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밭 한가운데 고추와 고구마 사이로 다른 식물 하나가 자랐다. 잎을 조금 떼어 냄새를 맡아봤다. 익숙한 냄새다. 하지만 그 식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왠지 잡초처럼 뽑기에는 뭔가 수상했다. 지켜봤다. 두세 달이 지났다. 키가 훌쩍 커버린 붉은 식물. 밭에 심어 놓은 작물 위로 쑥 올라간 키는 자신을 뽐내고 있은 듯 보였다. 맨드라미 꽃과 흡사하지만 다르다. 맨드라미 꽃은 닭 벼슬처럼 하나로 뭉쳐 있다면 이 꽃은 한줄기에 여러 줄기로 분산되어 있다. 여러 개를 잘라 빗자루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 자란 꽃은 보니 어디서 본 것 같았다. 앞집 밭에서 봤던 꽃이었다. 그리고 그 집에서 마셨던 붉은 꽃차였다. 꽃차를 검색해보니 아마란스였다. 씨가 날려 우리 밭에서 풀처럼 자라난 것이다. 나도 꽃차를 만들고 싶어졌다. 그래서 튼실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늦가을 수확이 시작되고 끝나가고
텅 빈 밭 한가운데
혼자서
태양을 독차지하고 있는
아마란스 한 그루
목이 긴
붉은 꽃 덩어리
한 손에 잡힐 정도로 적은 양의 꽃을 말렸다. 말린 아마란스를 터니 손으로 집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검은 씨가 후드득 떨어졌다. 그리고 보관해 두었던 씨를 올봄에 심었다. 시간이 지나자 붉은 잎들이 쑥쑥 자라났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니 튼실한 아마란스 꽃들은 여기저기 자신의 키를 주체하지 못하고 누워있었다. 한 그루의 식물이 수십 개가 되었다. 작물 중 가장 많이 씨를 수확할 수 있는 것을 물어본다면 아마란스라고 말하고 싶다.
붉은 아마란스 꽃차를 마신다. 향이 강하지 않아 마시기가 좋다. 무엇보다 색이 주는 느낌으로 인해 그 향이 더 깊게 느껴진다. 처음으로 만든 꽃차 나름 성공적이다. 우러난 색이 이뻐 자꾸 손이 간다. 그래서 아침이 되면 물을 끓여 차 주전자에 물을 붓는다. 붉은색이 우러나오는 사이 저절로 나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배어 나온다. 가족들에게 따뜻한 꽃차를 준다. 각자 웃음 지며 꽃차를 마신다.
붉은 꽃이 담긴 유리병을 본다. 하나는 도시에서 하나는 오두막이 있는 산중 언덕에서 마실 꽃차. 물 온도와 양 그리고 덖음에 따라 보라, 빨강, 주황, 노란색으로 우러나는 아마란스 꽃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