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생활
녹차 식빵을 만들어 두었다. 거기에 무엇을 올려 먹을지 고민하다 오랜만에 감자 샐러드를 생각했다. 저녁은 빵에 샐러드를 올린 그것으로 했다. 간단해서 좋고 그 너머엔 뿌듯함이 있다.
빵 굽는 일을 즐기다 보니 이제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충분히 두 배로 부풀 동안 기다려주면 그리 실패할 일은 없다.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한 시간을 발효해도 부푸는 정도가 별로이면 좀 더 기다리면 괜찮다.
그렇게 구워둔 빵이 있다. 식구들이 부지런히 먹지 않으니 한번 구우면 사나흘은 충분히 빵이 머문다. 빵집의 것보다는 작은 그것에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 감자 샐러드는 빵을 위한 것이었다.
감자가 넉넉하니 먹는 일에도 자유롭다. 우리 집 과수원 한편에서 자란 감자라 더 마음이 간다. 겉은 사춘기 소녀 얼굴에 갑작스레 찾아온 여드름같이 거친 흉터가 수두룩하지만, 속살은 매끈하다.
감자의 이력을 알고 있으니 이런 모습은 문제가 아니다. 아는 이가 편하듯 먹는 것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가 보다. 반백의 세월 동안 요리를 가르쳐 온 어느 요리 선생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내 삶과 가깝고, 제철에 나는 재료들로 음식을 만드는 게 건강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지금 내게 소중한 먹거리인 하지 감자가 그러하다.
감자는 먹을 만큼만 꺼내 껍질을 벗기고 얇게 썬 다음 쪘다. 10여 분이 흘러 젓가락을 들어 콕 찔러보았을 때 잘 들어가면 다 익었다는 증거다. 꺼내어 한 김 식힌 후에 삶아둔 달걀 두 개와 함께 으깼다. 양파나 오이, 당근을 떠올렸지만 편하게 하기로 했다. 이 두 가지만을 놓고 소금과 설탕 조금에 마요네즈를 넣고 쓱쓱 섞었다.
장마로 습하고 높은 온도에 손만 잠깐 움직이니 저녁이 가볍다. 빵 사이에 상추를 깔고 그 위에 샐러드를 올렸다. 샌드위치 완성이다. 간단하지만 먹고 나서 찾아오는 넉넉한 기분에 편안하다.
“엄마가 빵도 구울 줄 알고 정말 먹는 일에선 못할 게 없을 것 같아.”
아이에게 말하며 혼자 뿌듯했다. 문득 난 식생활에서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될 만큼 독립했다고 여겼다.
어느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스스로 식생활을 원하는 대로 꾸려갈 수 있다면 살아가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고 했다. 내가 그런 사람일 수도 있겠다며 나를 다독였다.
그러고 보면 내가 막연하게 떠올리는 것들은 실체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입안에 맴도는 말이 습관처럼 별 의미 없이 내뱉는 것. 그것이 모습을 갖춰서 걱정거리로 변하는 게 아닐까.
감자 샐러드 샌드위치는 습하고 더운 장마철에 어울린다. 밖은 우중충 하지만 감자의 맑고 연한 노란빛에 상추의 초록은 왠지 모를 생동감을 전한다. 주변이 환해지는 듯 싱그럽다. 샐러드는 맛은 뻑뻑한 듯하면서도 감자의 부드러운 끝 맛에 이끌려 그만 먹을까 하다가 다시 찾는다.
요리하고 먹는 일은 내 생활의 감정과 습관, 관계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가 담겼다. 그래서 매일 같아 보이는 음식이지만 아주 작은 차이가 있을 때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그때 더 나를 돌아보고 살피며 나아가야 할 때다.
감자샌드위치를 두고 기분이 좋아지는 이 순간에 감사한다. 가볍고 단순하게 살고 싶어 하는 바람이 일상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