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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l 01. 2024

바삭 돈가스

경쾌한 관계

오랜만에 돈가스를 만들었다. 이틀 전에 아이가 돈가스를 얘기했지만 재료 준비도 안 되었고 시간도 없어서 지났다. 아침에 학원 데려다주는 길에 아이에게 점심 메뉴를 물었다.

“돈가스?”

다른 답을 할 수가 없다. 별다른 메뉴가 떠오르지도 않았다. 아이는 방학 전 2차 고사를 앞두고 있어 먹는 일이 가장 즐거운 일일만큼 여유가 없다.  


토요일 돈가스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동네 정육점으로 갔다. 평소 즐기는 앞다릿살 불고기 한 팩을 사 왔다. 처음에는 등심으로 하려 했는데 마음을 바꿨다.      


익숙한 돈가스보단 조금은 다른 '돌돌말이 돈가스'로 정했다. 구워 먹는 치즈를 고기에 올려 돌돌 말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치즈 돈가스다. 여기에 내가 먹고 싶은 깻잎 돈가스도 만들었다. 같은 방법으로 엄마가 보내온 거센 깻잎을 서너 장씩 고루 넣었다.    

돌돌 돈가스

고기가  원하는 모양을 잡기가 편하다. 치즈와 채소가 고기에 딱 달라붙어 떼어지지 않으니 돈가스 만들기에 편하다. 고기가 얇으니 눈으로 빵가루가 갈색이 되면 익었다는 분명한 신호다. 그렇게 돌돈가스가 차곡차곡 쌓였다. 혹시 고기가 안 익을까 조마조마하던 마음이 없으니 튀기는 마지막 작업도 가볍다.     


어느새 접시 가득 적당히 길고 뭉뚝한 돈가스 완성이다. 갈색을 살짝 보이는 그건 보기만 해도 맛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나를 들어 가위로 잘라보니 고기 안에 흰 치즈와 초록이 단단히 자리 잡았다. 


돈가스 소스에 찍어 먹는 아이 얼굴이 오랜만에 해맑다. 바삭한 돈가스 한 조각이 그를 미소 짓게 한다. 먹는 일은 순수함을 절로 나타나게 하는 대단한 일상이다.  


아이와의 사이도 돈가스를 한입 먹는 경쾌함 같았으면 좋겠다. 아이와 힘든 시간들이 많다. 언제 그렇게 시간이 흘러 버렸는지 아이는 벌써 고등학생이다. 아이를 내 기준으로 바라볼 때면 불편한 구석들이 많이 보인다. 그건 내 부족함을 확인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욕심이 커져 아이의 상황을 바라보기 전에 원하는 것들을 말하기에 바쁘다. 그때 놓치고 있는 게 많은 듯하다. 나 역시 그 시절 하지 못했던 것을, 실패를 반복하지 말았으면 하는 부모의 마음으로 포장하려 한다.    

 

아무리 애써도 시행착오는 있기 마련이다. 미리 그것을 방지한들 얼마나 영양가가 있을까 싶다. 종종 아이와 난 오래된 마루 삐걱거리듯 한다. 학교 가기 전 내 불만이 터지는 날은 아이의 어깨에 힘이 빠진다. 현관문이 탁하고 닫히는 순간 내게도 괴로움이 찾아온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그럼에도 아이는 하교할 즈음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종알종알 말을 걸어온다. 


“엄마, 이거 돌돌 말아서 더 바삭하다.”

아이가 돈가스를 먹으며 맛을 전했다. 아이와 바삭한 관계를 희망한다. 아무리 어려운 것도 단순하게 쉽게 말할 수 있음만큼의 거리,  “그랬어”라고 가볍게 반응해 주는 나였으면 좋겠다.     


돈가스를 먹고 불평하는 일은 별로 없다. 요리사의 숙련도에 따라서 혹은 집에서 만드는 날이면 내 기분이 조금은 음식에 끼어들 수 있지만 보통이상이다. 왜 그럴까 살펴보니 과정에 답이 있었다.  


돈가스는 고기에 밀가루와 달걀 물, 빵가루를 입히는 기본적인 일련의 순서를 지켜야 제맛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니 쉽게 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빵가루 속에서 곱게 숨어있다 맛을 볼 때만 속살을 보여준다. 


지금의 아이와 나 사이엔 십여 년의 삶에서 축적해 놓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것을 한꺼번에 어찌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아이가 점심을 먹고 한참을 있다 학원으로 갔다. 불현듯 살랑이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아이를 떠올렸다. 그때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기분이 이러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일었다. 비가 잦은 장마철에는 돈가스가 들려주는 특별한 음악으로 쉬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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