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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끼리의지혜 Feb 06. 2022

나이 듦,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이제 당당히 떡국을 먹겠다. 

임인년 구정이 지났다.      


매년 1월 1일이 되면 떡국 한 그릇에 나이 한 살이 더해진다는 속설에, 신정 떡국은 고사하며 구정 때 먹겠다 하기도 하고, 구정에라도 어쩔 수 없이 한 그릇 먹으면 – 비로소 생일이 지나야 한 살을 더 먹는 것이라며 나 자신을 기어코 위로했던 것 같다. 나이 드는 것 만큼은 한없이 늦추고 싶어서이겠지.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한 무게감, 부담, 그리고 젊음에 대한 영원한 동경,,, 이유도 많은 것 같지만, 어쩌면 나이 드는게 생각보다 괜찮은 거라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istockimage

떡국 한 그릇에 한 살 먹은 게 살포시 부담스러웠던 시점에, 구정 가족 모임을 끝내고 집어든 책 서문 즈음에서 '나이'라는 것의 역설적 관점 차이가 느껴지는, 그래서 마음에 새겨지는 문구를 접했다.      


Get old. You’re lucky if you do.
당신이 나이 들 수 있었다면, 행운이다. 
     

고령화에 대한 책이기는 했지만, 나이듦, 노인을 정의하는 기관/국가 별 연령 기준, 나이듦의 의미 등을 인트로에서 정리하는 부분이었는데 – 구정을 맞아 떡국 한 그릇 먹었다는 이유로 나이가 드는 것이 어렸을 적 의미와는 사뭇 다른 40대여서 인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책 한 켠의 이 문구는 호주에서 활동하는 언론인이자 사회평론가인 제인 카로(Jane Caro) 의 「늙어가는 것: 노화라는 것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Growing old: The Unbearable lightness of ageing)」 이라는 들어보지 않고는 베길 수 없는 제목의 Ted 토크로 57세 나이에 세상을 갑자기 뜨게 된 친구를 추모하며 마무리하는 멘트이다.  

Pinterest

제인 카로는 여성의 나이듦을 여성의 생애 주기적 신체적 변화에 따라 유쾌하지만 신랄하게, 위트 있지만 진지하게 풀어내어 어느 희곡의 독백을 보고 있듯 나이 든다는 것이 우리가 평소 받아들이는 것만큼 무겁거나 우울하지 않고, 되레 “나 다움”을 기필코 찾아가는 하나의 여정으로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를 준다. (화자는 여성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은 유의하길 바란다.)     


열 살 무렵 가슴이 나올 때부터 사춘기를 겪으며 생리를 시작할 때부터 여성들은 미세하지만 편하지 만은 않은 가슴의 변화를 매달 28일 주기, 약 2주간 호르몬의 변화로 반복적으로 겪는다. 가슴이 처음 생길 때는 살짝만 쳐도 아프고, 여자들이 뛸 때 우스꽝스럽지만 상의를 의식하는 것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이기도 하겠지만 뛸 때마다 느껴지는 가슴의 불편함 때문이다. 모유 수유 하는 여성들도  자기도 모르게 상의가 젖어 있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가슴이 빚어내는 여성의 육체미 덕에 폐경기가 올 때 까지는 의식조차 못했던 반복적인 불편함을 줬다는 것이다. (이제는 가슴을 처도 불편하지 않다며, 자기 가슴을 치며 웃음을 자아낸다)     


나이가 들어 폐경이 되고 살이 늘어지면, 젊었을 때 아름다웠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파괴되지만, 결코 – 이런 변화가 괴롭지만도 않고, 나쁜 것만도 아니라 한다.     


흰색 바지를 입어도 뒤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날만 존재고,  승차감 안 좋은 차를 타고 가다 움푹 패인 웅덩이를 덜컥 지나가도 묵직한 가슴의 출렁임이 더 이상 불편하지 않고,  임신이 될 까봐 피임을 해야 할 필요도, 또 임신이 하고 싶을 때는 임신이 안 된다고 고통스러워 할 필요도 없이 섹스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되고, 경쟁적으로 예뻐지기 위해 목숨을 걸면서까지 성형수술을 할 이유보다 인생에 더 중요하고 귀한 것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젊었을 적에는 내가 이 방에 있는 누구보다 이쁜지 잘났는지를 신경 썼고, 그렇지 않다면 성형수술이나 다이어트를 해서라도 예뻐지려고 노력하지만, 나이가 들어 엄마라는 역할을 해내며 살은 처지고 몸 곳곳에 튼 살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 자체를 나로 인정하고 그런 몸이 편해지고 나라는 사람으로 품어내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외적인 변화는 있을지라도, 엄마라는 역할을 해내며 장성한 아이들과 인간적으로 성숙해진 나 자신, 그 과정에서의 경험만으로도 풍성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 삶에서의 가치, 기준, 경험도 함께 나이 들어 가기 때문에 나이 들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는 것이다. 살아있어 그 시간들을 경험해 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귀한 선물이라는 것이다.  왜 우리는 항상, 떡국 한 그릇 먹고 나이 드는 것이 부담스럽고 안좋을 거라고만 생각했던 것인지.  나이들면, 어렸을 적 힘들었던 것이 쉬워지거나, 별거 아닌게 되기도 하는데 말이다. 



Growing old: The unbearable lightness of ageing | Jane Caro | TEDxSouthBank

https://www.youtube.com/watch?v=ULqf3Oyem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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