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괴레메
이스탄불에서 괴레메로 가는 길은 꽤나 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속버스도 타고 자그마한 봉고 같은 차도 타고 온종일 이동을 했었다. 그 온종일 이동을 하다 갑자기 드라이버가 차를 멈춰 선 일이 있다. 작은 봉고를 타고 가는 길이었는데, 차에서 내린 그는 작은 카펫을 깔아놓고 어떤 방향을 향해 기도를 했다. 이슬람교가 많은 이집트, 튀르키예 여러 지역을 여행했는데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 당시에는 길게 배낭여행을 하다 보면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한국인들끼리 뭉쳐져 일행이 되는 경우가 흔했다. 여럿이 함께 다니면 이동 편을 구할 때도 선택 범위가 넓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혼자는 하지 못하는 행동(?)을 무리가 되었다는 이유로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인정한다. 상당 부분 어글리 코리안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여행을 하다 보면 아, 이제 헤어져야 할 때구나를 몸을 직감하는 순간이 있다. 내게는 괴레메에서 함께했던 그들이 그랬다. 자잘하지만 내겐 상처였던 몇 가지 기억이 있긴 한데 굳이 다시 떠올리고 싶지는 않다. 사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이었느냐가 아니었다.
말하자면 포인트는 이거다.
사회적인 관계에서 눈치 보고 조심하고 감정을 숨기던 것을 하나의 거대한 무리가 되고 나니 다시 또 해야만 한다는 것. 저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이 친구는 나보다 어리니까. 이런 분위기에선 이렇게, 아닐 땐 또 다르게.... 기껏 사회적 스트레스에서 멀어져 여기까지 왔는데 그걸 또 하고 있다 보니 다시 또 원점.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지?
날씨는 완벽했고, 풍경은 서러울 정도로 아름다운데 살면서 그렇게까지 외톨이가 된 기분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용기 있게 내가 먼저 떠났어도 됐을 텐데 그땐 용기가 없어서 그것도 못했다. 며칠을 한 숙소에서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질 구실만 찾았다. 예민함조차도 스트레스여서였을까? 감정적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고 나니 오히려 멍해졌다. 인연의 소중함, 뭐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은 알겠는데 이게 인연인지 악연인지도 판단이 되지 않았다.
괴레메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동굴마을 여기저기를 같이 떠돌다 사진 시중을 한참 들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딘지도 모르는 동굴 안에 나 혼자 남겨져 있었다. 그제야 마음의 결심이 섰다.
여기서 더 뭘 보고, 먹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지금 마음을 회복하고 감정을 다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 조금 울었는지 어땠는지는 기억이 희미하다. 그저 기억나는 것은 나의 소중한 친구들과 바로 연락할 수 없고 이 많은 감정을 받아줄 상대가 없는 현재 지구상에 완벽히 혼자인 사람이라는 생각은 했던 것 같다.
투어가 끝나고 그들은 유명한 맛집으로 식사를 하러 우르르 떠났다.
나는 대충 핑계를 대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싸면서 주인에게 내일 체크아웃하겠다고 말하고 다음에 갈 도시를 추천받았다.
이동할만한 도시를 추천해 주던 주인은 짐을 싸는 나를 보다가 관광객은 잘 모르는 선셋 포인트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추천했다. 자기 가족들이 잠깐 볼 일을 보러 가는 길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숙소에는 나와 그날 막 체크인 한 한국인 소녀 한 명 있었는데 그녀와 호텔 주인의 가족 몇 명과 함께 차를 타고 선셋 포인트로 향했다.
해가 지기 전은 많이 추웠다.
갖고 있는 모든 옷을 껴입고 아무것도 없는 전망대 비슷한 곳에서 쭈그려 앉아 각자 원하는 모습으로 선셋을 기다렸다.
잘 결심한 거야. 나는 회복하고 나면 또다시 잘 해낼 수 있어
그렇게 속으로 나를 위로하다가도
용기가 안 나서 아무것도 못하면 어쩌지? 사실 다시 혼자가 되는 것은 너무 무서운데
내가 그 도시에 가고 싶긴 한 걸까? 지금 이건 이동일까 도망일까?
복잡한 감정이 몰아닥쳤다. 그래도 잘 지냈던 한 명과는 제대로 잘 이별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서지 않았다. 결정은 했지만 완전히 시원한 마음은 아니었다.
무리 중 그래도 잘 지냈던 한 명과는 다음 날 아침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짐을 챙기고 나섰을 때 이미 그 사람은 다른 무리들과 벌룬투어를 떠나고 없었다. 예쁘게 꾸며진 호텔 테라스에 앉아 멍청하게 기다리는 나를 보고 호텔 주인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나서야 그 사람이 숙소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멀리 떠다니는 벌룬을 한참 구경하다가 배낭을 메고 일어섰다.
어이없는 기분이긴 했지만 배신감이라던가 그런 극단적인 감정은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속이 시원한 마음이 더 컸고 돌아서는 발걸음에 더 이상의 미련이나 비굴함 같은 것도 느끼지 않았다.
Epliogue
이때 만났던 무리들하고 사진을 나누기 위한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았었는데, 여행 이후 나에겐 단 하나의 메일도 오지 않았다. 다만 그때 잘 지냈던 그 한 사람만이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나한테 메일을 보냈었다. 결론은 그때 찍은 본인 사진을 요구하는 메일이라 무시하고 말았다. 오랜만에 튀르키예 여행사진 폴더를 보니 거기에 그때 그 무리의 모든 사람들이 사진으로 여전히 남아있지만 지우지는 않을 생각이다. 무슨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이것도 내가 살아온 시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