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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윤하 Mar 22. 2023

망념

소설



아 - 다음 세상에는 절대 태어나지 말아야지.


삑삑- 안전을 위한 호루라기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저 먼치 보이는 파랗고 반듯한 수평선을 눈으로 더듬으며 김영은 생각했다. 그 선에서 조금만 시선을 내리면 죄다 울렁거리는 물결이다. 울렁. 울렁. 울렁. 울렁. 눈을 위아래로 하며 동공으로 파도를 따라가자 멀미가 난다. 우엑.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후덥지근한 더위에 최악의 행동을 해버렸네. 얼굴선을 따라 주르륵 흐르는 땀을 벅벅 닦아냈다.


"김영. 다음은 네 차례잖아."


뭐 하고 있는 거야, 여기서? 빨리 가서 준비 안 하냐. 아지랑이와 함께 귓가에 꽂히는 윤영의 목소리에 성의 없이 대답하고 걸음을 옮겼다. 7,8월. 이 바닷가에 잔뜩 사람들이 들어차는 시기다. 반대로 겨울에는 모든 것이 소멸된다. 겨울 서핑을 강습받으려 이곳까지 오는 사람은 없다. 소수도 아니다. 그냥 없다. 없는데, 분명히. 김영은 2년 전, 겨울 서핑을 강습받으러 온 윤영의 서핑샵에 눌러앉아 강습일을 시작했다. 예약도 없이 불쑥 김영이 찾아왔을 때, 서핑숍 사장인 윤영의 표정은 웃겼다. 윤영 자신조차도 겨울에 텅 비어버린 해변을 보고 다른 곳으로 가려했다. 진정한 서핑은 겨울 서핑, 그것이 낭만!이라는 문구를 내걸며 인스타그램에 홍보도 해봤지만, '겨울엔 스키장 아닌가요?'라는 비아냥거리는 댓글에 마음이 상해 그만뒀다. 그날은 윤영이 기나긴 휴가를 가려 가방에 빡빡히 짐을 싸던 날이었다.


"강습받고 싶은데요."


내가 문 잠구는 걸 잊었던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김영의 모습에 윤영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반쯤 내려앉은 눈꺼풀이 무심히 윤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윤영은 당황해서 벌떡 일어났다.


"저기, 혹시 겨울 서핑 맞아요? 여기 스키장 아닌 거 알죠?"

"무슨 소리 하세요. 여기 바닷가 아니에요? 밖에도 서핑샵이라고 적혀있던데. 혹시 이 옆에 것들 다 스노보드인 거예요?"

"아. 하하하. 근데 어쩌죠. 겨울이라... 강습이..."


윤영은 우물우물 제 말을 먹었다. 패딩을 꼭꼭 싸맨 제 앞에 있는 남자는 목도리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장갑도 안 꼈다. 아무리 봐도 추위를 즐기는 타입은 아닌 거 같은데. 시선을 주르륵 내리던 윤영은 남자의 발에서 멈췄다. 빨갛게 물든 발가락을 초라하게 감싸고 있는 삼선 슬리퍼.


"서핑해 보셨어요?"


슬리퍼를 질질 끌고 온 그 모습이 어딘가 얼빠진 동장군 같아서, 윤영은 '계좌이체는 할인해 드려요'라고 말했다.







김영은 능숙했다. 슈트를 입는 것도, 발목에 리쉬를 감는 것도, 바다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푸는 동작도 죄다 능숙했다. 함께 나간 윤영은 약간 머쓱해졌다. 강습이라기엔 김영은 너무 능숙했다. 하지만 자신은 죽어도 초보자 강습을 받고 싶다고 박박 우기는 김영 때문에 모래판에 함께 엎드렸다. 에, 그러니까. 여기서 패들링이랑 테이크오프를 연습할 것인데요... 우물우물, 또 말을 먹어가며 윤영을 보았다. 김영은 표정이 없다.


"너무 능숙하시잖아요."

"능숙하기만 할 뿐이에요."

"초보자 강습은 왜 받는 거예요. 겨울 서핑도 처음 아니죠?"

"겨울 서핑은 처음이에요."


아, 그래서 강습을 받는다고 한 건가. 겨울 서핑은 약간 미지의 영역이니까. 마음대로 해석한 윤영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간단히 몸을 풀고 바다로 나갔다. 발끝부터 스며드는 서늘한 감각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다. 조금만, 조금만, 조금만 견디면. 금방 괜찮아지니까. 윤영은 김영을 살피며 함께 물로 들어갔다. 울렁. 울렁. 울렁. 울렁. 몸이 냉기에 익숙하기를 기다렸다.


"진짜 초보 강습으로 받으실 건가요? 제가 보드도 밀어드려요?"

"네. 부탁드려요."


마주친 김영의 시선이 멍하니 윤영에게 맺혔다. 거참, 신기한 양반이네. 윤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다를 등졌다. 보드에 올라오세요. 김영이 말없이 보드에 올라왔다. 보드를 잡고 파도를 기다렸다. 뒤 돌아본 바다는 회색이었다. 겨울 바다는 아무리 날이 좋아도 회색이다. 짙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눈이 오는 날에 꼭 서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신호드릴게요."

"네."


울렁거리는 감각이 더 진해지기 전에 윤영은 정신 차렸다. 바다는 이렇다. 조금만 있어도 찬 냉기가 몸에 배인다. 잔뜩 물을 먹고 가라앉는다. 그렇게 심연으로 금방 빠질 수 있다. 겨울 바다는 특히 그렇다. 굳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도, 어떤 생각의 끝이 죽음으로 연결되기 쉽다. 지금 파도 좋아요. 이걸로 갈게요. 저 멀리서 다가오는 저 파도다. 패들링 하시고, 패들. 패들. 윤영은 힘껏 보드를 밀며 소리쳤다. 푸시, 업! 예상대로 김영은 너무 능숙했다. 해변까지 주르륵 미끄러져서 도착했다. 터벅터벅, 해변에 올라선 김영은 윤영에게 소리쳤다.


"강습은 몇 시간이나 해요?!"

"1시간 정도요!"


그 후에도 윤영과 김영은 1시간이나 바닷속에 잠기고, 뭍으로 나가고를 반복했다. 정확히는 윤영만. 윤영은 계속 바다에 남아 김영을 보내고, 다시 데려오고, 다시 보냈다. 계속해서 잠겨있었다. 슬쩍 시계를 보니 50분이 지나있었다. 이제 그만할까요. 김영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먼저 뭍으로 나가는 김영을 따라 윤영도 천천히 물에서 뭍으로 걸어 나왔다. 바다에서 나오자마자 느껴지는 바람에 몸을 움츠렸다. 바다에 계속 잠겨있을 때는 마음이 죽어버리는데, 육지로 나오니 몸이 죽어버린다. 하지만 그 역시도 윤영이 바다에게서 떠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정신이 죽는 것과 몸이 죽는 것. 둘 중 무엇이 더 죽는 거 같을까.

여름에 잔뜩 모이는 광채는 모이다 모이다, 결국 겨울이 되면 검은색이 된다. 그것을 감당하는 것은 오롯이 윤영의 몫이다. 누군가는 바다에서 삶과 생기를 건져내는데, 자신이 건져내는 건 죄다 어두운 감정들이었다. 그것이 서핑샵 사장의 숙명이라지만, 매년 겨울을 맞이할 때마다 마음이 바닥에 붙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수강 시간이 끝나고 강습생들에게 자유시간을 주고, 김영도 자신의 보드를 들고 왔다. 하지만 파도를 타고 싶은 마음은 없어 잠시 둥둥 떠있기로 했다. 여름 바다에서 사람이 없는 부분을 찾기는 힘들었으나, 최대한 구석으로 가서 보드 위에 벌렁 누워버렸다. 쨍쨍 내려쬐는 햇빛에 눈을 감았다. 울렁. 울렁. 울렁. 울렁. 이렇게 잠겨있다 보면 새파란 바다의 32번째 정도 물결이 되는 느낌이다. 순식간에 105번째가 되었다가, 63번째가 되었다가, 1068번째가 된다. 고개를 돌려 강습 전에 쳐다보던 수평선을 바라본다. 가까운 곳은 죄다 울렁거리고 울퉁불퉁 갈피를 못 잡는데,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어찌나 반듯하고 곧은지. 김영은 자신 같다는 생각을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반듯해 보이는데, 조금만 가까이서 보면 울퉁불퉁 거칠다. 서핑보드에 누워 바다와 경계를 흐릴 때마다, 김영은 2년 전 윤영에게 강습받던 날을 떠올린다.


"그때 준비한 대로 죽을 걸 그랬나."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물결에 스며든다. 사실 김영은 그때 죽으려 했다. 지금의 미지근한 기분 좋은 온도가 아니라, 발끝만 담궈도 몸서리치게 추운 물안에서 그대로 빙하가 되려 했다.

하면 곧 잘 해내는 사람인 김영은 지독한 능숙함에서 결국 심연을 꽉 쥐었다. 태생이 우울한 인간이라 그런가. 잦게 찾아오는 푸른 감정은 자주 김영을 죽고 싶게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찾던 바다와 우연히 시작한 서핑을 통해 자신은 구원받았다는 생각을 하던 시기도 있었다. 바다에 올 때마다 느긋해지는 마음, 맛있는 것들, 아름다운 풍경, 즐거운 분위기. 김영은 그 속에 섞이며 자신도 그렇게 물들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곧 익숙해졌고, 김영은 곧 잘 해내는 사람이기에 서핑도 금방 능숙해졌다. 결국 잔뜩 바다의 파란색을 흡수하고, 이젠 진짜 죽어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겨울날. 윤영의 서핑샵을 발견했던 그날. 회색 바다를 마주하고 온통 불이 꺼져있던 서핑샵 사이에서 홀로 빛나고 있던 윤영의 서핑샵을 방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정신없이 배낭을 싸던 김영의 모습을 보았을 때, 아, 이 사람도 결국 참다 참다 떠나는구나, 인지했을 때. 그 웅크린 정수리에서 자신을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보드 타다가 왔어?"

"아니, 그냥 누워있다가 왔어."


담배를 물며 흘끗 쳐다보니 손이 퉁퉁 불어있다. 개구리 왕자다. 김영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서핑샵으로 들어가는 손님들을 따라 사라졌다. 오늘은 성실한 직원이네. 윤영은 여름이라 바글거리는 해변가를 내다보았다. 윤영의 서핑샵은 카페를 겸하지 않는다. 그래서 펍이나 카페를 겸업하는 서핑샵에 비해 손님이 적다. 겨울이면 쪼달리고 쪼달리지만 여름이면 느슨하게 묶여있는 신발끈 같아서 좋았다. 적당히 장사는 되고, 신경 쓸 거는 없고. 물론 인력비가 빠져나가기는 하지만, 이런 여유도 가질 수 있으니 윤영은 만족했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 분홍빛 하늘을 본다. 바닷가 하늘은 참 신기하다. 모든 하늘은 어디에서 보나 똑같은데, 바닷가의 하늘은 쉽게 다채로운 색상으로 물든다. 서핑샵을 본격적으로 열기 전, 경험 목적으로 여러 장소의 서핑샵을 다닌 적이 있다. 양양 앞바다에서 인공적으로 꾸며놓은 야자수와 나무의자에 앉아 맥주를 먹으며 바라보았던 분홍색 하늘, 하와이 오하우에서 어설픈 언어로 서핑샵 주인과 친구가 되었던 것, 뉴질랜드 뉴플리머스의 미술관에서 전혀 이해하지 못한 현대미술전시를 보고 해변으로 나가 서핑 포인트를 찾다가 지쳐, 5불 피자와 콜라를 먹은 것. 그때마다 보았던 하늘은 참 아름다웠다. 분명 하나의 담요로 지구에 덮여있을 텐데 미묘하게 다른 분위기와 공기를 띄고 있는 게 참 신기하지. 어쩌면 그래서 아직까지 죽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항상 몸을 내 맡기는 바다나, 숨을 쉬고 있는 육지가 아닌, 멀리 바라보기만 하는 익숙해지지 않는 하늘 덕분에. 붉은색과 푸른색이 오묘히 섞인 하늘을 멍하게 바라보던 윤영은, 옆 자리에 앉는 김영의 인기척에 정신을 차렸다.


"아까 나간 손님들 뭐 샀어?"

"티셔츠. 굿즈로 만든 게 은근 잘 팔리네."

"여름 바다는 무엇이라도 손에 쥐고 싶게 만드니까."

"그럼 겨울 바다는?"

"무엇이라도 놓게 만들지."


김영은 흘끗거리며 윤영을 보았다. '아아 좋다-'라며 고개를 젖히는 윤영은 너 아직도 죽고 싶어? 김영에게 물었다. 윤영의 목소리에 김영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응. 자주. 갈라지는 목소리에 윤영은 움직임이 없다.


"죽으려면 여름에 죽어."

"왜?"

"여름 바다에 건질게 더 많잖아. 겨울 바다에는 아무것도 없어. 여름이 두고 간 황망한 마음, 소멸된 감정, 때때로 버리고 가는 미운 감정. 답답한 감정. 여름은 더 화사하고 예쁘니까."

"그거 나 생각해 주는 말이야?"

"응."

"죽지 말라는 말을 이상하게 돌려서 말하네."

"내가 언제 죽지 말래?"

"여름 바다에서 죽는 게 쉬울 리 없잖아. 어디서나 꺄르르 웃음소리가 들려오는데 금방 발견돼서 건져 올려질걸."

"그런 마음가짐으로 죽음을 논하다니. 너는 실격이야.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형벌에 처한다."


마치 판사처럼 말하는 윤영의 목소리에 김영은 옅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자기는. 언제나 죽어있으면서. 마음 깊이 숨겨져 있는 문장을 김영은 내뱉지 않는다. 새파랗게 펼쳐져있는 푸른 하늘, 별을 잔뜩 뿌려놓은 반짝이는 오후 3시쯤의 바다 앞에서, 언젠가 웅크린 등을 한 윤영이 자신은 물에서도, 뭍에서도 죽어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럼 지금 숨 쉬고 있는 너는 뭔데? 김영의 물음에 윤영은 우물우물, 습관처럼 자신의 말을 한참이나 먹어대더니 내뱉었다. 딱, 경계려나. 윤영의 말에 김영은 바다의 머나먼 수평선을 바라봤다. 딱 그어져 있는 선. 그 아래에 잔뜩 깔려있는 곡선들, 그 위에 점 하나 없이 맑은 하늘. 그 경계를 따라 외줄 타기를 하는 윤영의 모습이 그려진다. 양팔을 들고, 떨어질 락, 말락, 떨어질 락, 말락.


"윤영."

"응?"

"이번 겨울은 어떻게 보낼래."

"아아- 역시나 귀찮은 시기가 왔군. 확실히 작년에 네가 다시 한번 심기일전해서 내건 '낭만겨울' 포스팅은 또 비웃음을 샀지."

"재작년에 네가 내건 할인은 어떻고. 애초에 사람이 없는데 무슨 할인을 하냐? 온라인으로 팔 것도 아니면서."

"윽. 이렇게 된 이상 여름에 왕창 벌어서 겨울은 동면한다."

"매번 그래왔으면서 언제는 안 그런 척하네."

"너, 사장님한테 말하는 투가 아주 건방져! 공손히 이야기해."

"매번 그러셨으면서 언제는 안 그런 척하시네요."

"미묘하게 기분이 더 나쁘다."

"이번에도 서핑샵 열거야? 다른 곳은 다 닫잖아. 그래서 더 사람들이 안 오는 걸 지도..."

"응. 네가 처음 왔을 때 배낭을 쌌던 건, 그때 정말 결심했던 거였는데."

"무엇을?"

"뭐든? 스키장이라도 가볼까 싶었다고."


아직도 윤영의 시선은 하늘에 머물렀다. 여름이라 해가 기니까. 아직까지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들려온다.


"호주로 서핑하러 가 볼까."

"갑자기?"

"그곳은 반대로 여름이잖아. 낯설기도 하고... 여름 크리스마스 궁금하기도 하고."

"너 근데 돈 있어?"

"이번 여름에 벌어야죠, 사장님."

"인센티브는 분명 없었던 거 같은데."

"술 취한 사람들한테 티셔츠 강매할까?"

"오, 나쁘지 않은 걸."


그래, 호주 하늘은 본 적이 없으니까. 좀 궁금하기는 해. 먹지 않고 중얼거리는 윤영의 말이 바닷바람에 스며든다.








-

경계에 서서

자주 우울해지는 두 사람과

자주 괜찮아지려고 노력하는 두 사람을 그리고 싶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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