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즈 May 07. 2024

치명적인 하루

별일 없는 하루를 보냈다.     


요란하게 울려대는 알람 소리에 어김 없이 6시 20분쯔음에 잠에서 깨고 간신히 기지개를 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에 알차게 운동한 탓인지 몸이 피곤해 잠에서 종종 깼다. 몇 번을 뒤척이고 보니 이내 새벽이 밝아왔다.    


창문 밖에서는 연신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우렁차다. 일부러 창문을 열고 밖을 훔쳐보지 않아도, 비 오는 새벽이다. 신문을 가질러 문밖을 나섰다. 매일 아침 3층에서 1층으로 가는 수고로움을 행한다. 벌써 3주차에 접어들었다. 꽤 많은 비가 오는 탓인지 신문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조금 게을러지고 싶던 때, 신문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얕은 안도감이 세어나왔다.     


요즘 아침에는 샌드위치를 종종 만들어 먹고는 한다. 남들은 잘도 거르는 아침밥을 꼬박꼬박 애써 챙겨 먹으려 한다. 그 탓에 때가 되면 배에서는 연신 뱃고동이 울려댄다. 베이글에 햄과 치즈 그리고 계란후라이를 올려 간단하게 베이글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출근 시간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의 여유가 있다. 근래 가장 좋아하는 하루의 지점이다. 온전한 나의 시간. 동이 트기 전이라 하늘은 하늘은 새파랗고, 종종 뿌연 안개가 도시를 감싸기도 한다. 서윤후의 산문집과 정지음의 에세이를 번갈아가면서 읽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눈에 들어오는 게 없다. 가십거리 기사를 몇 개 읽었더니 금세 출근할 시간이다.   


회사에서도 별일 없는 하루를 보냈다. 내게 주어진 할당량의 업무를 했고, 오후 2시 즈음에는 외부에 잠깐 미팅을 다녀왔다. 언제 비가 왔나 싶게, 하늘은 새파랗게 물들어 있고 구름은 뭉게구름이다. 같이 미팅에 나선 동행자가 찰칵찰칵 사진을 찍기에, 덩달아 사진을 찍었다. 아직 사진첩은 열어보지 못했다.  


그냥저냥 하루를 보내고 1시간 늦게 퇴근을 했다. 퇴근 30분 전 애타는 마음으로 김민서와 고기 먹기 약속을 했다. 김민서와 함께 고기를 구워 먹었고, 고기를 먹은 뒤에는 맥도날드에 가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김민서가 장난삼아 찍어준 동영상에는 거울 속과 다른 내가 있다.  “김민서야, 이모 왜이렇게 나이 들어보이지?“ ”이모 그거 다 모공 때문이야 모공“   


작년 오늘에는 이런 일기를 적어두었다.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또 앞으로도 주욱 토요일 저녁 10시가 되면 윤시원의 유튜브 라이브를 시청하고, 다음날이면 느즈막이 일어나 업로드된 장사의 신을 보며, 깔깔거리는 그런 소소한 하루를 보내고 있으면 좋겠다.” 


이제 나는 윤시원과 장사의 신을 즐겨 보지 않는다.   


2024년 3월 26일의 틈바귀에서 임진희에게 연락이 왔었고, P와 K와 A와는 볼링 내기 시합을  잡았고, 유박사님과는 술 약속을 잡았고, 미도리님을 위해 데이식스 티켓팅에 참여했다. 그리고 나는 오랫동안 고민했던 애플워치를 구매했다. 이것으로도 이미 나는 치명적인 하루를 보냈다.  


별일이 아닌 일도 이렇게 적고 나면 별일이 된다.  38번 째 생일은 또 이렇게 기억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라르고, 아주 느리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