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용석 Feb 15. 2024

화성과 나

짧은 리뷰

김초엽 작가님이 추천하는 책을 하나둘씩 읽는다. 글 잘 쓴다고 다 좋은 독서가는 아닌데, 김초엽 작가님은 독자로서도 훌륭한 눈을 가진 것 같다. 추천하는 책들 따라 읽으면 어지간하면 실패하지 않는 독서가 된다. 이번에 읽은 책은 배명훈 작가의 소설 화성과 나. SF 작가로는 엄청 유명한 작가지만, 김초엽으로 SF에 입문한 나는 배명훈 작가 책 중에 처음 읽은 책이 화성과 나다.


6편의 단편이 실린 연작소설집인데, 6편 모두 화성인들의 이야기다. 아마도 미래의 어느 시점, 지구는 더 이상 인간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인류는 화성을 새 보금자리로 만들기로 결정하고 화성에 새로운 문명과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화성인들을 선발해서 보낸다. 이들은 화성을 개척하는데, 거주지를 만드는 것부터 화성의 여러 지역에 이름을 붙이거나 화성인들 사회에서 적용되는 법과 제도뿐만 아니라 명절 같은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일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질학자나 광물학자 같은 과학자들 뿐만 아니라 정치가, 역사학자, 예술가 같은 직업군도 화성인으로 선발되어 화성에서 문명을 새롭게 일구고 있다.


이 포인트가 이 소설의 재미인데, 이미 지구에서 문명을 이루고 살았던 인간들이 화성에 와서 지구와는 완전히 다른 물리적, 자연적 세계에서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는 와중에 벌어지는 여러 일들이 소설의 핵심적인 이야기다. 화성에서 인간의 삶이 어떠할지는 기본적으로 상상의 영역이겠지만,  SF소설답게 천체물리학에 기반한 화성의 특성을 바탕으로 화성인이 사는 세계를 구축하다보니 상상이지만 과학적 추론처럼 느껴진다. 아직 생명체가 본격적으로 자생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다양한 식재료가 없다거나, 지구와는 다른 중력으로 시간과 세월에 대한 감각이 완전히 달라진다거나, 사생활이 전혀 없다 보니 부끄럼움과 같은 사회적 판단도 달라진다거나, 지구에서 국가단위로 생각하고 판단하던 것들이 행성적 사고로 치환된다거나.


이처럼 화성이기 때문에 달라지는 삶의 모습뿐만 아니라 화성에서도 이어지는 인간의 특성도 무척 흥미로운 방식으로 나타나고 전개된다. 정치, 문화 같은 것들. 지구인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스파이도 등장하고, 새로운 화성인들이 화성에 도착할 때마다 뭔가 새로운 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기존의 화성인들과 긴장관계가 형성되고, 결핍이라든지 욕구와 같은 인간의 욕망들도 사라지지 않되 지구에서와는 좀 다른 방식으로 발현되고.


실제로 배명훈 작가는 외교부의 의뢰를 받아 <화성의 행성정치: 인류 정착 시기 화성 거버넌스 시스템의 형성에 관한 장기 우주 전략 연구>란 걸 수행했다고 하니, 이 모든 상상력이 터무니없거나 뜬금없지 않고 정말로 화성 개척 초기에 일어날 법한 일들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 개척의 풍경 같기도 하다. 물론 화성에는 다른 인류가 살고 있는 건 아지미나, 제국주의자들은 자신들만 문명을 이룩했고 선주민들은 문명이 없는 야만인 혹은 인간이 아닌 존재로 여겼으니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해도 괜찮을 거 같다.


소설을 읽으면서  평화활동가로 살아가는 일이 마치 화성인으로 살아가는 일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작년에 병역거부 전시 할 때, 큐레이터 솔비 님이 전쟁없는세상이 걸어온 20년의 시간이 마치 지구의 시간과는 다른 SF 작품의 시간처럼 느껴진다고 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끔찍한 전면 공격이 일어난 뒤 나는 내가 평화활동가로서 살아가는 이 시공간이 세상이 작동하는 시공간과 다르다는 감각을 느끼곤 한다. 국가 단위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이해관계를 따지는 세상에서 행성적 사고를 하는 것이 평화활동가들이 아닐까 싶은. 그래서 지구에 고립된 화성인들이 아닌가 싶은 생각.


화성인들의 여러 특성 중 가장 중요한 것, 그리고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내게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바로 화성인들의 회복력이다. 척박한 땅이고 지구와는 사뭇 다른 풍경과 관계 들을 견디기 위해 화성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는 강인함인 것 같지만, 의외로 화성에서 적응하고 살아가는 이들은 잘 다치지 않는 이들이 아니라 다쳐도 금방 회복하는 이들이다. 회복력. "무슨 일을 겪어도 화성인은 반드시 회복하거든요"라는 문장이 책 뒤표지에 가장 큰 글씨로 인쇄되어 있다. 소설 속 인물들도 저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어떤 일을 나쁜 겪더라도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훌훌 털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능력이 있는 이들이 결국은 화성에서 삶을 꾸려간다.


꼭 화성에서만 그럴까. 지구에서도, 한국에서도, 사회운동판에서도, 아니 어느 직장이 든 간에 마찬가지 아닐까. 다치지 않으면 좋겠지만 불가능하다. 특히나 권력이 낮은 자리에 있을수록 다칠 일도 많다. 다치지 않을 강인한 심성이라면 좋겠지만, 모두가 그럴 수는 없다. 나는 잘 안 다치는 편이고, 스트레스나 압박감도 거의 받지 않는 편이다. 그래도 아예 안 다치는 것은 아니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전체적인 에너지가 떨어지면서 점점 더 취약해져 다치는 빈도가 늘어난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다. 역시 중요한 것은 회복력이다.






이 소설을 읽다가 화성 개척 테마를 다룬 보드게임 테라포밍마스가 너무나 하고 싶어 져 게임을 하러 간 적이 있다. 리뷰를 쓰고 나니 또 테라포밍마스가 하고 싶어 졌지만, 꾹 참고 다른 책을 읽어야지. 무슨 일을 겪어도 회복할 수 있는 힘은, 역시 독서에서 나오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지구 평면설 믿는 사람과 대화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