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이스탄불
2006년 배낭여행의 시작은 튀르키예였다.
너무 더운 것도 싫고, 그렇다고 추운 것도 싫으니 나름 머리를 써서 5월 말쯤 도착했는데 이스탄불의 봄은 생각보다 너무 추웠다. 원래는 튀르키예에서 한 달쯤 여행을 하고 이집트로 가려다가 날씨가 너무 추운 탓에 도착한 지 이틀 만에 이집트로 날아갔다. 그렇게 한 달 후 다시 돌아온 이스탄불
당시에 동양호텔이었던가?
이스탄불 술탄아흐멧 근처에 한국인이 하는 호텔이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호텔 같은 방도 있고, 도미토리 스타일의 호스텔 방도 있어서 그곳에 묵었다. 돌아온 이스탄불은 여전히 추웠다.
여행에서 늘 유쾌한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다양한 캐릭터의 사람들도 종종 목격했다. 이스탄불의 어떤 장소였는데 여행하다 마주친 몇 명의 한국인들끼리 모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특정한 종교가 없지만 신은 있다고 믿어
누군가가 말을 시작하는데 어떤 사람이 갑자기 빽 소리치며 말했다.
신이 있다고? 봤어? 만나봤냐고
애 같은 소리에 모두가 어리둥절해 있는데 그가 다시 말했다.
아니 만나보지도 못한걸 왜 믿지? 눈에 안 보이는 걸 왜 믿어. 있다고 믿으면 증명해 봐.
결국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려던 자리는 그렇게 흐지부지 파하고 말았다. 그러고 하루이틀 정도 그와 같은 자리에서 마주치거나 잠깐의 일정을 함께한 적이 있는데 영 불편해 어느 순간부터는 나는 그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여행을 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같이 일정을 소화한 정도는 아니고 다른 도시로 잠깐 같이 이동만 했던 어떤 분이었는데, 도시에 도착해 삼삼오오 찢어져 숙소를 구하기로 했다. 그때 당시에는 어떤 도시에 도착하면 눈에 보이는 숙소마다 방문해서 방이 있는지, 가격을 얼마인지, 혹시 할인은 가능한지를 물어보고 최종적으로 숙소를 정했다. 몇 번 그런 숙소 구하기를 하다 보니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다. 기차역이나 버스 터미널에 있는 카페나 식당에 잠깐 들러 그 주인이나 가게 있는 여행자에게 괜찮은 숙소를 알고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는데, 그때도 그렇게 몇몇 사람에게 정보를 얻은 후, 몇 곳의 숙소를 돌고 있는 참이었다. 모두 각자에게 소중한 여행이기 때문에 이렇게 같이 숙소 탐방을 한다고 해서 꼭 같이 묵거나 하지는 않는다. 자기 예산이나 마음에 드는 숙소를 발견하면 누군가는 거기에 바로 짐을 풀고, 또 다른 사람들은 다른 숙소 탐방을 하러 나가고 그런 분위기였다.
그렇게 돌다 한 호텔에 들렀을 때 같이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곳을 맘에 들어했다.
좁고 낡은 시설이었지만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했고, 깨끗해서 오- 괜찮다! 를 연발하고 있는데 그가 말했다.
아, 이런 데는 안돼. 안돼. 무조건 안돼
그 도시로 이동하던 시간 동안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해외 배낭여행을 자랑해 왔던 통에 사실 모두 그에게 지쳐있는 상태였다.
저는 여기로 할래요. 3박 하면 금액도 할인해 준데요.
글쎄 이런 데는 안된다니까!!
소리를 버럭 지른 그는 그대로 호텔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대로 그와 영영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았으련만... 도시가 워낙 작은 탓에 몇몇의 주요 관광지에서 그와 마주쳤다. 그때마다 그는 너무나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xx호텔에 있는데 밤에 놀러 와! 옥상이 끝내주니까 거기서 술이나 마시자. 내가 살게!
물론 그를 찾아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 20대였던 나는 해외로 배낭여행 나온 어른들은 진짜 이상한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다. 따뜻하고 좋은 어른도 많이 만났지만, 그 비율만큼이나 이상한 사람들도 있었다. 희한하게도 튀르키예에서 참 묘한 한국 어른들을 많이 만나서 결국 혼자 다니는 것을 선택해 한동안은 입도 꾹 다물고 다녔었다.
이때만큼 내 인생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한국인, 외국인,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 등등... 도무지 규칙 없이 진행되는 랜덤 플레이처럼 나의 기분이나 바람과는 무관하게 매일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겪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터득하고 나와 외부 세계의 경계를 인식하는 방법도 배웠다.
물론 그때 당시에는 몰랐다. 어느 순간 내가 왜 이렇게 고생하면서 여행을 다니고 있지?라는 생각을 한 적도 많았고 사회적인 경력이 늘어나고 일이 바빠지면서 어느 순간 배낭여행의 시간들은 점점 잊혀갔다. 자아실현 2차라고 말을 붙여도 좋을 만큼 나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 요즘, 내가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했지? 하면서 기억을 더듬어가다 보니 그 시절에 배운 것들이 참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2006년의 튀르키예는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그런데 그래서 슬픈 청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프레임 안에 빈 곳 없이 생동감 넘치는 배경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지만 돌아서면 일기장에 우울한 언어들만 가득 쓸 것 같은 주인공을 보는 느낌이랄까. 특히 다시 필름에 남은 장면들을 꺼내보니 그때의 그 묘하게 탁한 기운이 가득히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