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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 강물처럼 Jul 21. 2020

사소하지만 위대한 경험

미움을 사라지게 하는 명상

눈을 떴다. 정확히 말하면 눈이 '떠졌다'. 

3시 40분. 이른 새벽이었다.

일어날까.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문장 하나가 퍼뜩 떠올랐다.

"그것은 사소하지만 위대한 경험이었다."라는 문장이었다.
익숙한 문구다.
책에서 봤나? 성경구절 같기도 하고, 광고 카피 같기도 하고.
중요한 것은 그 경험이 나한테 일어났다는 것이다.





어제 일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큰딸이 있었다. 직장 다니고 있는데 오늘 쉬는 날이라 집에 와 있었다.

그녀는 혼자 식사 중이었다. 스마트 폰을 보면서.

"아빠, 돌아오셨어요?"

"응. 그래. 밥 먹고 있었구나"


오늘은 운동하는 날이다.

서둘러 옷을 갈아 입고 거실로 나왔다. 나는 4일에 한 번씩 푸시업과 레그 레이즈, 딥스를 루틴으로 한다. 먼저 몸을 간단히 푼다. 허리 높이의 선반에 두 발을 올리고 바닥에 엎드려하는 파이크 푸시업이다. 34개. 오늘은 기록이 썩 좋지 않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베란다에 나갔다. 창문을 열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계룡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났다."어라? 무슨 냄새지?"  베란다를 두리번거리다가 냄새의 주범을 찾았다. 바로 베란다 구석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 통이었다.


"수진아. 저 음식물 쓰레기 좀 버려야겠다" 거실로 돌아오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가 힐끗 쳐다본다.

"네. 알았어요"

의외로 그녀는 흔쾌히 대답한다. 웬일이지.

 

나의 두 번째 운동 루틴은 '레그 레이즈'다. 거실 한쪽에 가정용 철봉이 있다. 양 팔로 봉을 잡고 두 다리를 앞으로 접어 올리는 운동이다. 42개. 역시 오늘은 몸이 무겁다. 나이를 먹으면서 신체 회복력이 떨어진 것일까. 거친 호흡으로 베란다로 나갔다. 음식물 쓰레기는 그 자리에 있었다. 냄새가 더 나는 것 같았다. 음식물 쓰레기 버린다는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고 스마트 폰을 보고 있다. '뭘 보는 걸까?' '언제 치우려나' 슬금슬금 짜증스러운 마음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명상하자. 가만히 앉아서 하는 것만이 명상은 아니다. 생활 속에서, 일을 하면서도 명상은 필요하다. 실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게 무슨 소용이람. <마음수련 명상>은 떠오르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단순했다. 그래 버리자. 먼저 <짜증스러운 마음>을 버렸다. 딸에게 <기대하는 마음>, < 원망하는 마음>도  버리기 시작했다. 


어느덧 5번째 루틴인 푸시업이다. 22개. 숨은 더 차올랐다. 베란다로 나갔다. 온몸이 팽팽하게 확장하는 느낌. 나는 이런 느낌이 좋다. 여전히 그 녀석은 냄새를 풍기며 그 자리에 있다. 녀석을 노려보았다. 나에게 콧웃음을 치는 것 같았다. 거실로 돌아왔다.

그녀는 여전히 식탁에 앉아 스마트 폰을 보고 있었다.

'식사는 끝났을까?' '쓰레기 버리기로 한 것을 잊어버린 걸까?' ' 다시 한번 말해줄까?'


'내 마음은 평정심을 찾지 못한 채 아슬아슬 위기를 맞고 있었다.'
~라고 생각하는 '그 마음'을 버렸다.  
'이렇게 버린다고 그 마음이 없어지는 할까? 참는 것을 정말 힘들다.' 
~라고 생각하는 '그 마음'도 버렸다. 


마지막 8번째 루틴인  딥스를 마쳤다.

숨이 턱에 차오른다.

온몸에 땀이 흥건하다.  

베란다로 나갔다.


녀석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어라? 뭔가 이상하다. 그 녀석이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이다.
냄새가 익숙해서일까. 운동해서 기분이 좋아져서 일까.
아니었다. 그냥 '마음이 편안'했다.
뭐지? 거실로 돌아왔다.
딸아이는 여전히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냥 그대로' 보였다.
미운 마음, 원망하는 마음, 답답한 마음이 없었다.
오히려 반갑고 예쁘기까지 하였다. 


그것은 뭔가 신선하고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샤워를 하고 거실에 나오는데  놀라운 모습을 보았다.

딸아이가 음식물 쓰레기를 가지고 나가는 것이 아닌가?

"고맙다" 나도 모르게 고맙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치우려고 했어요." 딸아이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쨍~ '

묵직한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남극 만년설 빙하에 균열이 일어나는 소리? 그랬다. 

내 인식에 처음으로 틈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한 번도 깨진 적 없는.

내가 습관처럼 살아가던 패턴에 에러 메시지가 떴다. 불이 들어왔다. 빨간불이 아니라 초록불이다.


여느 때 같으면 내가 기다리다 못해 짜증을 낼 것이고 딸아이는 변명을 할 것이다. 그럼 나는 잔소리를 하고 딸아이는 싫어하는 표정으로 응수하겠지. 그리고 나는 화를 삭이느라 아마도 산책을 갔으리라.

 

짜증을 사라지게 하는 명상

미움을 사라지게 하는 명상

갈등이 사라지게 하는 명상



일상에서 경험한 

놀라운 마음수련 명상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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