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지만 의미 있는, 책은 자신의 철학을 만들어 준다.
"뇌신경 의사, 책을 읽다"라는 신경과 전문의(신동선 저)가 쓴 책에 이런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뇌신경이 반복 자극을 받으면, 뇌신경 핵 속에 크랩(CREB)이라는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이 단백질이 뇌신경연결에 필요한 유전자 스위치에 달라붙습니다. 그럼 스위치가 켜지고 뇌신경연결에 필요한 공장라인이 가동됩니다. 즉 유전자가 일을 해서 뇌신경이 가지를 뻗어 뇌신경연결을 만듭니다.
뇌신경연결을 만들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공식은 ‘반복’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선택과 집중된 반복’입니다. 뇌신경연결을 만드는 뇌신경연결이 있습니다. 언어 행위, 그중에서도 독서가 대표적입니다. 독서를 통해서 온갖 세상의 지식과 지혜의 뇌신경연결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집니다. 독서는 뇌신경 연결의 문을 활짝 열어줍니다."
뇌신경을 활성화시켜주고 새로운 뉴런의 길을 만들어 주는 활동, 독서라는 것은 매우 좋은 습관입니다.
책이란 참으로 묘한 존재입니다. 때로는 기대를 품고 펼친 책장이 무심한 바람처럼 헛헛한 울림만 남길 때가 있습니다. 베스트셀러라는 화려한 칭호는 마치 덧없는 메아리처럼, 독자의 가슴에 무덤덤한 파문만을 일으키고 사라집니다. 대중의 심리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가는 듯한 씁쓸함, 그것은 마치 남의 방향에 나를 맡기고 대중이 흘러가니 나도 같이 흘러가는 무기력함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갓 출간된 뜨거운 신상보다는 시간이 흘러 묵은 향이 밴 책을 찾아 중고 서점을 어슬렁거리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일관되지만, 그 울림은 각자의 가슴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가옵니다. 아무리 찬란한 지혜가 담긴 책이라 한들, 독자의 배경지식이라는 거울에 비친 모습은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독서는 다만 지식의 재료를 공급할 뿐이며, 그것을 자기 것이 되게 하는 것은 사색의 힘이다. <존 로크>
대학시절, 가방에는 적어도 1권 이상의 책은 늘 갖고 다녔습니다. 가방이 없다면 손에라도 책 한 권 들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약속 장소로 향하는 길 위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벤치에서, 책은 늘 나의 곁에서 시간을 도둑맞지 않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도서관 서가의 장엄한 풍경은 마치 지식을 쌓아 놓은 바벨탑 같았고, 빌려온 책장을 넘기다 보면 또 다른 책에 대한 갈망이 샘솟아 여러 권을 동시에 탐독하기도 했었습니다. 낡은 책에서 풍겨 나오는 고전적인 향기는 뇌의 회로를 자극하고, 도서관 통로에 쭈그리고 앉아 책에 파묻혀 시간을 보내는 것은 곧 지혜를 쌓아가는 여정과도 같았습니다.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문명의 도래는 책과 나 사이의 거리를 멀어지게 했습니다. 지식과 지혜를 향한 갈망은 검색과 영상으로 대체되었고, 두꺼운 종이책 대신 손 안의 휴대폰이 세상을 담아내는 듯했습니다. 활자보다는 영상이, 능동보다는 수동이, 느림보다는 빠름이 지배하는 세상, 그렇게 시대는 변모했습니다.
하지만 빈도는 많이 떨어져도 책을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책을 고르는 것은 마치 인생의 여정과도 같아서, 때로는 실패의 쓴맛을 보기도 하고, 때로는 성공의 달콤함을 맛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유튜브라는 편리함에 자리를 내어주고, 책은 요약되고 읽히는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해지는 과정입니다.
지하철 풍경도 달라졌습니다. 책을 든 사람은 찾아보기 힘든 시절이 되었습니다. 한때는 책을 읽기 위해 일부러 지하철에 몸을 싣고 서울과 수원을 왕복하기도 했었는데 그 시간도 다 잊힌 시간이 되었습니다. 지하철의 흔들림 속에서 책에 집중하는 것은 나만의 작은 행복이었습니다.
때로는 창밖 풍경에 시선을 던지고, 때로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며, 그렇게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르곤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수원에서 서울로 돌아옵니다. 다른 목적은 없었습니다. 그냥 지하철에서 읽는 책에 빠지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좋은 책은 영화처럼 긴 여운을 남깁니다. 책장을 덮고도 그 감동을 잊지 못해 책장을 다시 펼치고, 밑줄 친 문장을 곱씹으며 그 속에 잠시 머물고 싶어 집니다. 책의 모든 내용을 기억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기억력은 유한하고, 시간이 흐르면 잊히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책을 읽는 것은 시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이해하고 지혜를 쌓아가는 과정입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을 작가의 시선을 통해 간접 경험하고, 시야를 넓혀가는 여정입니다. 어찌 모든 문장을 기억하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과욕일 뿐입니다.
젊은 날의 독서는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스스로 보고자 하는 것을 찾고, 마음에 와닿는 문장에 몰입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책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나만의 철학을 만들어가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좁은 시야에 갇혀 자신의 세계만이 전부라고 믿는다면, 지혜와 철학은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맙니다.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유연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지혜와 철학이 성숙해지는 과정입니다. 그곳에 책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철학이라는 단어는 더욱 깊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젊은 날에는 철학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아는 척했지만, 삶의 경험과 지혜가 쌓이면서 철학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살아가는 과정들 속에 철학은 늘 살아 있습니다.
책 속에 모든 철학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의견을 접하며 나만의 철학을 정립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젊은 날 다양한 책을 접하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삶의 철학을 고민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책이 주는 힘은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갈 때, 삶의 철학을 생각하고 생각에 유연한 연고를 발라 준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독을 통해 얻는 지혜는 좋은 문장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철학을 찾아가는 여정에 유연함을 더해주는 것입니다. 책에 담긴 모든 것을 기억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책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나만의 철학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독서의 참된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오늘도 잠시 활자로 된 책을 펼쳐 들고, 창밖의 빗소리를 벗 삼아 책장을 넘겨 볼까 합니다. 비 오는 날에는 만화책이 제격이지만, 오늘은 이미 읽었던 책들을 다시 한번 훑어보며 마음에 와닿는 한 권을 선택해 보려 합니다.
사람은 평생 하나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책을 읽으면서 다른 삶을 간접적으로 살 수 있다고 했어.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건, 그 책 속에 들어 있는 하나의 사람을 배워서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에너지로 바꾸는 일인 거야. 한 권의 책 속에 하나의 삶이 있다면, 백 권의 책 속엔 각기 다른 백 가지의 삶들이 숨어 있겠지. 인간은 누구나 공평하게 한 번에 하나의 삶을 살 수 있을 뿐이지만, 책을 읽음으로써 엄청나게 다양한 삶을 살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이야. 또 대단한 일이기도 하지? <읽는다는 것, 권용선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