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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즈 May 07. 2024

라르고, 아주 느리게-

저번 주 월요일에 출근할 때 차에 실어둔 운동복이 지금까지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한번도 손길조차 내어주지 않았다. 즉슨, 운동 파업 선언한 이후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음에도 운동 가기 싫은 마음이 여전하다는 거다.  


어제는 일요일에 친구들과 늦게까지 술을 마신 탓에 잠이 필요했다. 일찍 귀가해 잤다. 오늘쯤 됐으면 어지간해서는 운동을 가자고 마음 먹을 법도 한데 일어나면서부터 '운동 갈까, 말까'를 고민했다. 씻는 와중에 운동 갈까 말까, 출근 하는 차안에서 운동 갈까 말까, 사무실에 앉아서 운동 갈까 말까, 점심을 먹으면서 운동 갈까 말까. 마침내 우유부단한 마음에 종지부를 찍은 건, 이상한 단초에서였다. 간식으로 먹은 깐초가 너무 맛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까지만 깔끔하게 운동을 쉬기로 했다.  


사실 가기까지가 어렵지, 막상 체육관에 가서 땀 삐질 삐질 흘리고, 코치님들 호통 듣고, 오늘의 운동으로 몸에 베긴 근육통을 느끼다 보면 갈까말까 고민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오길 잘했다' 고 생각하게 된다. 운동의 묘미. 그런데 그게 어려운 거다. 체육관 문앞까지 가기가.  


작년 언젠가도 이런 시기가 있었다. 대망의 운전면허 따기 대작전의 시기였다. 나는 두 번의 계절을 거쳐, 운전면허를 간신히 취득했다. 기능 3번, 도로주행 3번만에 면허가 내 손에 쥐어졌다. 여름에 시작했던 운젼먼허 따기 대작전은, 초가을이 되어서야 막을 내렸다.긴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는, 기능 2번 떨어지는 동안 추가로 연수 1번 받았고 도로주행 2번 떨어지는 동안 또 추가로 연수 받았다가 떨어지는 게 무서워서 시험 보러 가는 일을 차일피일 미뤄서다. 그때는 진짜 이상한 데서 말도 안 되게 지쳐있었다. 심신이 힘들었다. 남들은 쉽게 딴다는데 계속 미끄러지지, 운전을 못하나 하는 자책에서부터, 시험과 연수 비용으로 돈은 계속해서 줄줄이 세어나가는 탄식까지. 멘탈이 살아남을 수 없었다. 멘탈이 무너지니 운동이고 뭐고 아무 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때 이후로 체육관에 다닌 지 3년만에 내게 찾아온 두 번째 운태기.  


사실 이번에 맞이한 운태기는 너무 ‘열심히’ 인생을 산 탓이다. 전에 없던 열심히 모드로, 브레이크 없이 쉴 새 없이 달려왔다. 요즘 미라클 모닝이니 뭐니 하면서 갑자기 내 안에 자기계발하기 열정 모드가 활활 불타올랐다. 책 읽기, 신문 읽기, 하루 하나 일기 쓰기, 필사하기, 독서 모임 나가기 같은 것. 적당히를 모르고 너무 달려왔다. 심신 단련의 시기가 온 것 같다. 정신 건강과 몸 건강은 한통속이니까. 한 군데가 삐걱대면 다른 한 곳도 맞물려 삐걱대니까. 정신과 몸의 균형을 맞춰 나가야 할 때인 것 같다. 그러니까 열심히 살기 모드 잠시 Off.  


음악에서 빠르기를 표현하는 단어 중 '라르고'라는 말이 있다. 음악적 조예가 깊어서 아는 단어는 아니고, 조성진 덕질을 하면서 알게 된 단어다. 조성진이 팬사인회에서 사인을 하다가 빵하고 웃음이 터진 순간을 찍은 사진이 있다. 그 후기를 팬이 어느 사이트에 올려줘서 알게 됐다. 팬은 자신의 악보에 조성진의 사인을 받았는데, 거기에는 이런 단어가 적혀있었다. 라르고 ‘존나 느리게’. 라르고란 얼마나 느린 템포이기에 ‘존나’라는 수식어를 달게 됐을까. 앞 장에서는 얼마나 격정적인 연주가 있었던 걸까. 때로는 삶도 거칠게 연주하다 한 템포 쉬어가며, ‘존나 느리게’ 연주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오늘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즐길 것이다. 고요히 유튜브를 보며 심신을 단련하고, 어이 없이 웃겨주는 유머 채널을 지칠 때까지 볼 것이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꼭, 체육관에 나갈 것이다. 이렇게 푸욱 쉬었더니, 간만에 느껴보고 싶네 근육통. 내일부터 다시 운동 모드 On. 그러나 템포는 라르고로, ‘존나 느리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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