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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두부 Feb 02. 2020

[살았다!] 차였고, 우울증이 왔고, 산티아고에 갔어요

들어가는 말

우울증에 관련된 책이 유행입니다. 유행까진 아니더라도 요즘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우울을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이제 독자분들께서도 '또 우울증이야?'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 흐름에 숟가락 하나를 더 얹으려고 합니다.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던 친구와 같이 책을 쓰면서 농담처럼 이런 말들을 나누었습니다.

"지금 빨리 써서 내야해.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우울증이 감기처럼 흔해진 날에는 누가 우울증에 대해 궁금해서 책을 쓰고 또 읽겠어? 생각해봐. '오늘 감기에 걸렸습니다.' 같은 책을 누가 사겠냔 말이야. 물 들어올 때 우리도 책 하나 써보자."


농담처럼 말했지만, 저는 유행처럼 퍼지는 우울증 도서에 관한 경향을 꽤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동학대 건수가 많아지는 건, 예전보다 아동학대를 하는 사람이 늘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이 변하여 신고 건수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전히 학대받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신고가 늘어나 구조될 수 있는 아이들이 늘어난다고 생각하면, 아동학대 건수가 늘어나 보이는 건 반가운 일 일지도 모르지요. 우울증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픈 일들은 있었지만 그 아픔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고 세상도 조금씩 받아들여 간다는 뜻이니까요.


유행에 얹혀 제 책이 많이 팔린다면 그것도 좋겠지만 다양한 모양으로 우울증에 대한 경험들이 더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울증이라는 질병과 정신과 의원을 더 가깝게 더 가볍게 접할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우울증인 친구를 보며 편견이 없다고 말했지만, 사실 저도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어리석게도 저는 우울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굳게 믿었던거죠. 매사에 의욕적인 사람이고, 꽤나 낙천적이었으며, 실패에 대한 회복 탄력성이 큰 사람이라고 평가 받곤 했으니까요. 스스로도 그런 제 자신을 자랑스러워 했고요. 힘든 날도 있었지만 나름대로는 잘 견디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견뎌야 하는 날이 많아질수록 악몽을 꾸는 날들도 많아졌습니다. 괜찮아지고 싶어서 운동을 하고, 명상을 하고, 요가를 다니고, 햇빛을 쐬고. 우울을 탈출하기 위한 모든 것을 했지만 어떤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지요.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조금은 더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세상에서 가장 시시한 상처에 대해 말할테니까요. 이별입니다. 조금은 비웃을지도 모르지요. 이별은 누구나 겪어 보았고, 그래서 잘 알지만 세상엔 이보다 더 힘든 일쯤은 얼마든지 많으니까요. 하지만 그래서 더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가볍고 시시한 상처 가지고도 어떤 사람은 이만큼이나 아파 했으니,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일은 얼마나 더 힘들고 아프겠냐고 말해주고 싶거든요.


네, 저는 이별을 해서 우울증이 왔고, 병원에 갔습니다. 그리고 장작 800km의 산티아고 길을 걸으러 떠났지요. 사실 다 걸으러 갈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냥 조금 며칠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싶었을 뿐이니까요. 힘들면 바로 돌아올 생각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산티아고에서 만난 많은 한국 분들이 이런 부담을 느끼고 계신 걸 종종 보았습니다. 자기 짊을 짊어지고 800km를 다 걸어야 진짜다. 중간에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거나, 가방을 먼저 보내는 일은 반칙이다. 그 먼 곳까지 가서 또 견디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하시는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조금 더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산티아고에 꼭 걸어서 도착할 필요는 없지요. 산티아고가 그렇게 대단한 곳도 아니고요.


마음이 우울한 날에 꼭 반드시 심리상담센터나 병원을 가야 한다고도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봄이면 알레르기 때문에 하루종일 훌쩍거리는 코가 몹시 불편해서 항히스타민제를 먹곤 하는데, 정신과에 가는 일도 그냥 그런 일 정도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습니다. 어떤 알 수 없는 우울이, 어떤 상처가 나의 삶을 아프고 불편하게 만들고 있어서 병원에 가보는 정도. 어떤 염증은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 저절로 낫기도 하지만, 냅두면 누런코가 되어 나오기도 하니까요. 여름토록 불편하다가 가을엔 축농증이 되어 버릴지도 모르니까요. 그냥 내 몸이, 내 마음이 불편해서 가보는 정도, 그 정도였으면 좋겠습니다. 사설이 길었네요. 그럼 이제부터 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부디 마지막 장에서 다시 만나길 바라요.


instagram : @sundubu_writer

독립출판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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