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45분의 고속터미널은 참 한가로웠다.
밤 10시 45분의 고속터미널은 참 한가로웠다.
항상 출퇴근 길에만 지나쳤던 고속터미널의 모습과는 아주 딴판이었다. 평일 밤이었기에 사람은 더욱 없었고, 어딘가로 훌쩍 떠날 수 있는 여러 대의 고속버스들은 순간적으로 내 가슴을 설레게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대천’행 야간 고속버스는 천천히, 나를 싣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기억 속의 대천은 그리 좋은 곳만은 아니었다. 어디든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을 듯한 논밭이 넓게 펼쳐져 있는 곳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얽매이게 했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의 부모는 세상을 떠났고, 부모라는 울타리가 없어진 나를 바라보는 친척들의 눈빛도 비수가 되어 돌아왔을 뿐이었다. 그리고 남편에 이어 자식까지 단명했다며, 손가락질을 받던 할머니는 가문의 외톨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외톨이 둘이 퍽퍽한 목구멍으로 침을 억지로 삼켜가며 버텨온 곳이 바로 대천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런 곳에 할머니를 홀로 두고 도망쳐온 것만 같아 속이 쓰려왔다. 이렇게 가장 초라하고 힘들 때서야 다시 찾아가자니, 그 속 쓰림은 죄책감이란 감정에서 온 것만 같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새벽의 고속도로는 더욱 적막했고 그 적막이 무섭기까지 할 때쯤, 대천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미 새벽 1시가 가까워지는 시간. 겨우 택시를 잡아 터미널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갔다. 새마을 운동할 시절에나 보였을 법한 농협이라는 진한 페인트 글씨가 새겨진 창고를 지나, 익숙한 밤나무 밑 파란 지붕 집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택시에 내려 덩그러니 대문 앞에 서있자니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갈 용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마침내 저 멀리 택시의 전조등 마저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나는 완벽히 어둠 속에 파묻혔다.
시골에서의 새벽 1시란, 오히려 불이 켜져 있는 집이 있는 게 이상한 시간이다. 용기가 없어진 나는 천천히 등을 돌려 큰 길가에 펼쳐진 논밭 쪽으로 걸음을 향했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크게 한 숨을 내쉬자 입김이 어둠 속에 진하게 퍼져 나왔다. 이 넓디넓은 논을 다시 바라보고 있자니, 괜히 짐을 싸서 내려왔나라는 후회가 내심 들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 익숙한 엇박자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민영이냐?”
할머니였다. 허리를 애써 펴서 걸어보려 해서 더욱 이상한 엇박자 발소리. 이 소리를 어디 잊을 수 있겠는가. 내 평생 귀에서 맴돌았던 소리인 것을.
그 소리를 내며 할머니는 내가 택시를 타고 왔던 방향에서 나타났다. 손에 익숙한 물그릇을 하나 들고는, 절뚝절뚝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새 허리가 더 휜 것 같아 속이 더 찌르르 쓰렸다.
“할매. 어디 갔다 와?”
“보름달 떴잖여.”
할머니는 고개를 까딱해 하늘에 떠 있는 큰 보름달을 가리켰다. 그렇지. 세상의 모든 샤머니즘을 믿는 할머니는 보름달이 뜰 때면 항상 마을의 큰 나무에 가서 물을 떠놓고 기도를 했었다. 어떤 신에게 그토록 간절한 소원을 비는 건지 조차도 쉽사리 물어보지도 못할 만큼 진지한 자세로 임했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월광이 비추어준 할머니의 얼굴을 그제야 빤히 바라봤다. 눈가에 푹 패인 주름이야말로, 할머니가 기도할 때 얼마나 절실하게 눈을 꼬옥 감고 비는지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증명이었다.
“춥다. 어여 들어가자.”
곰팡이가 적당히 핀 장판의 익숙한 냄새가 내 코를 맴돌았다. 짐을 풀고 씻고 나오니 어느덧 새벽 2시가 훌쩍 넘었다. 그 시간에도 할머니는 서울에서 내려온 내가 배고플까 막 찐 고구마를 그릇에 담고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할머니의 뒷모습이 평소 같지 않았다. 그새 허리가 더 안 좋아졌나. 내일 병원은 같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매. 나 오는지 알고 있었어?”
서울에 있어야 할 내가 논 앞에 서 있었는대도 태연한 할머니의 모습이 이상해 젖은 머리칼을 털며 물었다.
“새벽에 택시가 돌아다니잖여.”
할머니의 눈치는 여전했다. 평생 눈칫밥을 먹고 살아왔기 때문인 것일까. 이 늦은 시간, 그것도 촌에 택시가 돌아다니니 손님이 왔겠구나 싶었단다. 할머니는 굳은살이 가득한 거친 손으로, 부드러운 고구마 껍질을 한 올 한 올 까서 내게 건넸다. 뜨거우면서도 달콤한 고구마 덩어리가 목구멍을 넘기자, 왠지 모를 안도감에 울컥,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망할 자존심이 뭔지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고구마와 함께 입술도 꽉 깨물었다. 그렇게 한동안의 침묵을 먼저 깬 건 할머니였다.
"바닥이 차다. 안방으루 가."
새벽 3-4시쯤은 되었을까. 홧김에 대천까지 내려오다니. 퇴사부터 하루 만에 굉장히 엄청난 일들이 벌어진 것 같은데,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저 어둠에 눈을 익숙하게 만들며 이 시골집의 익숙한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익숙한 앵글. 어릴 적 이 자리에 그대로 누워 창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곳에 비치는 검은 나무 그림자가 그렇게 무서웠더랬다. 한참을 칭얼칭얼. 할머니 뱃속에라도 다시 들어가려는 것 마냥 꼭 붙어 있으면, 일정한 박자로 토닥거리는 손이 나를 달랬다.
그때는 그 토닥거림이 어두운 밤 속에서 유일한 안식처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창문에 알 수 없는 그림자들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어쩐지 2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것만 같았다. 어딘가 허무했다. 이렇게 이 자리에 다시 돌아올 거였으면, 그동안의 피나는 노력들은 왜 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이제는 저 그림자조차 무미건조하게 바라볼 수 있는 어른이 된 것이 슬프기도 했다. 푸- 옆에서 할머니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내게 등을 돌려 누워 자고 있는 할머니 쪽으로 몸을 틀었다. 숨소리에 맞춰 구부러진 할머니의 등은 더 높이 올라갔다가, 더 낮게 내려갔다. 그런데 역시나 뭔가 이상했다. 아까부터 눈에 밟혔던 것이지만 이렇게 빤히 할머니의 등을 보고 있자니 이상한 일이 생겼다는 것에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허리가 휘었어도, 이건 너무나 뾰족했다. 마치 노트르담의 꼽추가 되기 직전인 것만 같았다. 할머니가 몸을 정면으로 뒤척이지 못하는 이유도 이 허리에 난 무언가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유난히 뾰족하게 튀어나온 할머니의 등 한가운데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 뾰족한 것에 손이 닿자, 생각지도 못한 촉감에 순간적으로 숨이 멎었다. 어딘가에서 분명히 만져본… 익숙하지만 기억이 날듯 말듯한 바로 그런 촉감. 뭐였더라… 나는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천천히 할머니의 옷을 살살 들춰 손을 집어넣어보았다. 그리고 확신했다.
나무다. 이건 분명한 나무의 촉감이다.
단단하면서도, 마냥 단단하지 않은 자연 특유의 그런 촉감이었다. 사람의 뼈라고 하기엔 너무 거칠었으며, 옷깃에 함께 부딪혀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나무껍질 그 자체였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내 뇌도 퍽이나 충격적이었는지 모든 사고와 숨이 정지한 듯했다. 이 황당한 사실에 요란을 떨며 할머니를 흔들어 깨워야 하나, 아니면 펑펑 울어야 하나, 또 그게 아니면 신기하다고 관찰을 해야 하나… 이런 이상한 상황에서는 도대체 감정표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정지한 내 사고를 다시 돌려놓은 건 바로 할머니의 숨소리였다. 언제부터였는지, 푸- 하는 할머니의 숨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이 천천히 손을 빼고는 원래대로 창문을 바라보고 누웠다. 긴장을 바짝 한 상태에서 정자세로 얼마간 누워있으니, 다시 원래대로 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소리에 안도감을 느끼며 긴장을 풀었다. 그래. 내가 오늘 수많은 일을 겪어서 미쳤나 보다. 나무는 무슨. 그냥 내일 병원에나 같이 가드리자. 라며 애써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 긴장이 풀리자마자 언제부터 쌓였는지도 모를 피로가 저 멀리서 순식간에 덮쳐오기 시작했다.
그래, 나무 일리가 없어… 그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