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시집 『사슴』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_흰 바람벽이 있어
『사슴』, 백석, 라이프 하우스
이 책은 백석 시인이 직접 100부 한정판으로 간행한 『사슴』 시집을 현대어로 평역*했다.(시집 『사슴』에 실린 시 이외에도 정기 간행물에 발표한 시들도 함께 실었다.) 시인 윤동주는 판매되자마자 희귀본이 된 백석 시집을 구할 수 없어, 직접 빌려 필사했다고 한다. 오래전 정취가 묻어나는, 음률이 살아있는 아름다운 시집을 읽는 기쁨을 맛보고 싶어 이 책을 펼친다.
(*평역 : 재해석하여 번역함.)
백석은 1912년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정주 방언을 즐겨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 시집도 현대어로 번역되었으나 원래 방언을 많이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토속적인 내용의 시가 많아 원초적인 그리움을 돋우고, 일상의 소소한 부분에 눈길을 주는 시인의 감성이 친근하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처럼 로맨티스트 백석의 감성을 맛보게 하는 시들도 눈에 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슬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_'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일부
(*마가리 : 오두막)
눈이 푹푹 내리는 겨울밤, 어디선가 응앙응앙 우는 당나귀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백석은 우리나라 특유의 토속적인 리듬을 수용하여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구사하는 시로 현대시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시집 『사슴』은 1936년에 발간되었지만, 시인의 풍부한 감성이 담뿍 담겨있어 지금도 구절구절이 생생히 다가온다. 방언이 주는 정취와 사라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그윽하다.
…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심심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고춧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식초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랫목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뜰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국수' 일부
(*고담하고 : 속되지 않고 맑은 느낌)
* 평역으로 읽기는 수월하나 제대로 원문을 살렸는지는 의문이다. (머리말이 '편집팀 일동'으로 되어 있다.) 본문은 큼직한 궁서체로 읽기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