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여행의 BGM

이탈리아 여러 도시들과 살짝 파리

by 첼라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음악을 고르는 일이었다.

지금처럼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라는 것은 아예 없었던 시절이니 512MB 용량의 MP3플레이어에 들어갈 20~30여 곡 정도를 신중하게 골라야 했다. 이 음악으로 짧으면 1개월, 길면 3개월의 여행 기간 동안 계속 들어야 하니까.


이땐 그나마 많이 업그레이드해서 무려 1기가짜리 MP3였습니다 @2009


담아갈 노래를 고르기 위해서 여행을 준비하면서 음악을 꽤나 많이 들었다.

여행 가는 나라의 가수 노래도 들어보고, 그 계절에 어울리는 음악도 골라보고, 그러면서도 꼭 넣어야 하는 최애 곡들도 다시 들어보면서 계속해서 리스트업을 했다. 스쳐간 수많은 음악들이 있지만 오늘은 그때 담아갔던 음악들 중에서도 정말 오랫동안 플레이리스트를 차지하고 있었던 소중한 곡들만 골라 돌아보려고 한다.


https://youtu.be/xgvckGs6xhU?si=mUjwvmN1yGHCh_Fu

김동률 - 출발


김동률의 출발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을 때, 내 주변의 여행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노래도 너무 좋았지만 특히 중국 쿤밍에서 찍었다는 뮤직비디오는 여행의 순간을 떠올리고 또다시 꿈꾸게 만들었다.

나 역시 여행을 떠날 때면 이 곡을 꼭 골라 담아 넣었고 인천공항에서 이륙할 때,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귀국행 비행기를 탈 때 무슨 의식처럼 꼭 이 곡을 들었다. 이 포스팅을 하려고 꽤 오랜만에 뮤직비디오를 다시 보았는데 여전히 너무 좋다.


인천공항 @2009


Gal costa 보컬 버전의 Wave 역시 빼놓을 수가 없다.

어느 나라, 어떤 계절에 여행을 가든 이 곡은 꼭 고음질 파일을 구해 넣었다. 연주곡 버전도 좋지만 늘 선택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버전의 Wave였다.


https://youtu.be/TRaRzTt5U1o?si=qevgwcdVx0euv1HF

Gal costa - Wave


난생처음 해외의 경험을 안겨주었던 그리스에서도, 햇빛이 너무 찬란해서 눈을 뜨기 힘들었던 포지타노에서도 이 곡을 들었다. 찬란하기도 하고 어느 한편으로는 아련하기도 한 이 음악을 들으면 아, 역시 여행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모든 곳에서 투명한 인상을 주었던 이탈리아 소렌토, 포지타노에서 꽤 많이 들어서인지 다시 들어도 이탈리아가 생각난다.


이탈리아 포지타노 @2004
이탈리아 카프리 @2004
이탈리아 폼페이 @2004



https://youtu.be/89hHEaDc3bo?si=cuyle3H3Mj9EK6tL

김현철 1집 - 오랜만에


베네치아에 도착한 시간은 매우 이른 새벽 시간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큰 짐은 코인로커에 맡겨두고 아침이 시작도 안된 새벽의 베네치아를 걸었다. 베네치아에서는 숙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날 하루가 유일한 일정이었다.

골목이 너무 많은 탓에 길을 찾지 못하고 있던 우리에게 어떤 아주머니가 직접 산마르코 광장까지 데려다주었다. 아직 식당이나 카페가 문을 열기 전 시간이어서 그 광장에 도착해 한참을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새벽의 푸른빛이 남아있던 그 광장에 한낮의 태양의 뜨기까지 앉아 이런저런 노래를 듣고, 일기를 쓰고 그저 멍하게 주변을 바라만 보면서 일행과 시간을 보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앉아만 있어도 좋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때 처음 알았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2004
이탈리아 베네치아 @2004


유재하의 미뉴엣이 가장 잘 어울렸던 곳은 비엔나와 파리였다.

(2004년 첫 배낭여행 당시 체코 프라하, 비엔나도 여행했었지만 안타깝게도 사진을 모두 날려먹은 탓에 단 한 장의 사진도 남아있지 않다.) 유재하의 음반이야 워낙 명반이라 지금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매우 유명하지만 내 최애 곡은 미뉴엣이다.


https://youtu.be/jtjtLnp6uyY?si=NRhDUhQnMEuCequo

유재하 - 미뉴엣


프랑스 파리 @2004
프랑스 파리 @2004
프랑스 파리 @2004


낮의 파리를 걸을 때 이 음악을 반복 재생으로 걸어두고 끊임없이 걸었다.

그때 아마도 10장짜리 티켓이 묶여있는 까르네를 샀던 것 같은데 돈이 아깝기도 하고 생각보다 파리의 주요 지역이 그렇게 크지 않아서 대부분 걸어서 이동을 했다. 파리 일정 내내 혼자였기 때문에 더 그랬다. 말할 일도 별로 없다 보니 하루 종일 음악을 들으며 걷다가 덥거나 지치면 잠깐 어떤 성당 앞 계단에 앉아 쉬기도 하고, 빵 하나를 사서 먹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요즘은 사실 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

적어도 예전처럼 신중하게 고르고, 진지하게 분위기를 타면서 듣지는 않는다. 오랜 시간 일을 하거나 운동을 할 때 습관처럼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긴 해도 뭘 들었다-라는 기억이 거의 없다.

오랜만에 이렇게 그 시절의 음악들을 찾아보니 그래도 인생의 어느 한순간이 기억된 음악들이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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