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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Aug 03. 2024

계속 써보겠습니다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책을 낸 이야기 



책을 썼다. 제목은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이하나 선생님이 책을 내자고 연락 주셨을 때 쓸까 말까 망설였다. 첫 책 <평화는 처음이라>의 중학생 버전을 써달라고 하셨는데, 나로서는 십 대 초중반 독자를 대상으로 글을 써본 적이 없어서 어렵게 느껴졌고, 첫 번째 책과 주제가 겹치는 것 또한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직후였는데, 그 때문에 무지하게 바빴다. 아마도 그 시점에서 오마이뉴스에서 연재 제안이 오지 않았다면 거절했을지도 모른다. 마침 오마이뉴스에서 연재 제안이 왔고, 그럼 연재글을 쓰면서 글감도 모으고 목차도 구성하고 미리 쓰기를 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연재를 마친 뒤 한동안 책 원고를 쓰지 못했는데, 도대체 십 대 초중반 독자를 대상으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에. 원래 마감 잘 지킨다고 자부하며 살아왔는데, 계약서에 도장 찍은 마감달에 겨우겨우 첫 글을 써서 보냈다. 그게 아마 작년 9월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부지런히, 열심히 글을 써서 반년만에 원고를 마무리해서 보낼 수 있었다. <평화는 처음이라>와 <병역거부의 질문들>을 때는 4일 근무를 했었는데, 이번 책은 5일 근무를 하면서 쓰느라 힘들었던 같다. 직장 다니며 쓰는 작가들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나는 이렇게는 못하겠다 싶었다.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17~18쪽


이 책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이번 책을 쓰면서 내가 특히 신경 쓴 것, 책에 담고 싶었던 것은 세 가지다. 그중 두 가지는 일종의 태도에 대한 것이고 나머지 한 가지는 내용에 대한 것이다. 


무력감에 지지 않기


책 집필을 제안받은 시점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였고, 책 원고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을 때 하마스의 기습공격과 그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해 극심한 학살을 시작한 때였다. 2년 넘게 이어지며 도무지 끝날 기미도 보이지 않는 우크라이나 전쟁, 국제법을 비롯해 20세기 인류가 두 차례 세계 대전에 대한 반성으로 만들어온 최소한의 규약들마저도 너무나 쉽게 무시하고 보란 듯이 전쟁 범죄를 자행하는 이스라엘. 평화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절망감과 무력감을 이야기했다. 


비이성적이고, 납득하기 어려운 폭력이 지속되는 세계에서 나는 사람들이 전쟁을 우리가 막을 수 없는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며 책을 썼다. 무력감이야 말로 전쟁이 지속되는 데 가장 좋은 토양이니까. 그렇다고 없는 희망을 팔고 싶지도 않았다. 세상일이 그러하듯 평화운동 또한 우리의 노력에 대해 아주 정직하게 반응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노력이 성공을 담보하지는 못하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면에서 그렇다. 


노력한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어쩐지 좀 약이 오르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전쟁을 막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전쟁을 막기 위해, 중단시키기 위해,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기울이는 큰 노력은 때때로 실패합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에 불복종하는 이스라엘의 병역거부자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대하고 저 행했던 러시아의 평화활동가들의 노력에도 전쟁이 일어났고 지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전쟁을 막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더 많은 전쟁, 더 큰 전쟁으로 이미 망했을지도 모릅니다. (중략) 

게다가 전쟁을 막으려는 노력이 늘 실패하기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노력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전쟁을 막아버리기 때문에 우리가 인지하지도 못합니다.(중략) 또 다른 노력은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지는 못했지만 전쟁이 중단되는 것에 기여합니다.(중략) 한 번의 노력으로 세상의 전쟁이 사라지는 일은 없습니다. 이런 크고 작은 노력이 쌓이면 마치 가랑비에 옷이 젖듯 전쟁도 조금씩 힘을 잃어갑니다. 지금 당장 하루아침에 전쟁을 끝낼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노력하는 만큼 전쟁이 끝나는 날짜가 앞당겨지겠지요. (205~206쪽)

 

우리가 노력할수록 전쟁을 멈추거나 일어나게 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감각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나서 전쟁에 대해 무력감을 떨쳐버릴 수 있다면,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궁금해할 수 있다면 이 책은 성공이다. 


대단한 사람이 되자는 게 아니라 나쁜 사람이 되지 않기


이 책은 초록비책공방 출판사에서 내는 '좋은 시민이 되고 싶어' 시리즈에 속한다. 출판사에서는 "좋은 시민은 어떤 시민일까요?"라는 질문을 주셨다. 이 책을 읽는 모두가 적극적인 활동가 혹은 평화 이슈에 대해 활발하게 목소리는 내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만, 불가능한 꿈이라는 거 안다. 개인의 의지와 별개로 우리의 삶은 상황에도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그렇다면 좋은 시민의 최대치가 아니라 최소치를 이야기하는 것이 더 많은 독자들에게 유효할 거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최대치로 살 순 없지만, 누구나 최소치는 넘길 수 있는 거 아닌가.


'좋은 시민'은 조금 덜 훌륭하더라도 더 나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과 타인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지는 못하지만 때로는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 내가 원하고 바라는 삶이 우리 사회와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고민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자신의 삶을 가꾸는 일과 공동체를 좋게 만드는 일 사이에 공통점이 많을 테니까요. (6쪽)  


최대치가 아니라 최소치를 이야기할 때 나는 평화운동이 더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좋은 시민의 감각이 평화를 사유하는 힘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평화는 전쟁(폭력)을 오답으로 규정하고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전쟁(폭력)이 정답과 오답으로 갈라놓은 이분법에 균열을 내는 질문을 찾는 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좋은 시민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나의 생각, 평화운동의 주장을 독자들에게 설득하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이 책이 독자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찾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책을 써 내려갔다. 나는 평화활동가로서, 평화주의자로서 확고한 나의 생각과 주장이 있지만 그걸 독자들에게 강요하기보다는(어차피 강요한다고 한들 설득되는 것도 아니다)  전쟁과 평화에 대해 확고한 세상의 편견에 의문을 던질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이 책을 읽고 독자들이 누구나 평화롭게 살 권리로서 평화를 인식하고, 더 나아가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시민의 책무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면 역시 이 책은 성공이다.


청소년들의 일상과 어떻게 접점을 가질까


마지막 한 가지는 내용에 대한 것이다. 이미 두 권의 책을 썼고, 특히 첫 번째 책은 주제 측면에서 이번 책과 매우 겹친다. 비록 독자층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나는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을 최소로 하고 싶었다. 어떤 내용을 새롭게 넣을까?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새로운 독자를 염두에 두며 찾아갔다. 


그래서 '1부 전쟁과 평화에 대한 오래된 믿음'은 앞선 책들과 내용이 좀 겹치더라도 일종의 개괄적인 도입부의 역할로 구성했고, '2부 한국 사회는 전쟁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나'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지금'과 '한국'을 강조해서 파고들었다. '4부 영화로 보는 전쟁과 평화'는 이 책을 읽고 난 뒤 독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고 토론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아무래도 영상 매체인 영화를 경유해서 이야기한다면 말말을 꺼내기가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인상 깊게 본 영화들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새롭게 구성한 '3부 우리 일상 속 전쟁의 모습들'에서는 너무나 거대한 이야기인 전쟁(폭력)을 청소년들의 일상과 연결한 이야기를 하고자 구성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청소년들의 일상을 잘 모른다. 내가 짐작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내가 (공부해 보고)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소재들을 골랐다. 그 때문에 가장 야심 찼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아쉬운 것이 3부다. 특히 나는 글을 쓸 때 활동가라는 내 정체성이 장점이 될 수 있는 글쓰기를 늘 염두하는데, 3부의 이야기는 활동가로서 내가 캠페인을 기획하고 조직한 이슈들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내 장점을 전혀 발휘할 수 없었다. 부족한 만큼 물꼬를 튼다는 생각으로 썼고, 독자들 뿐만 아니라 동료들이 읽고 부족한 점을 지적해 주고 발전시켜나가 주면 좋겠다.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차례



계속 쓰는 사람이 되자 


엊그제 <춤추고 싶지만 집이 너무 좁아서> 뒤풀이에서 만난 홍은전 선생님은 활동가들이 바쁜데 어떻게 글까지 쓰라고 하냐고 말씀하셨지만, 내 경우엔 바쁘더라도 아니 바쁘기 때문에 더더욱 글을 써야 한다. 그래야 나의 주장과 생각, 활동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바쁜 일상에만 매몰되면 불가능한 것들을 얻기 위해서라도 나는 글을 계속 쓰려고 한다. 또한 글쓰기는 공부의 가장 좋은 방식이다. 나는 활동가로 계속 성장하고 싶고, 그렇기 때문에 공부를 한다. 가난하고 바쁜 활동가들이 따로 돈과 시간을 들여 공부하기 어렵다면 글쓰기만큼 좋은 공부의 방법도 없지 않나 싶다. 이때의 공부는 꼭 내 활동 분야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나를 지적으로 자극하는 다양한 분야의 글을 읽고, 내 글을 쓸 때 여러 독서에서 배운 것들을 내 언어로 써먹는다면 그것만큼 즐거운 일, 뿌듯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그리고 하나 더, 온전하게 혼자 있는 시간을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옛날에는 나도 사람들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채우는 편이었는데, 지금도 기본적으로는 그런 성향이지만, 갈수록 나는 온전하게 나 혼자 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아무래도 활동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설득하는 게 주된 업무인지라, 그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되는 거 같다.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도 반복하면 지치니까. 그럴 때 나는 요새 혼자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큰 휴식이 된다. 사람은 만나야겠고, 실제로 만나면 에너지가 딸릴 때 독서를 통해 간접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쓰면서 혼자서 타인과 대화를 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독자를 떠올리며 글을 쓰면 더더욱 대화하는 느낌이 된다.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면서도, 그와 완전히 상반되는 욕구-혼자만의 시간과 공간 또한 만끽할 수 있으니 이처럼 효율 좋은 취미가 어디 있겠나.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애써 쓴 글이 사람들에게 아무 반응도 없고 외면당하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잘 안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이번 책이 잘 팔리면 좋겠다. 칭찬이든 비판이든 많은 반응을 보고 싶다. 안 팔려도 계속 글을 쓸 거지만, 기왕이면 더 즐겁게 쓰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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