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풀린 어느 날의 기억

튀르키예 쉬린제, 셀축

by 첼라

며칠간 숙소에서 칩거의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밖으로 걸어 나갔다.

시장을 구경하고 맘에 드는 것이 있다면 몇 가지 기념품을 사고 싶었다. 이 날은 디지털카메라는 숙소에 두고 필름 카메라만 들고 나섰다. 특별히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저 동네나 둘러보고 쇼핑이나 할 작정인데 카메라를 두 개나 짊어지고 나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튀르키예 쉬린제 @2006


필름 카메리가 좋은 이유는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다.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날의 작은 에피소드라도 꼭 하나 떠오르는 것이 생긴다. 가끔은 떠오르는 것들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기분이 지나지 않는 것들이기도 하지만 뭔가 하나는 꼭 생각이 난다. 특히 이번 튀르키예 사진들은 특히나 그렇다.


두 번째 배낭여행을 할 때 뭔지 모를 자신감 같은 것이 나에겐 있었다.

이미 한 번의 배낭여행 경험이 있기도 했고, 좀 더 다른 세상을 보러 가는 나 스스로가 대단해 보였다. 사람 복도 꽤 따르는 편이라 어디서든 좋은 사람, 멋진 사람들을 만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 같은 것도 있었다.


튀르키예 쉬린제 @2006


그렇게 자신감(인지 자만인지 구분하기 힘들지만)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때 꼭 뭔가가 하나 터진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당연하다. 자기 자신이 비대해지면 주변은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나만의 여행이라는 그 위대하고 대단한 주제 덕분에 주변이 나를 위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일도 괜히 예민하게 반응하고 확대 해석 하게 된다.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사람들의 진짜가 어떤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내 마음에서 구름을 몰아내는 일은 나만 할 수 있다. 그게 정면 승부든, 도망이든. 스스로 도울 수밖에 없는 일. 그걸 하늘이 진짜 돕는지는 모르겠지만.


튀르키예 쉬린제 @2006
튀르키예 쉬린제 @2006


튀르키예 사람들은 한국 사람에게 꽤 친밀감을 갖고 있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대부분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짧은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아무래도 한국전쟁 참전에 대한 역사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 특히 어떤 상점의 한 상인은 도대체 어디서 배운 말인지 모르겠지만 연신 우리가 남이가! 를 외치면서 호객을 하기도 했다. 우리가 남은 아닌데, 안타깝게도 그의 상점에서 내가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은 거의 없어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튀르키예 쉬린제 @2006
튀르키예 쉬린제 @2006


오랜만에 밖으로 나와 상점가를 걷는 일은 꽤 즐거웠다. 시장이 주는 활기찬 기운이 특히 그랬다. 무엇을 사지 않더라도 신기한 상품을 하나씩 구경하고 만져보면서 그렇게 여행 중 칩거 생활 이후의 첫날을 보냈다. 이 날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했고 그래서인지 어딘지 상해있던 마음 한구석을 어루만져주는 기분이었다.


애플티 추천입니다. 달달하고 맛있어요. @2006
추억의 Be the reds! 스카프도 발견했다 @2006


여행의 하루하루, 무척이나 소중하지만 긴 장기 여행에서는 쉬어갈 틈이 분명히 필요하다. 혼자 온전하게 하루를 보내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것 역시 꼭 필요하다. 입을 꾹 다문 채로 잠시 차단되어 있다 보면 다시 돌아와 하는 별 것 아닌 대화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turkey_0090.JPG 중세시대 같지만, 2006년입니다. @2006


딱히 인상에 남는 사건이나 관광을 하진 않았지만 튀르키예 여행이 기억이 남는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보기도 하고, 그 안에서 평소라면 겪지 않았을 다양한 감정을 느껴보고 다시 혼자가 되어 회복되는 이 과정을 지나오면서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 안에서 뭔가를 하나 키우긴 한 것 같다. 그럼 됐다. 그것 하나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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