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pack of two'인 당신에게
아픈 강아지를 돌보며 글을 써 내려간 이유는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분명 나와 같이 아픈 강아지를, 사라져 가는 소중한 존재를 두고 어쩔 줄 몰라하며 죽음과 치열한 맞짱을 뜨고 있는 나와 같은 누군가를 찾는 것.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느낌을 갖는 것이 너무 필요했고 그런 존재가 나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싶어 이곳저곳을 헤맸다. 동물병원에 앉아 아이가 진찰을 받으러 들어가면 나는 평소 모르는 이에게 먼저 말을 거는 성격이 아님에도 그곳에 오는 이들과 그들이 데려온 아픈(주로 아픈) 친구들을 향해 몸을 돌려 앉아 바라보며 마음을 열어두곤 했다. 또는 나와 같이 나이가 든 강아지를 키우는 지인에게 병원에 왔다고 알리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기도해 달라는 연락을 했다.
나만 겪는 상황이나 감정이 아니라는 안도감. 정확히는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고 싶었음이 분명하다. 각개전투, 다른 곳에서 함께 싸우고 있다는 것만이라도 알고 싶었다.
다수가 가는 길이 정답인 것처럼 여기기 쉽다. 특히 한국사회는 모법답안이 정해진 사회다. 이왕이면 좋은 대학에 입학하여 좋은 조건의 일자리와 배우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아이를 교육, 결혼시키고 은퇴하는 삶. 부모에 의해 생활과 교육비를 지원받으니 대학 졸업 전까지는 온전히 스스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고 구별해 내기 어렵다.
청소년 시절 우연히 읽게 된 잡지에 유럽출신의 어느 모델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열일곱 살 정도의 소년티가 나는 모델이었는데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모델 일로 생계를 꾸려 나가고 있었고 대학진학을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로 생각했다. 나는 그때 뭔가 머리를 맞은 듯했다. 삶에는 다양한 길이 있고 꼭 모두가 가는 넓은 길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흘렀지만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아픈 강아지를 돌보며 이곳에 글을 써 내려간 이유는 누군가 내 글을 읽고 혼자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을 갖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조금이라도 다르면 비정상으로 여기는 이 사회에서 상처받지 않고, 곁에 있는 털북숭이 친구를 향해 힘을 낼 수 있는 마음. 내가 그런 마음을 얻고 싶어서였다.
아직도 후회되는 일은 나 스스로 타인의 삶에 견주어 강아지와 함께인 내 삶을 계속 의심하고 고뇌했던 시간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사라져 가고 있는 내 소중한 친구의 눈을 한번 더 바라보고, 만져주고,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실제 나는 그 시간이 너무 고되고 힘들어서 다시는 강아지를 못 키울 것이라 아니 안 키울 것이라 다짐할 정도였다. 너무 사랑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그만하고 싶었다. 이때 '그래 사랑하는 일이 힘든 거지, 건강할 때만 힘들지 않을 때만 함께 하려 했냐'며 등을 토닥여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나는 이런 존재를 찾고자 헤맸고 그런 글들을 찾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어쩌다 그런 글을 발견하면 눈이 반짝 뜨이고 힘을 냈던 것 같다. 나처럼 이런 존재와 글을 찾고 있다면 캐롤라인 냅Caroline Knapp의 <개와 나Pack of Two>를 추천하고 싶다. 아쉽게도 이 책은 내가 한참 고투할 때 발견하지 못하고 내 친구가 긴 여행을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기자 출신의 작가가 꾸밈없이 진솔하게 적어 내려가는 자신의 개, 루실을 향한 애착과 그로 인한 여러 가지 고민과 번뇌를 잘 다루고 있는 책이다.
모두가 가는 길이라고 굳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길을 가려 애쓰지 말자. 그래 그 길은 여러 사람이 가기에 튀지 않고 안전한 건 맞다. 그러나 그 길을 걷고 걸어도 발만 아프고 나에게 맞지 않다면 나는 아직 많은 사람이 가지 않은 길이고, 가는 길에 만나는 이 적어도 그 길로 걸어가고 싶다. 더욱이 한 세트인 나의 털북숭이 친구와 함께 라면 그 길이 아무리 끝없이 길고 길어도 좋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