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민대학에서 그리스 로마신화와 서양미술사를 배우고 있다. 강사는 수도권에 소재하는 대학의 교수인데 실력과 열정이 뛰어나 수강신청하는 날 바로 마감이 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강사는 수업을 하면서 교재 외에도 풍부한 사례를 파워포인트로 준비하여 보여준다. 스크린의 자료 사진을 촬영하려니 앞사람 때문에 불편해서 조금 더 일찍 나와서 중앙의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사진 찍기가 훨씬 편했다.
그런데 지난주에 중앙 제일 앞자리, '황금 자리'를 뺏겼다. 자리 잡으려고 수업 시작 30분 전에 서둘러 강의실에 도착했는데, 근엄한 표정으로 누군가의 검은 책가방이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자리를 뺏긴 분노에 에어컨 바람도 시원하지가 않았다. 한번 해 보자는 거였다.
오늘은 자리를 절대 뺏길 수 없다는 굳은 결의에 수업 시간마저 착각해서 무려 1시간 20분이나 빨리 강의실에 도착했다. 자리 확보 싸움에서 무조건 나의 승리가 예상되니 콧바람이 절로 났다.
헐!!!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중앙 제일 앞자리에 '근엄한 검은 가방'이 떡하니 나를 비웃고 있었다. 대체 이 사람은 몇 시에 강의실에 왔단 말인가. 너무나 부지런한 그에게 마음속으로 항복 선언을 했다.
'내가 졌소.'
로마신화 수업이 끝나고 식사 후에 수업이 이어진다. 두 번째 수업 서양미술사 시간이었다. '근엄한 검은 가방'의 주인이 졸고 있다. 몰려오는 잠을 물리치려 고개를 좌우로 흔들기도 하더니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존다. 일찍 자리 잡으려다가 잠을 제대로 못 잤나 보다. 강의실 중앙 제일 앞자리, 강사 바로 앞에서 부지런히 졸고 있는 검은 가방에게 맘속으로 외쳤다.
'내가 완전히 졌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