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멋진 날
아침을 준비하다 빵 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무덥던 여름에도 빵을 종종 만들었는데 가을에 들어서고선 멀어졌다. 그만큼 바쁘게 산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빵을 떠올린 건 내 마음속에 무엇이 일렁이고 있다는 의미다. 다가오는 생각들에서 마음 둘 곳이 필요했다. 타인에게 말 걸기보다는 빵 굽는 일로 시간을 보낼 때가 편안하다. 이런 날은 시간이 걸리는 발효빵으로 한다.
빵이 구워져 나오려면 보통 세 시간 이상이 필요한데 그동안 작은 평화가 찾아온다. 말랑말랑한 밀가루 반죽을 만질 때 느껴지는 부드러움이 참 좋다. 작았던 덩어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부풀어 올라 처음과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그때를 기다리는 동안은 고민에서 멀어진다. 그저 한입 먹고 싶은 빛나는 빵만 보인다.
빵을 구울 때 매번 비슷한 정도의 밀가루를 사용한다. 밀가루는 200그램을 조금 웃도는 정도로 준비한다. 우유나 물은 130그램으로 하고 상황을 봐가면서 더하거나 줄인다. 5그램의 인스턴트 드라이이스트와 한 숟가락 정도의 설탕, 소금은 아주 조금이다.
재료를 잘 섞고 반죽이 반들반들해질 때까지 치댄다. 이날 새로운 건 옥수수였다. 언젠가 옥수수 가루 대신 통조림 옥수수를 활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 방법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물에 한 번 헹군 옥수수를 믹서에 넣고 갈았다. 반죽에 넣고 섞는데 양이 너무 많은 탓에 옥수수 죽이 되었다. 마음을 잡으려고 했던 일인데 상황이 다르게 흘러가는 것 같아 당황스럽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서너 번에 걸쳐 밀가루를 더했다. 조금씩 반죽이 진정되었다. 그러는 동안 반죽 덩어리는 커졌다. 빵을 한 종류로만 만들기에는 양이 많은 것 같아 생각나는 대로 세 가지에 도전했다.
옥수수빵과 시나몬 롤, 찐빵으로 정했다. 운동 후에 집에 돌아와 부지런히 반죽하고 두 시간가량을 발효시키며 보내니 점심때다. 빵 구울 준비를 하는 동안은 집안일에서 멈췄다. 여기저기 내 손길을 기다리는 주변을 보니 일하기도 전에 지쳐왔다. 심호흡하고 하나씩 정리했다.
그러는 사이 빵도 마지막 과정에 들어섰다. 오븐에선 빵이 구워지고, 찜통에선 찐빵이 부풀어 오른다. 아마 이 일을 하지 않았으면 월요일 오전은 그냥 흘러 보냈을 것이다. 여러 도구를 꺼내어 빵을 만드는 일보다 생각을 바꾸면 해결되는데 실천하기는 너무 어렵다. 받아들임은 매번 오르지 못하는 산이다. 이날도 그것을 못하니 빵으로 대신했다,
빵 굽는 일에서 조차 내 뜻과 다르게 갈 때가 비일비재다. 하물며 살아가는 일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담백한 옥수수빵으로 끝내려 했다. 옥수수양을 조절하지 못했던 게 오히려 새로운 빵을 만날 기회가 되었다.
생각과 계획, 실천이 하나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다. 그리하는 이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사람이다. 가끔은 의도하지 않게 벌어진 일에서 뜻밖의 선물을 받는다. 그러기 위해선 상황을 슬기롭게 정리해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빵이 친구가 되어주었다. 내게 집중하며 얼마간의 움직임이 따뜻한 빵으로 완성될 때까지 부족하지만 가득 채워진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