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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사이 Mar 20. 2022

동시와 함께 둥글어지는 시간

나는 법

『나는 법』 김준현 시

상미 그림 / 문학동네
(제5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 수상작)





책 표지 속 멈춰 선 아이의 뒷모습에서 떠오르는 시를 소리 내어 읽고 싶은 계절이다. 구름 위로 날아가는 고래의 꼬리를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 색색의 지붕은 저 멀리 옹기종기 모여 있고, 아이는 고래를 따라 먼 하늘로 날아가기 직전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점점 아이의 눈빛을 닮아간다.

김준현 시인의 말처럼 '눈사람 머리를 굴리듯' 동심을 굴려 만들어진 동시들에 아름다운 집이 생겼다. 눈길이 오래 머물 집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김준현 시인이 쓴 동시와 차상미 작가의 그림은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짝꿍 같다. 차례를 읽었을 뿐인데 마음에 이름 모를 싹이 돋아난다.


제1부 바다로 가고 싶은 자전거를 타고
제2부 흰 크레파스로 점 하나를 찍었다
제3부 말에도 뼈가 있을까?
제4부 단단하고 차가운 자물쇠를 간질이면
제5부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새가 되었다





연을 띄우려면
내게는 긴 활주로가 필요해요

무당벌레가 높은 곳을 찾아 기어오르는 것처럼
육상 선수가 결승선을 뚫고 힘껏 뛰어오를 때처럼
활짝
지느러미를 편 가오리
연이 떠올라요

얼레를 돌리면 바람이 감겼다가 풀리고
몽골에서 온 바람인지
독수리만큼 묵직한 게 걸렸는지
팽팽해지는 실
덥석, 구름이 물고 있는지도 몰라

구름으로 연결된 전화선을 타고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엄마

가오리가
지느러미를 파닥파닥 떠는 걸 보니
추운가 봐요, 그곳은

새가 없는데 새장이 있듯이
엄마가 없어도 엄마 눈빛이 남아 있듯이
가오리가 없어도
가오리 그림자가 남아 있는 이곳에서
몽골까지
페루까지
우리 함께 여행을 가요

새들이 지나는 길목에
물고기 한 마리를 놓아주면
언젠가 바람이 될까요?

활주로의 끝에서
나는 눈이 먼 하늘로 날아가기 직전이에요

_「나는 법」 전문


동시를 눈으로만 읽기에는 아쉬워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었다. "연을 띄우려면/내게는 긴 활주로가 필요해요"라는 구절에서부터 서서히 날아오르는 '나는 법'. 바람을 안고 하늘로 떠오른 가오리연, 어느새 실이 팽팽해진다.




한 소녀가 언덕 위에 서 있다. 소녀의 시선은 두둥실 떠 있는 구름과 연결된 실에 걸려 있다. 바람을 타고 너울거리는 소녀의 치맛자락을 따라 시가 출렁인다.


사람은 어른한테만 씨를 붙이는데
열매랑 꽃은 어릴 때만 씨를 붙여 줘요

이불을 덮어 주는 것처럼 흙을 덮어 주고는
그만 까먹어 버린

장미씨
봉숭아씨
수박씨
자두씨

_「씨」 부분


아무도 봐주지 않아도 조금씩 자라 어른이 되고 있다는 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 바다로 가고 싶은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바다, 소리'를 하나씩 시에 담아낸 시인의 목소리에 눈앞이 환해진다. 동시를 읽으며 다 똑같이 생겼지만 떨어지고 싶은 곳은 다른 빗방울이 되었다가 흰 크레파스로 점 하나를 찍어 별 그리는 법을 배웠다.





국어책에 있는 글자를 다 주워 모아
흰 눈 위에 수북한 나뭇가지처럼 주워 모아
모닥불을 피우자

그러면 빈 국어책은 함박눈 내린 초원처럼 넓겠지
나는 페이지를 넘어 다니며
순록처럼 뛰어놀겠지

국어가 없는 사람처럼

_「인디언 아이처럼」 부분


"모닥불에 둘러앉아/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사냥 이야기를 들으면서/잠이 드는 인디언 아이처럼" 동글동글 굴러가는 동시는 "어린이들을 태우고/어린이들이 있는 곳으로" 눈사람 머리를 굴리듯 굴러간다.


만나고 싶은 너, 어린이를 향해. 서로를 껴안고 와글와글 튀어나온 말들이 마구 달려간다. 톡톡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처럼 가슴을 두드린다.


넓은 종이 위에서 마음대로 나아간 말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세상을 보여준다. 동시를 통해 잊고 있었던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질문하는 법을 다시 배운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간질간질 마음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간지럼


단단하고 차가운
자물쇠에도 배꼽이 있어요

열쇠를 넣고 이리저리 간질이면

저도 모르게
꾹 닫고 있던 입을 벌리고
키득키득
마음이 열리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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