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사과처럼

by 장버들


풋사과를 닮았다 ⓒ 은섭


결실의 계절인가.이었으면 한다.




산골짜기 둥지에는 딱 한 그루의 배나무가 있다. 나보다 먼저 와 정착한 나무. 10년 전에도 지금도 그대로 그 자리에 묵묵히 있다.


10년 넘게 수확의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배나무에 웬일인가. 배나무를 뒤덮고 있는 풋사과 같은 배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동안 제대로 열린 적 없던 나무이다. 과일나무는 계절에 민감하다. 좀 열렸다 싶으면 태풍에 와서, 가뭄이 져서 또는 자연 현상에 의해 벌레 밥이 되기 일수이다.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관심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배나무에 농약을 뿌리지도 거름을 주지도 않았다. 자연 그대로 방치했다. 언젠가 열리겠지 하는 무심함으로 배나무를 지나치곤 했다. 그러면서 결실을 바란다는 것은 욕심인 것을 안다. 배나무가 있는 곳은 농막 위쪽으로 조금 올라가야 한다. 먼 거리가 아님에도 그쪽으로 자주 보지도 가지도 않았다. 그런데 해맑은 얼굴을 내밀듯 열려 있는 배가 환하게 보였다. 내 눈을 의심하며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봤다.


이렇게 많이 열리다니 감탄이 터졌다. 열매의 무게에 하중을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는 휘어져 땅바닥에 손을 짚고 있는 듯 보였다. 나무가 버거워 보여 배를 일부 솎아주기로 했다. 따다 보니 배나무에 달려있는 열매는 줄지 않고 바구니의 숫자만 늘고 있었다. 이렇게 많을 줄이야. 수확의 기쁨도 잠시 이렇게 많은 양의 배는 또 하나의 일거리가 된 것 같았다.


그래도 10년 만에 손에 쥐어진 배를 보며 기분이 좋아졌다. 진하지 않지만 배임을 알 수 있는 배향과 배이지만 초록사과 같은 생김새가 너무 귀여웠다. 한 입 물었다. 아직 다 익지 않은 배는 단맛보다는 시큼한 맛이 더 강해 풋사과를 먹는 것 같았다. 바구니에 쌓인 배를 그냥 먹기엔 무리였다. 어쩔까 생각하다 청을 담기로 했다. 배는 기관지와 감기에 좋으니 배청으로 담아놓아도 괜찮을 것 같다. 깨끗이 씻어 도마에 올라놓았다. 왠지 모르게 이뻐 보였다. 사각거리며 잘라졌다. 사각거림은 음악처럼 한낮의 땡볕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나 또한 기분이 좋아졌다. 곧 배는 맛있게 익어 갈 것이다. 그때는 풋사과가 아닌 배로 저녁노을과 함께 달달하게 익어 가겠지. 우리의 삶도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듯이


배청을 담으면서 풋사과의 느낌으로 다시 시작하고 있다. 사각사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