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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즈 May 05. 2024

자기 암시

커리어의 재정립이 필요한 요즘, 신수정 KT 부사장의 ‘커넥팅’을 읽으며 귀감을 얻고 있다. 현시점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 시대에서 오래도록 밥 벌어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지,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구직자의 마인드로 되짚어보고 있다. 퇴사하기까지 약 한 달 이상의 시간이 있으니까(사실 겁나 불안하다). 


커리어의 변화는 사건과 우연에 의해 발생한다고 하는데, 내게는 수없이 수많은 우연한 '사건'이 빨리 지금 회사에서 도망쳐야 한다고 실마리를 던져주었던 것 같다.  


나는 회사를 다닐 때 세 가지 요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일하는 만큼 주어지는 보상인 '연봉', 함께 으샤으샤 하며 일할 수 있는 '동료', 계속 해서 나를 성장하게 하는 '일'.  


현 업종에서의 연봉 상승률은 더이상 없다고 봐야 한다. 산업 구조상 연봉이 높게 측정될 수 없다.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무슨 재미로 회사를 다니나.  


어제 난리 난 민희진 기자회견을 보면, 민희진이 계속 이런 말을 했다. "결이 맞지 않다." 십분 공감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 결이 맞지 않는 것은 어떻게 하더라도 봉합할 수 없다. 그냥 안 맞는 거다. 내 인생에서 가장 높게 치는 가치는 '유머'다. 유머가 없는 공간은 죽은 공간이나 다름없다. 터놓고 이야기할 동료가 없다는 것은, 회사에서의 고립을 의미하고 나아가 회사의 성장을 함께 도모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성취감이 높은 일도 없다. 나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싶다. 그 과정이 제아무리 고되고 힘들고 짜증 나고 열받아도, 고스란히 내게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 편이다. 안주하는 순간, 더이상의 발전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더이상 배우고 도전하며 성장할 거리가 없다. 직장생활이 점점 무료해졌다.  


현 업종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국가기관으로부터 일을 수주해 와야만 돌아가는 산업 구조상, 현 정부의 예산 삭감은 '을'에 해당하는 현 업종에 치명타를 날렸다. 예산이 삭감되자 과업이 사라지거나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 회사는 늘 '위기'라며 직원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예산이 늘거나 사라졌던 과업이 다시 부활하지 않는 이상, 이쪽 산업이 호황을 누릴 일은 없다고 본다.  


나는 뭐해 먹고 살아야 할까.  


조합하고 편집하고 기획하는 일을 햇수로 12년을 했다. 1년 정도 잠깐 딴 길로 센 적도 있다. 잠깐 딴 길에 들었을 때 후회했다. 그러고 나서 '내 업은 조합하고 편집하는 일이구나'하고 다시 하던 일로 돌아왔다. 그런데 또 그간 먹고 살게 해 준 일이 싫증이 난다고, 또 염병첨병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도대체 삶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웃프다. 허나 나는 이  모든 경험이 헛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10년 넘게 해온 일, 1년 남짓 해본 일을 조합하고 연결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을 찾고 싶다.  


메타의 최고 책임자인 셰릴 샌드버그는 '커리어는 정글짐과 같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커리어는 정글짐처럼 옆으로도 움직이고 내려가기도 하고 시작하기도 하고 그만두기도 하는 것이라고. 나는 지금 열심히 커리어의 정글짐을 타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어느 지점에 서 있는 걸까. 올라가는 단계일까. 내려가는 단계일까. 멈춰 있는 단계일까. 적어도 이것만큼은 은 분명하다. 불안한 마음은 계속해서 나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12년의 커리어에 이런 키워드가 따라다닌다. 기획, 편집, 제안, 홍보, SNS, 화력발전소. 서체 디자인, 인도 여행, 맥 개발, 픽사 등 관련 없는 것들을 연결해 애플을 통한 혁신을 가져온 스티브잡스 아저씨처럼. 12년간 층층이 쌓아온 나의 경험들이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해나가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나의 경험들을 하나로 펼쳐놓고 유연하게 조합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불안의 힘으로.   


사실 이토록 당당한 어투로 썼으나, 이것은 불안한 나를 달래는 자기 암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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