시가지 중심에 위치하고 강변과 가까워 경치도 매우 아름다운 라오스 사원의 정수로 꼽히는 곳이다. 고대 사원 건축 양식이 응축된 씨앙통은 왕의 집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왕의 결혼식과 왕의 영탑이 있는 곳으로 부겐빌레아 나무의 붉은 빛깔과 황금빛 화려함으로 빛나는 사원이다.


왓 씨앙통 본당


본당의 3층 지붕은 거의 바닥으로 이어지며, 전설적인 찬 타파 니트 왕의 위대한 업적을 묘사하는 본당의 벽과 기둥은 모두 블랙골드 장식으로 매우 정교하고, 섬세하며 화려함을 갖추고 있다. 앞쪽에는 세 겹의 지붕이, 뒤쪽에는 두 겹의 지붕이 있고 가운데 스테인스 글라스로 장식된 치미가 초록빛으로 서 있었다. 본당에는 석가모니의 불상과 작은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입구는 물론 내부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본당 뒤쪽 생명의 나무


 초록의 스태인드 글라스에 이끌려 본당 뒤쪽으로 가보니, 정교한 문양과 화려한 보석, 스태인드 글라스로 치장된 벽면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붉은 벽면에  조형된 생명의 나무는 그 모양이 독특하고 너무나 아름다웠다. 사람과 요정, 새와 짐승 등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을 묘사한 푸른 유리, 부처의 이야기를 기록한 생명의 나무는 신비스러웠다. 이것이 바로 라오스 불교문화의 정수!!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는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색유리 공예는 햇빛의 각도에 따라 빛이 달라지는 것을!!

칠기와 금은 세공 기술이 발달했던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1960년대 만들어진 모자이크는 힌두교와 불교에 바탕을 우주론인 둔 악시스 문디(Axis mundi)를 상징하는데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여 우주의 중심을 이룬다는 것이다. 중심축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나무, 나무의 가지는 하늘, 줄기는 땅, 뿌리는 지하를 상징한다. 종교적 힘과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재미난 구성이었다.  


산장징 파빌리온의 벽화


본당 뒤, 생명나무 맞은편에 산장 징이라고 불리는 작은 파빌리온이 있다. 1828년에 지어졌으며 2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외벽에는 Siaw Sswst의 영웅적인 행동과 일부 생활 장면을 묘사한 모자이크 벽화가 있다.  

그림을 통해 불교 경전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지은 파빌리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교 성화가 배경이다. 코끼리와 자라를 놓아주는 방생의 모습,  일상의 생활 모습에서 생명을 존중하고 서로 돕고 살아야 행복하다는 가르침이 담겨있다. 석가모니의 설법과 생애에 관련한 고사들을 그림으로 표현해 놓은 것들을 보긴 했지만, 동남아 불교의 화려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불교 경전 이야기를 알려주는 벽화

 

벽면에는 유리 같기도 하고 보석 혹은 나전칠기 같은 재료들로 조각조각 꾸며져 있다. 놀라운 것은 사람들의 모습이나 동작 하나하나가 너무나 세밀하다. 심지어 표정까지도 살아있다! 이런 소재를 이용하여 다양한 형상과 이야기를 만들어 낸 근원이 무엇일까?  감탄을 너머 감동이 밀려왔다. 이슬람 지역의 화려하고 규칙적인 배열의 아라베스크보다도 일상의 모습, 삶의 단면들이 보여 더욱 정겹다.


왓씨앙통 장례 법당
장례 법당 운구차

본당 맞은편에 위치한 장례 법당, 화려한 건물의 벽면은 온통 황금장식으로 뒤덮여있다. 몹시 화려한 법당 안으로 들어가니 입구에 독특한 구조물이 있다. 라오스 마지막 씨사왕웡의 납골을 옮겼던 운구차이다. 입을 벌리고 있는 나가신 7마리를 조각해 금빛으로 입힌 12미터의 운구차는 이곳 세공장인 팃탄이 만들었다고 한다.


밥을 말린 음식


사원을 둘러보고 강변으로 나오니 강바람이 제법 시원했다. 메콩강 크루즈 체험하는 강변 작은 식당에 줄지어 앉아 라오스 음식을 맛보았는데 먹을 만했다. 뻥튀기처럼 밥을 둥글 납작하게 말리는 것이 보였고, 강변을 지키는 익살스러운 개가 서있었다.


위순날랏 사원의 금불상


왓 위순날랏 사원은 1512년에 지어진 곳으로,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다. 마당 한가운데에 있는 이 금불상은 적어도 400년은 넘은 것으로 루앙프라방에선 가장 큰 불상이다. 바로 옆 아주 오래 됨직한 보리수도 꽤나 멋진 모습이었다. 1887년에 중국군의 침략으로 불타버린 것을 재건한 것이라 역사의 흔적보다 새것의 느낌이 났다. 1914년엔 천둥번개로 산산이 조각이 났는데 그 속에서 15,16세기 때의 금, 청동, 크리스털 및 목조 불상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발견된 불상들은 현재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있고 현재의 스투파는 1932년 재건된 것이라 한다.


탓 막모-수박 사원


들어가는 길에 만나 탓 빠툼은 위대한 연꽃 탑이라는 뜻이다. 부처님의 사리가 있다고 전해지는 탑의 모양이 수박을 잘라 엎어 놓은 듯하여 “watermelon stupa”이라는 별칭도  있다. 35미터 높이의 스투파은  16세기 초에 지어진 것인데 라오스에서 하나뿐인 유일한 스타일이라고 한다.


위순날랏 사원


맞은편에 위치한 본당은 16세기 초 건립된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오래된 위순날랏 사원이다. 원래 목조건물이었는데, 침략으로 소실되고 벽돌과 흙을 이용해 다시 재건축했다고 한다. 하얀 벽면이 인상적인 사원이었다. 사원은 입장료도 없는 동네 사람들의 놀이터이며 휴식처였다. 그래서 라오스 인들의 삶 속에서 만나는  불교를 엿보이게 해주는 곳이었다.


루앙프라방 왕궁박물관


왕궁박물관은 원래 라오스 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시사왕웡과 가족들이 살던 왕궁이었다. 유럽과 라오스 양식이 혼합된 이 왕궁은 공산정권이 들어오면서 1975년 박물관으로 개조됐다. 박물관 내부는 왕궁이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소박하지만, 전시되어 있는 유품과 희귀 불상, 각종 예술품 등은 가치가 있다. 하지만 박물관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은 역시 실론에서 건너온 황금 불상이다.


푸시산 나가신의 동상
푸시산 정상 사원의 황금탑


늦은 오후 왓마이 사원 근처 100미터 높이의 푸시산에 올랐다. 신성한 언덕이라는 푸시산에 올라가는 데 큰 부담이 없다. 계단을 오르면 도시를 둘러싼 능선과 메콩강 위로 저무는 태양의 빛깔이 황홀하다. 중간에 왓 탐푸시 사원에 들러 부처의 발자국과 오래된 불상 등을 볼 수 있다. 우리 돈 2,700원을 내고, 300여 개의 계단을 오르면 정상에 왓촘시사원이 나온다. 1804년 만들어진 30m 높이의 황금빛 촘시탑이 석양빛을 받아 화려하게 빛난다.

조금씩 익숙해지는 보리수 모양과 황금탑을 뒤로하고 도시를 바라보는데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붉은 지붕과 푸른 숲의 루앙프라방을 바라보는 핫플레이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서히 날이 저물고 마을을 내려다보는 순간 메콩강에 또 하나의 태양이 보였다. 석양을 머금은 마을에 불빛이 하나 둘 들어오고, 여행자들은 루앙프라방의 매력에 빠져드는 순간이다. 이래서 라오스를 여행하라고 하나보다.


푸시산에서 바라보는 모습
푸시산에서 바라보는 메콩강 일몰


푸시산 올라가는 입구 근처 왓마이사원은 18세기 후반에 건축한 것으로 추정되는 왕실사원으로 보인다. 왓마이라는 이름은 새로운 사원이지만, 감실과 탑에 낀 이끼가 세월을 말해준다. 대법전에 모셔졌던 에메랄드 불상은 태국으로 옮겨지고 여기는 모조품이 안치되어 있다. 대법전 외벽 황금기둥과 회랑의 부조가 아름답다.  

루앙프라방 일대에 80여 개 사원에 천여 명의 스님들이 계시다는데, 사원들은 웅대하거나 오랜 세월의 퇴색한 모습이 아니다. 대법당 5층 겹겹 붉은 지붕에 뱀의 신 나가가 황금빛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왓마이 사원의 기둥과 회랑
야시장과 몽족의 상품들


푸시산에서 내려오는 길, 프랑스에 의해 새 단장되었다는 왓 마이 사원 앞 도로에 붉은 천막이 줄지어 서 있다. 조명이 빛나는 이곳에서 몽족의 야시장이 열린다. 134개 민족이 모여 사는 라오스에서 대표적 소수민족이 몽족이다. 전쟁이 끝나면 몽족 독립을 약속받고 베트남전 당시 미국에 부역했다가 미군이 철수한 뒤 라오스 산간지대로 숨어들은 사람들이다. 짚으로 엉성하게 지은 흙집에 100여 가구가 사는 이곳 주민들은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재주가 있다. 몽족 사람들은 손재주가 뛰어나다. 자수 장식품과 전통 문양이 새겨진 다양한 소품도 많았다. 물놀이용  소박한 반바지 하나 장만하고, 수공예품 몇 가지를 샀다. 손으로 일일이 만든 제품 하나에 가격은 2,000원 정도..


탁발 공양받는 모습


다음날 새벽, 루앙프라방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만났다.  왓씨앵통 앞에서 경건한 불교 의식, 싸이 밧이라 하는 탁발에 참여했다. 매일 새벽 5시부터 7시까지 줄지어 오는 주홍색 장삼을 걸친 맨발의 스님들에게 공양하는 신성한 의식이다. 가장 나이 많은 승려를 선두로 서열에 따라 줄의 순서가 결정된다. 행렬 가운데는 어린 승려들이 제법 있다. 가난해서 학교에 갈 형편이 못 되는 아이들은  승려가 되면 무료로 학교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학업을 마치면 다른 길을 찾아 떠나는 이들이 많다.

사원에서 줄지어 나온 스님들은 침묵을 지키며 탁발을 시작한다. 현지인들은 무릎을 꿇고 찹쌀 등 음식을 공양하는 대신 스님들의 축복 기원을 받는다.  주민들은 손으로 한 줌 떼어낸 찹쌀밥 ‘카오냐오’를 스님들의 발우에 정성스럽게 담고, 여행자들이 들고 온 바게트나, 과자봉지도 뒤섞여 있다.


공양물을 다시 나누는 모습

 

시주를 받은 승려들은  다시 가난한 이들에게 공양물을 나눠준다. 음식물을 들고 빈 바구니를 앞에 놓은 아이들에게 공양물을 나눠 담는다.  탁발하는 스님은 봉사활동을 통해 나눔을 실천한다. 스님의 모습에서 삶 자체에 구축된 복지구조가 보인다. 어린 승려들은 탁발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다.  


라오항공 이동


국내선 라오 항공으로 비엔티안에 도착, 버스로 갈아탄 후 150km 북쪽에 위치한 방비엥으로 향했다. 1970년대 초반까지 주둔한 미군 공군기지 영향으로 마을과 도로가 확장되어 산간지역임에도 인구는 약 25,000명 정도이다. 걸어서 서너 시간, 자전거 타면 한 시간에 돌아볼 수 있는 작은 마을이다. 깨끗하고 싼 숙소와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다국적 음식들이 몰려 있고, 친절한 눈망울을 가진 순박한 사람들이 웃음 짓는 곳이다.  

방비앵의 여행 정화작업을 통해  밤새 길거리를 다녀도 행패 부리는 주정뱅이가 없다. 여행자들 덕에 마을 사람들이 살고,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여행자들이 행복한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탐낭 동굴-마이 리얼 트립


 방비앵을 가로지르는 송강 옆 카르스트 지형은 소박한 자연으로 배낭여행자들에게 인기 있다. 검은 고무튜브 타고 탐낭 동굴을 탐험하러 송강 변으로 갔다. 물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탐낭 동굴은 동굴에 물이 차 있어 안까지 이동하려면  머리에 전등을 묶고 큼직한 검은 튜브를 사용한다.  튜브에 뒤로 누워 두 손으로 줄을 잡고  500m 길이의 캄캄한  동굴 안으로 천천히 들어간다.  갖가지 모양의 종유석 기둥을 더듬으며 어두운 동굴을 탐험했다. 암흑의 동굴에서 이마에 두른 손전등으로 앞을 보고  줄을 잡고 이동하는 과정이 나름 재미있다. 물이 끝나는 곳에서 종유석 기둥과 석순 등의 석회암 지형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동굴의 물은 꽤 얕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쏭강의 카약
쏭강의 나무다리



물이 깊지 않고 유속이 느려 레포츠 하기 좋은 쏭강에서 다양한 수상 액티비티, 동굴 튜브, 독특한 롱테일 보트를 즐길 수 있다. 석회암 봉우리가 이어진 카르스트 지형을 따라 카약에 몸을 싣고 방비엥의 한적한 자연을 느끼며, 짚라인도 맘껏 즐길 수 있다.  쏭강에 튜브를 띄우고 튜브 위에 앉아 하루를보내는 여유와 카약을 타고 노를 젓다가 깊지 않은 쏭강에 빠져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쏭강변 허반 카페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사쿠라바


해가 질 무렵, 강변 허반 카페에서 나무로 이어진 다리 위로 차가 지나는 신기함을 보고, 망고 주스 한잔으로 요기를 하며 흐르는 강물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아무 생각 없이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쿠라바와 비바 펍에 가서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시는데 아리랑이 흘러나왔다. 팁을 받고 코리아를 외친 가수는 신나게 또 노래 부른다. 여행자 천국 유러피안 거리에서 즐기는 라오맥주는 전 세계 여행자들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방비엥의 매력이다.  풍등에 소원 적어 날려 보내는 추억 하나 더하다.


숨어있는 탐 짱 동굴 입구
동굴에서 내려다본 방비앵


 산속에 위치한 탐짱동굴 역시 석회암 동굴이다. 이 탐짱동굴은 동굴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지만 동굴 밖에서는 우거진 나무 때문에 동굴을 볼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탐짱은 19세기 전쟁이 있을 당시 외부 동태를 살필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중국 윈난에서 내려온 세력을 피해 몸을 숨길 수 있었다고 한다.


방비엥 리조트를 통과해 송강 다리를 건너 안으로 들어가니 유원지처럼 되어 있으며, 입구에서 과일, 코코넛 풀빵 등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었다. 탐짱동굴을 가려면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산 중턱에 쉼터가 보이고 옆으로 동굴 입구가 있다. 두 갈래길이 나오는데 먼저 좌측으로 출발, 안으로 들어가면 불상도 있고, 다양한 석회암 지형도 만날 수 있다. 거칠 것 없이 유유히 흐르는 쏭강과 함께 방비엥 일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이곳은 블루라군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한번씩 들르는 곳이었다.


블루라군
롱테일 보트 수상레저


방비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액티비티 장소인 블루라군. 7m 높이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는 다이빙은 짜릿함을 안겨준다. 다이빙을 즐기는 방법은 땅에서 로프를 잡고 다이빙하는 방법과 나무에 올라가 3m와 7m 높이에서 다이빙하는 방법이 있다. 청춘들의 물놀이터, 블루라군은 예쁜 빛깔의 야생 다이빙 장소라고 해야 하나?


아침에  라오스 사람들이 살아가는 원풍경을 간직한 시장과 마을을 찾아갔다. 철도가 없는 탓에 1990년대 개혁개방 정책 이후에도 경제는 제자리걸음이다.  쏭강변 카페와 새벽장터의 순박함은 아직도 생생. 비엔티앙으로 돌아와 저녁 비행기를 타고 오는 내내 지워지지 않는 것은 검은 눈망울의 라오스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어쩌면 문명사회가 잃어가고 있는 순수함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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