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세계일주 열여섯 번째 이야기
한반도의 시작과 끝인 백두산과 한라산은 각각 2,744m, 1,950m.
그리고 내가 등반하고자 하는 곳은 해발 6,088m.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진 와이나 포토시(Huayna Potosi)였다.
사실 수도 라파즈에 도착한 후 며칠 동안 고산병 증세를 겪었던 터라, 이 도전을 계속할지 말지 수 없이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러나 이윽고 ‘과연 내가 죽기 전에 이 광활한 안데스 산맥을 올라갈 기회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나를 홀리듯 이 산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투어가 시작되는 당일 날, 고산지역 특성으로 인해 사실 그냥 맨몸으로 올라가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혀왔는데, 둘째 날 설산 등반을 위해 사용할 약 15kg가 육박하는 장비들을 직접 메고 올라가려니 평소보다 세 배 정도는 더 힘이 들었다.
그래도 힘을 다하여 나의 페이스대로 5,200m에 있는 베이스캠프까지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뎌보니 어느새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 후엔 우린, 다음 날 새벽 1시에 출발하는 등반을 위해 이른 저녁을 먹고 강제 취침을 했는데,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산 자체에 종종 크레바스가 등장하기 때문에, 길을 조금만 잘못 들어선다면 몇십 미터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어떻게든 최선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억지로 자보려고 했으나, 역시나 베이스캠프 창문을 금방이라도 깨뜨릴 것 같은 거센 눈보라와 아무리 껴 입어도 몸속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오는 추위, 그리고 계속되는 고산병 증세 때문에 그냥 거의 눈만 감은 채 밤을 보냈다.
그러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잠이 너무 오지 않으니, 너무 답답해 바람이라도 쐐야겠다는 생각으로 캠프 밖으로 나와 수 없이 수 놓인 별과 눈보라로 희미한 정상을 바라보고 있으니, 곧이어 나와 함께 한 팀인 에르난도 나왔다.
그러곤 에르난은 쏟아질 것 같은 별 아래 오천 미터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 '걱정하지 말라고,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너의 페이스대로 올라가면 된다'고 다독여주었다.
그런 순간 가운데서도 눈보라가 일었고, 몸을 쑤시는 듯한 추위, 사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 말을 듣고 나니, 이내 초조했던 마음이 평안해졌다.
'그렇지. 남들과 비교하며 꼭 정상까지 올라갈 필요는 없겠구나.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나의 페이스대로 오르다 도저히 되지 않으면, 그곳에 멈춰 서 나의 정상으로 삼으면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이내 몸에 따뜻한 온기가 도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린 한 동안 눈보라로 희미한 그 정상을 바라보며 숨죽여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