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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즈 Feb 12. 2022

어디라도 좋아요 당신은 외로운 별 아닌가요



그 애와는 대학교 휴학 시절 대전의 모 신문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났다. 그 애도 나도 몸에 맞지 않는 전공으로 힘겨운 대학 생활을 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문과를 졸업하고 공대 중의 문과의 결이 흐르는 ‘산업경영공학과’를, 그 애는 그리고 싶은 그림을 포기하고 돈 벌 수 있는 ‘유아교육과’를 선택해 다니다 끝내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었던 때였다. 그렇게 휴학을 하고 스물두 살 그 해 언저리쯤에 그 애를 만났다.

처음부터 그 애와 같이 아르바이트를 했던 건 아니었다. 여러 명의 알바생이 두 달 이상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 두기를 반복하던 때였다. 그 애가 면접을 보러 왔다. 왜인지 그 애는 나와 ‘결’이 같을 것이라는 직감이 왔다. 먹고 사는 문제가 보통의 일이 아닌, 매사 진지함으로 대해야 하는 생활의 태도가 그 애에게서 느껴졌다. 등록금과 생활비와 조금의 여유로 먹고 마시고 갖고 싶은 것을 모두 아르바이트 비용에서 충당해야만 했던.  

그렇게 그 애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친구가 됐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와 그 애는 금세 친해지게 되었는데, 아마도 관심사가 꽤나 비슷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인 것 같다. 그 애도 나도 인디밴드를 좋아했고, 그 애와 나는 블로그를 하며 일기 쓰는 일을 흔쾌히 했다. 학교로 다시 돌아가야 했고 졸업반이라는 그 무게감이 우리를 짓눌렀다. 그래서 우리는 알바비 어느 정도의 할당량을 토익 학원에 투자했고, 같이 있는 시간의 절반 정도를 문법을 공부하고 영어단어를 외우는 데 썼다. 사만 원 가까이 하는 토익 시험을 몇 달 동안 보러 다녔다.

그 애 덕분에 나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 애도 그렇게 생각할까. 그 애 덕분에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 애와 함께 말도 안 되는 잡지를 만들어 팔았고, 그 애랑 같이 크라잉넛과 아마추어 증폭기와 야마가타 트윅스터(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결의 가수인)와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콘서트를 갔다. 노래할 음색은 아니었지만 기타를 둘러메고 노래하던 그 애를 응원했고, 그 애는 나를 위해 노래도 만들어 주었다. 맥주 한 캔을 두고 서로의 결점 같은 것들을 들춰내며 밤 새워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의 짝사랑을 비웃으며 연애는 하고 싶지만 연애는 하지 못하는 우리를 귀여워했다.

그냥 그 애랑 같이 놀면 재미있었고 즐거웠고 영혼이 충만해졌다. 그러니까 그 애 덕분에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B급 감수성에 취해 있지도 않은 예술적 자아에 심취할 수 있었다. ‘지우개 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는 내 일기 속 구절을 보고 감탄해주는 그 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애의 삶을 송두리 째 바꿔놓는 사건이 일어났던 건, 따스한 바람이 불고 볕이 반짝이던 5월이었다. 아직도 그 계절의 감촉을 기억하는 건 그 애에게 일어난 일과 달리 계절은 야속하게도 반짝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애의 삶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고, 그때의 나는 그 애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할 만큼 아둔했다. 나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으니까. 그렇게 결이 같아 보였던 그 애와 나는 한 해를 거듭할수록 갈라지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우리는 어처구니없는 오해로 멀어졌다. 그 오해를 풀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없었다.


어디라도 좋아요.
당신은 외로운 별 아닌가요.
아니아니 아니예요.
나는 그저 탐욕스런 소년이지요.
수화기에 입을 대고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어요.
금은보화 나와라 뚝딱
녹음 짙은 숲속을 둘이 같이 걸어요.

그 애는 줄곧 아마츄어 증폭기의 금자탑을 내게 들려주었고, 그 애는 가끔 꾀꼬리 같지도 않은 목소리로 아마츄어 증폭기의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때는 이 노래를 불러주던 그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게 곤혹스러웠는데, 요즘은 왜인지 가끔씩 문득 그 아이의 목소리로 이 노래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 아이도 요즘은 내가 어떤 이유로 지우개 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 가끔은 궁금해할까.

나는 금세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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