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쉬린제, 셀축
옛날 사진을 뒤적거리며 여행기를 쓰고 있는 요즘
다행히 사진을 볼 때마다 완전히 잊었던 기억에 떠오르기도 하지만 아무리 사진을 들여다봐도 여기가 어딘지, 여기서 뭘 했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 상황을 직면하기도 한다. 오늘 이 포스팅에 올린 사진들이 그랬다.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 여기서 뭘 했고 사진은 왜 찍었는지 도무지 하나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구글 사진 검색도 해보고 챗지피티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미리 셀렉트 해놓은 사진들을 하루 종일 들여다봤지만 젼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다 바람을 쐬러 잠깐 밖으로 나섰을 때 정말 한 대 맞은 것처럼 그날의 공기가 떠올랐다. 가끔 나는 아침 첫 공기를 들이쉴 때 아주 오래된 기억을 소환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기억은 기억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할 만큼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날의 공기, 바람, 온도와 습도가 딱 맞아떨어져 마치 조금 전의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는 일이 있다. 이 애플티의 향기가 오늘 그랬다.
관광객 티(tea)라고도 불리는 이 차는 튀르키예의 사람들이 여행객에게 한 잔씩 내어주는 차다. 날씨가 춥든 덥든 당연하게 아주 뜨거운 상태로 내어주는 때가 많은데 맛은 제각각이긴 해도 아주 달달한 사과향과 맛이 나고 끝에는 정말 살짝 찻잎 느낌이 나는 그런 차다.
괴레메에서 별로 좋다고 할 수 없는 기억을 갖고 이동한 도시는 쉬린제였다.
다른 도시를 들렀다 이동했는지 아님 바로 갔는지까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확실한 건 괴레메에서 빠져나와 혼자가 되어 방문한 도시였다.
투명하게 맑은 날씨였고 이때 잡은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먹던 아침이 매우 맘에 들었다. 토마토, 오이, 달걀 프라이에 빵이 함께 나오는 간단한 식사지만 튀르키예식 아침 식사는 단정하면서도 신선했다. 특히 빵이 맛있었다. 텁텁하지 않고 담백한 맛이다.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은데, 긴 여행을 하다가 지치면 한동안 나는 숙소에 틀어박혔다. 식사도 최소한만. 방에 틀어박혀 맘껏 자고, 뒹굴거리며 책 보기나 엽서 쓰기, 일기 쓰기 같은 걸 하다가 다시 낮잠에 빠져들기도 한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
어떨 때는 하루 정도에 끝나는 때도 있었고, 어떤 시기에는 이틀, 삼일을 그렇게 보내면서 밖으로 걸어 나갈 에너지가 생길 때까지 시간을 보낸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라는 생각을 완전히 버린다.. 온전히 시간을 컨트롤할 수 있는 것에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해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때로는 혼자만의 시간을 온전히 보내는 것으로 치유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상대가 지독하게 못돼서 생긴 일보다는 내 마음이 지옥이라 더 상처가 돼버리는 경우도 있으니까. 생각이 느린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런저런 단상을 정리하고 거기 맞춰 마음도 단장할 시간이 필요하다.
독일에 살고 있는 동생이 언젠가 말했던 표현이 가슴에 남는다.
자신만의 속도
성장도 멈춤도 생각도...
결국엔 나 역시 나만의 속도로 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