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지역, 지하철에서 내리는데 느낌이 싸했다. 지갑을 의자에 두고 내린 느낌. 겨울에는 주로 외투에 지갑을 넣어 다니는데 여름에는 가방에 넣어 다니는 편이다. 바지 주머니에 지갑이든 핸드폰이든 넣은 채로 앉으면 불편하니까. 내리자마자 가방을 뒤졌으나... 역시나 없었다. 떠난 지하철을 멍하니 바라보다 일단 분실신고를 하려고 역무원 사무실을 찾았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 인터폰을 누르니 반대편으로 오라고 한다. 내가 지하철 내린 게 32분, 40분에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마음이 급했다. 반대편으로 후다닥 달려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약속 장소에 갔다. 대통령실 방문하는 길이었는데, 출입하려면 신분증이 필요하다. 지갑을 잃어버렸으니 신분증도 없다. 핸드폰에 저장된 신분증 사진을 보여주고 핸드폰을 맡기고 겨우 들어갔다. 미팅을 하는데도 지갑을 잃어버렸으니 명함도 없다. 바보같이. 혹시나 해서 유실물 통합포털을 무슨 대학 합격 발표 기다릴 때처럼 수시로 들어가 보지만 감감무소식이다. 분실자 이름 "이용석"으로 검색해 보니 게시물이 하나 나온다. 그런데 명동 경찰서. 나는 6호선 지하철 안에서 잃어버렸는데 명동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검은색 지갑이라니, 그리고 분실자가 내 이름과 같으니 기대를 품고 클릭해 봤지만 역시나 내 지갑이 아니다.
아침 출근을 하려는데 평소 신고 다닌 안전화가 어쩐지 냄새가 나는 느낌이다. 원래 종종 바람을 쐬고 햇볕에 말려야 한다. 탈취제를 뿌리고 베란다에 내놓고 출근했다. 지갑 없으니 교통카드도 없어서 책상 서랍 뒤적여 외국 활동가가 왔을 때 사준 티머니 카드를 챙겼다. 현금 5천 원을 충전해서 버스를 탔다. 평소 교통카드 기능이 있는 신용카드 한 장을 스페어로 집에 두는데 그것도 지갑에 넣었나 보다. 바보같이. 합정에 도착해 버스를 내린다. 날이 꾸무럭하다. 오늘 비 온댔지. 순간 베란다에 내놓은 신발이 떠올랐다. 비를 쫄딱 맞겠네. 냄새가 오히려 심해질 거 같다. 신을 수 있을까? 되는 일이 없다.
지갑 잃어버리고, 신발 내놨는데 비 맞게 생겼고. 어찌 보면 그냥 운이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정신이 없는 거다. 머리가 혼란스럽고 뒤죽박죽. 이건 내 몸이, 내 머리가 나에게 보내는 이상 신호라는 걸 나도 안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걸 경고하는 거다. 10월이 지나면 그래도 좀 여유가 생기겠지. 11월이 올 때까지만 잘 버티자. 지갑도 찾고. 그러면 운수 좋은 날 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