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맛
떡국 맛을 알았다. 곰곰이 돌아보니 일 년 전쯤부터다. 그전까지는 무조건 밥이 최고였다. 떡국과 밥은 쌀이라는 한 곳에서 출발하는데도 난 이 둘을 아주 다르게 대했다.
오래전 분식집에서 떡 만둣국을 시키는 이를 보면서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였으면 김밥 한 줄이 오히려 나은 선택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어떤 음식이든 쌀이 들어간 걸 좋아했다.
겨울날 별다른 게 생각나지 않아 떡국을 끓였는데 완전히 새로웠다. 떡국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더니 쫄깃한 식감이 제일 먼저다. 그다음은 맑은 기분이다.
넓은 대접에 어슷 썰어진 떡이 가지런히 담긴 떡국은 쌀이 지닌 은은한 단맛이 일품이다. 국물은 어떤 재료를 가지고 육수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떡은 그것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떡국은 홀로 언제나 독립적으로 고고히 제멋을 뽐낸다. 떡은 국물과 어울린 듯하면서 투명하고 부드럽게 입안에서 깔끔하게 맴돈다.
떡국은 추운 겨울에는 어느 날에나 어울린다. 냉장고를 열어 별로 먹을 게 없는 날은 떡국이 떠오른다. 냄비에 물을 넣고 디포리나 멸치로 육수를 낸다. 이때 간은 조선간장이 제격이다. 때로는 그것마저 귀찮을 때는 참치액으로 대신한다.
물이 끓으면 떡을 넣고 원하는 채소들을 넣는다. 점심에는 배추와 표고버섯에 살짝 볶은 당근을 고명으로 했다. 고기 하나 들어가지 않은 국물은 떡의 풀기가 더해져 진하면서도 풍부한 맛을 낸다.
좀 더 맛있게 먹고 싶다면 식탁 위에 나뒹구는 조미김을 꺼내어 깨끗한 비닐에 넣고 부숴서 넣는다. 김에 있는 조미료는 떡국에 순식간에 스며들어 은은한 바다향과 더불어 전과는 분명히 다른 맛이다.
온몸에 찬바람이 몰아치는 날 떡국은 있는 그대로 따뜻한 한 끼다. 손 하나 까딱하고 움직이기 싫을 때 내가 엄마라는 이유로 나를 바라보고만 있는 식구들에게 밥 한 끼를 꾸역꾸역 준비해야 할 때 떡국을 끓인다.
끓는 물에 딱딱한 떡이 말랑말랑 해질 무렵이면 마음도 서서히 기운을 내어본다. 그러다 보면 다른 것도 보인다. 배추를 넣을까? 아니면 김이라도 넣을까? 아니면 달걀 물이라도 더할까. 맹탕이던 희멀건 그것이 조금씩 맛을 내어갈 때 다시 지금을 보낼 의지가 생긴다.
간단해서 떡국이 좋다. 이건 재료를 부지런히 준비하지 않아도 한 그릇이 완성된다. 떡국은 내 감정을 딛고 일어나기가 쉽지 않아도 내 일을 해야 하는 날에 든든한 의지처다. 특별하지 않아도 아쉬움이 없다. 쉬운 걸 할 때는 처음부터 가볍다. 떡국을 끓이는 일처럼 하루도 흘렀으면 하고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