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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K Feb 28. 2024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인생

인생은 항상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요. 새로운 방향으로 가는 것이 때로는 두려울 수 있지만, 새롭고 흥미로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는 생각이 들 때 더 이상 두렵지 않을 거예요 - 수잔 게일


Life doesn't always go according to plan. Sometimes heading in a new direction can be scary until you realize you're headed toward a new and exciting desitation - Susan Gale


제 인생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러할 거예요. 인생은 항상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선명하게 마음속에 각인되는 느낌입니다. 


10년 전 저는 한국에서 물류회사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이메일과 전화 그리고 엑셀로 가득한 업무환경 속에서 많지 않은 월급을 받으며 시스템에 순응하는 그런 말단 신입사원이었죠. 취업 합격 통지를 받고 입사 후 약 한 달 동안의 기간만 기뻤던 것 같네요. 그 이후론 하루하루가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물류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기에 열심히 업무를 배우려 했지만 정말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닌 것 같았죠. 1년의 방황 끝에 갑자기 캐나다로 가고 싶어 졌어요. 예전부터 막연히 해외 생활에 대한 동경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현재의 답답함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뒤로 회사 점심시간 사무실에서, 퇴근 후 카페에서 캐나다 정착 계획을 짜느라 몇 달을 할애했는지 몰라요. 계획하는 것을 좋아하는 인프제 성격이라서 그렇지만 무엇보다 계획을 세우면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있거든요. 그때 '캐나다 정착 프로젝트'를 위해서 만들었던 완벽한 시나리오는 대략 이랬습니다. 


1. 영주권자가 아닌 외국인도 쉽게 취업할 수 있는 캐나다대학에 입학한다.

2. 입학하기 전에 한국에서 예습할 수 있는 모든 과목들은 예습하고, 필요한 자격증도 미리 준비한다

3. 여름방학 때 무조건 인턴쉽을 한다

4. 졸업 후 6개월 안에 취업한다


3번을 제외한 모든 항목들을 이루긴 했습니다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캐나다에서 배운 전공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곳에 생존을 위한 취업을 했고요, 학점과 자격증은 취업에 쓸모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리고 웃긴 건 뭔지 아세요? 한국에서는 100프로 문과생이었는데, 지금은 말도 안 되게 캐나다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계획에는 없었던 일이었죠.


처음 "용접공학과"라는 곳에 입학했습니다. 산업기준에 맞게 용접이 잘 되었는지 문제는 없는지 품질을 체크하는 용접검사원을 배출하는 곳인데요, 앨버타 주는 모래석유가 나와서 거기에 관련된 업종들이 많이 있어서 그만큼 수요도 높은 과였죠. 용접을 평소에 잘했냐고요? 아니요. 샤프랑 펜만 잡아봤어요. 손재주가 뛰어나냐고요? 아니요. 어머니께서는 제게 '손재주는 엄마 닮아서 없다'라고 하셨죠. 정말 외국인 노동자로 취업하기 위해서 선택한 과였어요. 그리고 이 학과는 학교 웹사이트에 따르면 취업률이 90프로가 넘는다고 되어있었거든요. (그걸 그대로 믿다니, 그때 저는 정말 순진한 아이였네요..). 


입학 후 모든 것은 순탄대로 로 가고 있었습니다. 학점도 잘 관리하고 (7시 이후에는 도서관에 아시아계 유학생들 밖에 없더라고요) 방학 때는 자격증도 미리 따고, 졸업 전공 프레젠테이션에서도 말도 안 되는 문법 파괴의 영어를 구사하며 1등을 했습니다. 그날 석유산업에 종사하시는 많은 기업 임원분들이 오셨는데, 이력서를 드리며 '2년 고생하니까 이제 이렇게 취업이 되는구나! 고생했다!' 하고 제 스스로 감동을 했죠. 비록 인턴쉽을 하지 못했지만 취업은 바로 제 눈앞에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매시간마다 이메일과 전화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주위에서 하나둘씩 전공 관련 회사에 취업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정말 놀기만 좋아하고 학점엔 관심이 없었던 애들이었는데 인맥을 통해서 취업을 했다는 사실에 평등하지 못한 사회에 분노를 가지기도 했죠. 사실 이때부터 캐나다에서 취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기 사람들이 취업에 있어서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아는 취업 전략은 한국에서만 통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죠. 


비싼 학비와 생활비로 통장의 잔고는 줄어만 갔고, 인도, 필리핀, 중국 등 여러 외국인들이 가득한 취업박람회에서 줄을 8시간 이상 선 끝에 이력서 한 장을 겨우 낼 수 있었던 아픔을 맛보기도 했죠. 결국 생계유지를 위해서 공항에서 카트를 끌고 정리하는 풀타임 잡을 아는 친구를 통해서 얻게 되었습니다. 전공과는 거리가 먼 일이고 키보드와 마우스만 다룰 줄 아는 30대 한국인이 카트를 잡는 일은 생소했지만 돈을 벌 수 있어서 기분은 좋았습니다. 영하 30도인 날씨에 밖에서 계속 서있어야 하고 공항에는 별에 별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요. 하지만 여기 공항에서 일하면서 결정적인 사건 하나로 결국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전공과 관련된 취업에 실패해서 결국 생계유지를 위해 얻은 직업이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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