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세계일주 아홉 번째 이야기
유대인 소년 한 명이 실수로 찬 축구공이 아랍인의 정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그 유대인 소년은 난자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내 1929년, 엿새 동안 이어진 유혈 투쟁에서 유대인 133명과 아랍인 116명이 사망한 비극이 일어났다.
사실 이 사건의 원초적인 갈등의 원인은 통곡의 벽 예배 문제였다. 예루살렘 성지 전체에 대한 종교적 관할권이 아랍인들에게 있음에도,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통곡의 벽에 남녀를 구분하는 칸막이를 설치한 것이 발단이 된 것. 이에 아랍인들은 유대인들이 제멋대로 성소를 훼손한다고 여기며 분노했고, 그 분노는 엿새 동안의 수많은 사상자를 낸 통곡의 벽 사건으로 드러난 것이다.
오늘날 이 벽이 통곡의 벽이라는 불리는 이유는 두 가지 유래가 존재한다.
첫째는 로마를 향한 두 번에 걸친 유대인의 반란으로 하드리안 황제가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에서 추방시킨 뒤, 유대인들은 1년에 단 하루, 성전이 무너진 날에만 출입하여 성전이 파괴된 것을 생각하며 통곡한 것이 그 첫 번째 유래이고.
둘째는 예수님께서 죽으신 뒤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많은 유대인을 죽였는데, 이 같은 처참한 비극을 지켜본 성벽이 밤이 되면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 것이 두 번째 유래이다.
한 시간 남짓 통곡의 벽을 마주하고 앉아서
벽 앞에 그저 멍하니 서있는 사람, 벽 앞에서 몸을 흔들며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 그리고 정말 통곡의 눈물을 뚝뚝 흘리는 사람 등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여러 생각에 잠겼다.
지금도 어느 곳에서는 새 생명이 태어나고, 또 어느 곳에서는 갓 태어난 새 생명이 날아오는 포탄에 그만 생명을 잃기도 한다.
지금도 어느 곳에서는 병자와 약자가 돌봄을 받지만, 또 어느 곳에서는 인권이 유린당한 채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생각이 끝날 즈음에는 깨달았다. 지금도 통곡의 벽이 신음하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