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에 남은 이집트와 기억
이집트 여행에 가장 좋은 시기는 우리로 치면 겨울, 12월에서 2월 정도까지다. 그 이상을 넘어가면 감당할 수 없이 더워진다. 사막 기후라 우리나라의 여름 더위와는 다르지만 그 건조한 더위 역시 끔찍하기 짝이 없다.
아스완과 룩소르에서는 열심히 투어를 다녔다.
특히 아부심벨로 가던 투어가 기억에 남는다. 룩소르 시내에 있는 호텔에서 새벽 3시쯤 픽업트럭을 타고 출발하는 투어였는데 아부심벨까지는 꽤 긴 이동을 해야만 했다. 우리 팀에는 나를 비롯한 한국인 몇 명, 연세가 아주 많으셨던 일본인 할아버지, 그리고 몇 명의 유럽 여행자들이 함께했다.
비포장 도로에 가까운 길을 얼마나 달렸을까
뒷자리 어딘가 앉아있던 일본인 할아버지는 멀미가 심했는데 결국 구토를 하고 말았다. 새벽에 시작한 투어라 모두가 힘들었지만 누군가 친절하게도 그에게 비닐봉지와 물을 챙겨주었다. 멀고 먼 길을 달려 마침내 해가 떠오를 무렵 아부심벨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짧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도 일본인 할아버지는 몹시 힘들어했다. 그를 누가 그렇게 살뜰히 챙겨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계속 무언가를 건네며 챙겨주던 사람이 있었다는 기억만큼은 너무나 선명하다.
아부심벨, 핫셉수트장제전, 킹스밸리...
아스완과 룩소르에서는 많은 곳들을 돌아보았는데 그때 설명을 들을 때마다 어딘가에 묻혀있다 발견된, 혹은 수장이 될 뻔하다 구해진 이런 설명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잊힐뻔하다 어떤 계기로 살아나 지금의 우리를 만난 그 옛날의 시간을 마주한다는 것은 박물관에 예쁘게 전시된 유적과는 또 다른 울림을 주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 오랜 시간의 밀도를 뜨겁고 건조한 태양 아래서 만나는 것은 나에게 있어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지구 반대편과 지금 발을 딛고 선 이곳과의 거리감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내가 돌아갈 시간과 지금 마주한 시간 사이의 거리감이 주는 이질감이 생경스러웠다.
세계사를 잘 알거나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도 이집트의 유적을 보는 것은 한 번도 지루한 적이 없었다. (그니까 이를테면 유럽에서 성당 3개쯤 가면 그때부터 느끼는 그런 멍-함이 없었단 이야기다.) 유럽이 내게 필름에 남겨진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여행이었다면, 이집트는 시간의 다리를 건너 저너머 어디로 가는 것과 같았던 그런 여행이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은 이집트에 더 가보고 싶다.
내게 너무나 친절했던 그때의 친구들을 다시 찾아보고 싶고, 내가 여행했던 그 시절과는 아마도 많이 달라져있을 거리를 다시 한번 걸어보고 싶다.
다시 한번 그런 기회가 찾아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