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6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15년, 임원의 생존과 '운'의 기운

운은 삶에 녹아 있는 내공의 뜻이다.

by WOODYK Mar 10. 2025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타회사 임원 분과의 식사. 그 시간이 주는 여운은 고서에 줄 쳐진 명언처럼 내 가슴에 쌓였습니다. 대기업에서 임원으로 15년을 근무하신 분의 이야기는 마치 저 멀리 보이는 노송처럼 단단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요즘 세상은 참으로 묘합니다. 과거엔 임원이 되는 것이 인생의 정점이었지만, 지금은 부장으로 오래 머물기를 원하는 역설적 풍경이 펼쳐집니다. 임원이라는 자리가 주는 혜택은 달콤한 꿀과 같지만, '임시직'이라는 씁쓸함은 항상 그 뒤를 따릅니다. 하루아침에 바람처럼 사라질 수 있는 위태로운 줄타기. 그것이 바로 임원의 삶입니다.


4년도 임원으로 버티기 힘든 이 무정한 시대에, 15년이라는 긴 세월을 임원으로 살아오셨다니!


이는 마치 비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내공을 쌓아 올린 결과일 듯합니다. 기업에서 임원이 되는 시간은 마치 산을 오르는 것처럼 지난한 시간이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습니다. 사회가 물결처럼 빠르게 변하니, 임원의 수명도 짧아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평균 퇴직 나이 49세. 이 숫자 속에 우리 사회의 모든 아픔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바둑알처럼 쉽게 제거되고 대체됩니다. 조직은 축소되고 통합되며, 과거 피라미드처럼 질서 정연했던 직급 체계는 이제 모래성처럼 무너져 버렸습니다. 한 팀 안에 사원부터 부장까지 고르게 분포된 조직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조직이란 거대한 강물처럼 인력이 순환하고 직급이 층층이 쌓여 있었지만, 지금은 중간이 텅 비어버린 모래시계 같은 모습입니다. 어떤 곳은 사원과 팀장만 존재하고, 또 어떤 곳은 고직급자만 모여 있는 기형적인 풍경을 보입니다.


임원들 역시 옛날처럼 높은 곳에서 지시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내려와 논밭을 갈아엎듯 실무를 해야 합니다. 회사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하루하루가 지속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무게는 더욱 커지기만 합니다. 이런 시대에 15년간 임원으로 살아왔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선배님! 1년도 버거워지는 이 시대에 임원으로 15년을 어떻게 다닐 수 있으셨나요? 경제적 부담도 없으시고 충분히 여러 일들을 해 오셔서 미련도 없을 듯한데, 지금까지도 열심히 생활하시며 회사에서 일을 하시는 비결이 뭐세요?"


그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비결이 어디에 있겠어. 다 운이지...^^. 나도 직장 생활하며 위기도 많았어. 윗분들에게 잘못 찍혀서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었어. 그런데 어찌 그 윗분이 먼저 가시더라고. 뭐 그런 일만 있나. 회사에 사고가 나서, 그것에 대한 간접적 책임도 나에게 돌아와야 하는데, 우연히 사고 수습에 노력하는 모습을 보시고 좋게 풀려 자르지는 않더라고..


아휴 말하자면 그런 상황들은 15년 동안 수없이 많이 발생했었어. 그런데 그걸 설명하자면 '운'을 이야기 안 할 수 없어. 나이가 들수록 노력으로만 되는 것만 존재하지 않더라고. 노력도 필요하지만 결국 타이밍이 자신과 맞는 운이 따라야 문제들이 해결되더라고."


'운(運)'이라는 한자는 얼마나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


 '오십에 읽는 주역_강기진 저'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상에 흉운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태한 사람, 방만한 사람, 약삭빠른 사람들이 길운을 다 차지할 것이기 때문에 흉운을 섞어 넣음으로써 흉운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는 마음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이기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 이 세상의 구조라는 것이다.


이루고자 하는 일을 예정대로 달성해 내는 강한 운을 부여받은 사람은 그만큼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한다. 사실 사람은 극단의 경계에까지 내몰려 있다. 특히 오십에 이른 많은 사람이 쉬쉬하지만 심리 상담을 받고 약을 먹고 한다.


이처럼 스트레스의 극단에까지 나아갔기 때문에 운이 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보다도 더 운이 좋아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그 대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운이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자 하면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데 이는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선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선배님의 말씀이 바로 이 글과 오묘하게 겹쳐집니다.


"다 운이지. 인생 살다 보니까 80 이상이 운이더라고. 그 말에는 흉운과 길운이 섞여 있고 흉운이 진짜 흉운인지, 길운이 진짜 길운인지는 알 수 없어. 인생에 변수들이 너무 많아서, 흉운이 길운이 되기도 하고 길운이 흉운이 되기도 하더라고. 전화위복, 새옹지마라는 사자성어가 그런 뜻이잖아."


사원일 때는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자신의 일만 반짝이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중력의 법칙처럼 무게는 더해집니다. 혜택이라는 꽃이 피어나지만, 그 꽃을 피우기 위한 가시와 같은 부담과 스트레스도 함께 자랍니다.


요즘 임원들은 위와 아래 사이에서 샌드위치처럼 짓눌립니다. 한쪽에서는 시기의 대상이 되고, 다른 쪽에서는 '고임금자'라는 명패를 달고 비판받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직원들은 '임원'이 되는 것이 과연 좋다고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

15년을 임원으로 살아오신 선배의 모습은 마치 간장독처럼 깊은 맛을 내는 존재입니다. 그저 성공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자신을 단단하게 유지해 온 내공이 대단한 것입니다.


살얼음판에 놓인 듯한 불안한 순간들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호흡을 잃지 않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난관을 뚫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입니다. 회사에서 선배의 내공을 필요로 하니, 이제는 젊었을 때보다 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미련은 없지만, 그렇다고 '쉼'이라는 이름으로 사표를 쓰고 싶지도 않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회사에서 하는 일이 스스로와 회사에 의미가 있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희열을 즐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의미가 사라질 때는 조용히 떠나겠다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를 '노욕(老慾)'의 그림자라고 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버티고, 견디고, 극복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자신이 이룬 것을 단지 '운'이라고 표현하는 겸손함.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단단함이 아닐까요?


내공(內功)이란 무엇일까요?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경험의 양만으로도 되지 않습니다. 내공은 마치 땅속 깊은 곳에서 조용히 흐르는 지하수처럼, 자신이 겪어온 고통과 어려움, 극복의 순간들, 그리고 마음의 평정을 찾는 노력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자신이라는 그릇을 강인하게 만들 때 비로소 생겨나는 것입니다.


삶은 교과서처럼 이론으로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운'이라는 짧은 단어 속에 삶의 단단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인내하고, 자신을 단단히 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시간. 그것이 바로 '삶'입니다.


'운'이라는 말은 이 세상에 혼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깊은 철학적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기에 '운'이라는 것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모든 게 운이지"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이 세상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 공존하는 세계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도 '운'의 작용일지 모릅니다. 인생 선배를 만나 들은 '운'이 주는 깊은 여운을 느껴봅니다. 복권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요행을 바라는 것을 '운'이라고 착각하기도 하지만,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운'이란 우리가 쌓아 온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 수난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삶을 만들어 온 그 견고한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운'의 기운을 받아, 삶이라는 파도 위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항해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순댓국 한 그릇, 투박하지만 순수한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