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서울숲에 갔다. 서울숲에는 나만의 산책코스가 있다. 제대로 돌면 한 시간 삼십 분이 걸리고 약식 코스로 돌면 한 시간이면 가능하다. 우듬지에 어둠이 쌓이고 있다. 숲은 화려하지 않지만 친절하다. 뭘 바라지도 않으면서 포근한 안식과 휴식을 준다.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고 신선한 공기도 내준다. 숲을 거닐다 보면 친절한 마음, 배려하는 마음, 더불어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며칠 전 구청 아트홀에서 오페라를 보았다. 아트홀 상주 음악감독이 인근 대학교와 연계해서 만들었다. 구청에서 지원받은 예산은 넉넉하지 않았을 테다. 무대 장비, 조명, 의상, 음악 모든 면에서 소박했다. 비교가 안 되겠지만 예술의전당에서 관람했던 공연보다 질적으로 양적으로 미흡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연습했을 공연 참가자들의 열정은 누구보다 뜨거웠다. 또 오페라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배경을 이탈리아가 아닌 현재로 바꾸고 아리아도 요즘 시류에 맞게 수정을 했다. 제약 조건을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극복하려는 시도가 관중들에게 먹혔다. 중간중간 폭소가 터지기도 하고 멋진 연기와 연주에는 아낌없는 갈채를 보냈다. 작지만 훌륭한 공연이었다.
그런데 옆자리에 앉은 여인이 공연시간 내내 신경 쓰이게 했다. 나는 공연 관람을 하게 되면 삼심 분전에 자리에 앉아 텅 빈 무대를 바라본다. 공연을 생각하며 설렘과 기대, 흥분을 느낀다. 그 순간이 좋다. 옆자리 여인은 어머니로 보이는 노인과 공연이 시작되어서야 자리에 앉았다. 여인은 어느 순간부터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어두운 공연장에서 휴대폰의 조명에 눈이 부셨다. "급한 일이 있겠지. 잠시 보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여인은 오 분이 넘도록 휴대폰을 만지작 거렸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낮은 소리로 휴대폰을 꺼달라고 하자 그제야 휴대폰의 화면을 꺼고 가방에 넣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여인은 공연에 관심도 흥미도 없었다. 팔짱을 낀 채 좌석에 등을 붙이고 앉아 어디 한번 해봐라 하는 거만한 자세로 공연을 보았다. 두 시간 동안 박수를 한 번도 치지 않았다. 같이 온 어머니가 크게 웃기도 하고 박수도 치며 공연을 즐기는 모습과 대조가 되었다.
공연한 오페라의 이름은 '사랑의 묘약'이다. 세상에 사랑의 묘약은 없다. 있다면 상대를 진심으로 아껴주고 배려해 주고 위하는 마음이 아닐까. 여인이 찾은 사랑의 묘약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거만함, 도도함, 불친절' 이런 게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