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이 키우는 힘, 불편함의 역설, 편안함이 주는 자본주의의 그림자
물론 편안함과 편리함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지표인 ‘행복하고 건강한 삶’이라는 측면에서 우리를 늘 진보시키지만은 않았다. 점점 과도하게 편안하고 풍족함이 넘치는 환경에만 머물렀던 우리의 지난날은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이제 인류는 심오하고 깊이 있는 경험을 할 기회가 극히 제한되었다. 마땅히 겪어야 할 경험들은 더 이상 우리의 삶과 아무 관련이 없어졌다. 이는 의심할 여지없이 인간을 변화시켰고, 그 방향이 늘 최선은 아니었다. <편안함의 습격_마이클 이스터 저>
'편해진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점점 더 편해지고 있다. 그런데 편해질수록 우리는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게 된다. 편안한 상태에서 더 편안함을 갈구하게 되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결핍이 있어야 성장하고 발전한다. 편해질수록 우리는 정체되고 현 상태에 머물고자 한다.
어린 시절은 결핍이 존재하던 시기였다. 어머니의 모습을 상기해 보면 그 결핍의 선명함은 더욱 극대화된다.
추운 겨울에도 어머니는 동네 빨래터로 나가셨다. 무거운 빨래를 빨간 고무대야에 담아 머리에 이고 빨래터까지 가서, 차가운 물로 한 시간 이상 추운 바람을 맞으며 빨래를 하셨다.
반찬이 많지 않은 겨울을 이겨내려면 집에 김치는 풍족해야 했다. 김장을 하는 양은 상상을 초월했다. 봄이 될 때까지 남을 정도의 김치를 손으로 직접 다 담그셨다. 그리고 겨울 대비, 얼지 않도록 땅을 파서 항아리를 묻고 그곳에 김치를 보관했다.
밥을 하려면 군불을 때워 쇠솥을 달궜다. 연기 나는 군불 앞에서 밥이 되는지 지켜봐야 했다. 대가족이라 밥을 기다리는 입들은 많았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쉬지 못하고 집안일에만 매달려야 했다.
어머니는 불편함을 불편함이라 생각하지 않으셨다. 동네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다 보니 그 삶 속에서 익숙함을 찾으셨다. 집안의 대소사를 몸으로 일하며 극복하셨다. 늘 어머니에게는 힘듦이 몸에 익숙해져 있었다. 불편함이 불편함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하지만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삶의 수준이 높아졌다. 삶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은 편하게 사는 시대라는 말이다. 편하게 살아가는 삶. 활동량이 줄고 움직임이 축소되고, 돈이 많이 필요해지는 시대인 것이다.
'편해진다'는 것은 결국 비용이 더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냉장고가 크지 않았던 시절에는 수박 한 통을 넣지 못해 우물에 담가놓았다가 시원해지면 먹었다. 지금은 비싼 아파트가 만들어지면서 냉장고의 기능이 좋아지고 커졌다. 그와 함께 전기료와 냉장고의 넓은 공간을 채우기 위한 식자재 구매량이 증가했다.
빨래터에서 하던 빨래가 세탁기로 들어오면서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고 편하게 빨래를 하게 되었다. 그에 따른 비용도 함께 증가했다.
편해진다는 것, 돈이 든다는 이야기와 의미가 통한다.
결핍이 존재하고 불편함이 있을 때 돈이 적게 들고 몸의 움직임이 많아진다. 자동차가 흔하지 않던 시절, 자전거가 우리의 자동차였고 멀쩡한 다리가 교통수단이었다. 자동차가 편해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 길에다 기름을 뿌리며 다니고 있다.
편안함은 항상 비용 지불을 동반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본주의 문명에 길들여져 있고 편안함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서 있던 시간을 앉아 있는 시간으로 대체했고, 앉아 있던 시간을 누워 있는 시간으로 대체했다.
편안함이 더할수록 필요한 물건은 더 많아지고, 비용은 더 들어가는 구조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돈을 더 벌기 위해 직장을 다니고 직장의 월급에 기대며 살아간다. 각자의 의지가 약해지며 조직에 의지하고 돈을 좇게 된다.
"돈이 없으면 쫓기고, 돈이 있으면 쫓기고. 결국 우리는 평생 돈한테 쫓기는 거야."<나의 아저씨 드라마 중>
과거에도 돈은 당연히 필요했다. 돈이 없어 힘들어했고 살아가는 것이 막막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불편함이 그런 부분들을 많이 대체했다.
지금은 불편함을 참지 못한다. 우리의 몸과 뇌는 익숙함과 편안함에 길들여져 있어서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편안함만을 찾으려고 한다.
지속적으로 편안함만을 추구하려면 지속적으로 돈을 지불해야 하며, 그에 따른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우리는 끝없이 노동을 해야 한다.
살아가는 데 맥시멀리즘이 되어가는 사람들은 끝없는 경제적 힘듦의 루프 위에서 생활의 편안함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게 편안함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일 수 있다. 항상 돈을 좇고 돈에 힘들어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미니멀리즘이 추구하는 것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다.
불편함은 비용을 줄이고 삶을 간소화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과감히 자신에게 오는 불편함을 불편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을 더 키워나가는 것이다.
움직이고, 활동하고, 불필요한 것에 쓸데없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결과로 노동의 굴레와 돈의 집착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것이다.
"소유가 줄어들수록 자유는 늘어난다."<무소유 _법정스님>
편안하다는 것은 무섭게 스스로를 그 환경에 빠지게 하고 벗어나지 못하도록 한다. 비용의 크기는 계속 커지고 돈의 노예로 전락하게 만들 수 있다. 맥시멀리즘의 끝판왕이 되는 시점에는 그 삶이 편안함의 속성보다 스스로가 물건의 노예로 전락할 수 있다.
어느 때는 걸어가고, 어느 때는 불편함을 감수하며 기다리고, 어느 때는 힘든 일들을 감수하며 해나가는 불편함. 살아가면서 불편함을 겪으며 인내도 해보고 결핍의 근성을 키워 단단해지는 과정. 어렵고 힘듦이 존재하지만 스스로가 살아가는 힘을 키우는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이 불편함이고, 미니멀리즘의 철학일 수 있다.
현대의 편안함이 주는 자본주의의 굴레를 다 벗을 수는 없어도, 작게나마 불편함의 생활로 걸어가는 것은 어떨까.
"편한 게 최고가 아니에요. 가장 좋은 건, 내가 견딜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는 거예요."<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 중>
편안함이 늘 좋은 것은 아니다. 편할수록 스스로가 자본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 시스템을 거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불편함과 결핍을 견딜 수 있는 힘을 키우고 미니멀리즘을 통해 자신의 자생력을 키워나갈 수는 있다.
당신은 오늘 불편함이 전혀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돈이 없는 불편함보다 스스로가 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불편함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편안함을 조금 덜어내고 미니멀리즘의 삶을 조금씩 자신에게 입혀보는 것. 그것이 어쩌면 자기다움으로 살아가는 방법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