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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춘 Dec 02. 2024

지나면 추억, 징글맞은 인사부서

  회사 다닐 때 인사부서 사람들과 말다툼을 많이 했다. 성격이 직설적이고 급해서 불의라고 생각하면 참지를 못했다. 그들은 영업 현실을 아랑곳하지 않고 원칙만 고수했다. 복지부동의 전형을 공무원이라 하지만 그보다 훨씬 심했다. 일은 안 하고 생색은 내고 싶고, 아는 건 없는데 칭찬은 받고 싶고, 참 가까이하기 싫은 사람들이었다. 물론 인사부서의 고충도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잘못되면 법적 이슈가 되기 쉽다. 그러니 융통성보다는 원칙과 기준을 우선해서 보수적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조직원의 인사이동을 전담하는 부서라서 콧대가 높고 잘난 척하며 부서 간 업무에 비협조적인 인물을 많이 봤다.


  지방에서 근무할 때였다. 팀장이면 회사에서 전세자금을 지원해 주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일 처리가 늦어져 가족들과 같이 살 집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만 먼저 내려와 여관방에서 생활을 하느라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어느 날 인사부서에서 전화가 왔다. 부서 내 신입사원의 담당 지역을 바꿔줄 수 없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업무분장은 팀장인 내가 임의로 한 게 아니라, 선임사원의 주도로 팀원들끼리 자율적으로 결정했고 팀원 모두 이의가 없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여관에서 살고 있는데 지방 발령받고 애로사항은 없는지 먼저 확인하는 게 일의 순서가 아니냐. 어떻게 팀장보다 신입사원의 업무분장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따지냐?"라고 격하게 반응을 했다. 마지막에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험한 말도 했다. 

  시간이 흘러 전화했던 인사담당자는 그룹 인사를 담당하는 임원이 되었다. 밤늦은 시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예전에 전화통화하던 시간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아찔했다. 그는 술에 취했고 거만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내가 지켜보고 있다. 똑똑하게 잘해라." 뭐 그런 말이었다. 그는 나보다 입사가 한참이나 늦다. 속에서 쌍욕이 올라왔다. 도를 닦는 기분으로 참았다. 다혈질에 급한 성격의 나도 회사 권력 앞에선 순한 양이 되었다. 후배한테 모욕을 당했지만 참을성을 키웠다고 자화자찬했다.

  회사를 그만 둔지 꽤 되었는데도 가끔 회사 꿈을 꾼다. 어젯밤에도 매출 부진 때문에 질책을 받는 꿈을 꾸었다. 당시에는 지겹고, 힘들고, 짜증 나고, 스트레스받았지만 그래도 그때가 행복한 날들이었구나 생각이 든다. 지나면 다 추억이 된다. 이제는 원수 같은 인사부서 사람들도 길에서 만나면 따스한 커피 한 잔 대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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