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상]
반복되는 바쁜 일상을 살다 보니 참 글 쓰는 거에도 게을러졌다.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외출도 버리고, 점심도 버리고, 브런치도 오랜만이 돼버렸다.
가끔 브런치에서 안부 인사가 있는데. '작가님 글이 보고 싶어요...'라고 시작하는 말은 날 잊지 않고 찾아준다는 반가움과 동시에 나의 게으름으로 찔리는 마음이 동시이다. 무언가 돌려 까는 것 같기도 하고..
암을 제거한 후 마지막 재검진 때 암 제거는 되었지만... 아직 암으로 발전할 수 있는 세포가 남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계속 추적검사만이 답이라고 한다. 암으로부터 해방이 되고 싶다면, 모 자궁적출의 방법도 있겠지만.. 말이다.
암환자 등록은 사실 그렇게 기분 좋은 것이 아니었다.
말하기 싫은데 나만 알고 싶은 걸 꼭 나라에서 '넌 암환자야'라고 크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여러분 여기는 암환자 입니다!!!!!
내가 9년 전, 결혼식 전 혼인신고를 하고 나서 느낀 부분이다. 사실은 우리 부부 모두 혼인신고든, 결혼식이든 중요한 부부가 아니었다. 혼인신고는 누군가에게 들은 건강보험 혜택이 좋다는 이유로.. 모 바보같이 각자 소득이 있는 사람은 혜택은 없었다. 결혼식은 신랑의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어르신들의 소원을 들어주자라는 이유로, 모.. 그렇게 결정한 것뿐이다.
혼인신고가 참 웃긴 게.. 남녀의 결정을 정부가 관여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모 이상하냐라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난 참 그게 이상했다... 남녀의 각기 다른 성의 평생 만남을 정부에게 보고하는 것 같았다.
나라님, 우리 부부가 돼요!
ㅡㅡ;
암환자 등록도 혼인신고만큼 너무 이상했다. 근데 좋은 점도 있다. 일단 진료비가 싸다. 그리고, 나라에서 60대 이상 어르신들에게만 제공되는 코로나 4차 백신도 면역저하자에 해당되는 이유로 4차 백신까지 맞았다.
그 덕분인지, 운이 좋은 건지 모르겠으나. 아직까지 코로나에 걸리지는 않았다. 코로나 확진자들 사이에서 말이다.
나는 알 수 없는 선택을 미리 하는 것에 용기가 없는 사람이다.
암으로부터 해방되는 자궁적출 수술을 고민하는데 참 자의로 선택하기가 힘들더라.
그래서 나에게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쉬운 선택을 주기로 했다.
본의 아니게 미루고 미뤘던 시험관 시술이다. 노력해볼 때까지 해보고 안되거나. 내가 지치거나 할 때 미련 없이 자궁적출 수술을 하기로... 그렇게 시험관 시술을 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아이를 절실하게 원하는 누군가에게는 참 몹쓸 마음이고, 엄마가 될 준비가 미숙한 사람일지 모른다.
몇 년 후 그때 시험관이어도 노력해볼걸 그랬어라는 후회도..
아이를 갖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늘 암에 노출되어 있다는 불안감도..
오로지 나를 위한 시험관 시술인 것이다.
난 신을 믿지는 않지만, 아이는 정말 신이 내려주신 선물일 것이다.
너무 감사하게도 그런 선물이 나에게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내가 편해서인지도 모르지만..
시험관 시술이 바로 되는 것이라 생각했던 참 무지하게 시작했던 3개월 전.. 아직도 시험관 시술의 '시'자도 시작하지 못했다. 노산이니까. 참 안되는 것이 왜 이리 많은지...(다시 한번 암묵적으로 내 나이가 많다고 얘기해주는 기분)
이 과정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 모르겠지만... 하기로 했으니.
시험관 시술까지만 제발 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다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처절하게 바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