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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Dec 03. 2024

아이와 집밥

별일 없는  하루 

아이가 집밥을 좋아한다. 휴일에는 집에서 빠짐없이 세끼를 먹었다. 아이는 기말고사 직전 주말이라 더 바쁘다. 예전 같으면 편의점이나 도서관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해결했지만, 이번은 아니다.     


5분도 안 걸리는 가까운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까닭이다. 아이는 같은 반 친구에게서 괜찮다는 얘기를 듣고는 지난 주말부터 다녔다. 9시에 문을 여니 그때 나갔다가 점심과 저녁을 먹기 위해 12시와 저녁 6시 즈음에 집으로 온다.     


밥때가 되면 어김없이 55분 정도에 출발한다는 전화가 울린다. 밥 준비를 해 놓으라는 신호다. 돌아서면 밥이라는 말이 딱 맞다.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조금 여유를 부리려 할 즈음에 점심을 고민한다.  

   

“엄마 집에서 밥 먹으니까 좋다. 집밥이 정말 좋아.”

아이가 집에서 밥을 먹을 때면 종종 이런 말을 건넨다. 처음에는 내가 만든 음식을 좋아하니 그저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 문득 아이가 이제 많이 컸구나 하는 마음에 다른 기분이 들었다.     

어느 봄날 친구들이 챙겨 온 집밥 

밖에서 먹는 게 좋은 시절이 있다. 집에서 먹는 건 특별하게 차린다고 해도 분명 한계가 있다. 하루하루가 다르지 않다. 비슷비슷한 찬 사이에서 어쩌다 원하는 걸 마주하게 되면 그저 운이 좋거나 나를 위한 날이다.     


아이가 집밥이 좋다는 건 집이란 공간을 알아간다는 의미다. 불편한 날도 있지만 다른 어느 곳과는 비교할 수 없는 편안함이 있다는 것. 보여주기 싫은 내 모습을 꼭꼭 감춰도 무리가 없다는 것.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 집을 떠올리니 여러 가지가 스쳐 지난다.    

 

나 역시 집 밖 세상 공기가 궁금한 날은 갑작스럽게 친한 이에게 연락한다. 서로의 시간이 맞아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역시 집이 최고라고 여긴다. 벗어나고 싶은 곳도 집이지만 돌아오고 싶은 곳도 집이다. 아이도 이런 생각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그럴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아이가 집밥을 좋아하는 게 때로는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특히 저녁밥은 아침이나 점심과는 다른 걸 식탁에 올려야 할 것 같다. 머리를 써도 새롭게 차려낼 음식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다 한 일주일 정도 지난 음식이 떠올랐다. 추운 겨울이니 따뜻한 국물이 중심이 되는 어묵탕이나 샤부샤부를 자주 식탁에 올린다.    

 

손이 많이 가지 않으면서도 식구들의 만족도가 높다. 채소를 평소보다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이것을 좋아하는 이유다. 토요일에는 배추와 버섯, 청경채를 가득 넣은  소고기 샤부샤부를, 일요일은 무를 잔뜩 썰어 넣은 어묵탕으로 했다.     


아이는 대환영이다. 엄마의 음식은 언제나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듯 즐겁게 먹었다. 이럴 땐 아이가 참 고맙다. 맛있게 먹어주어서, 내게 미소 지어주어서 뭉클하다. 한동안 아이의 성적이 내 것인 양 힘들었다. 이제 고3으로 올라가기에 현실적인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도 이런 내 마음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고등학교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후회 없도록 시간을 활용해 보자는 얘기를 드문드문했다. 어찌 보면 안 해도 좋은 이야기다. 이 짧은 말에는 너무나 무거운 메시지가 많이 담겨 있다.      


동생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니 언니 학창 시절을 돌아보라고 했다. 나 역시 하루하루가 성적 고민이었지만 그다지 변화 없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차근차근 밟아 나가야 할 것들이 있는데 그것을 순식간에 해내기란 불가능하다.


이런저런 생각에 머물다 아이가 집밥을 좋아하는 이유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집에 머물고 싶다는 것. 한편으론 내 사랑에 대한 바람인 듯했다. 엄마가 밥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자신을 바라볼 것이라고 여기는 게 아닐는지.      


어느 날은 갑자기 너무 차가운 엄마가 되어 버린다. 그건 내 안에 흐르던 고민이 힘을 얻어서 나와 갈등하는 시간이다. 그 화살이 아이에게 향할 때도 많다. 그러나 집밥을 준비하고 식탁에 앉아서 아이의 얼굴을 바라볼 때면 내 얼굴에도 온기가 흐른다. 밥을 차리다 보면 찡그린 모습의 불편한 표정은 희미해지면서 진정된다. 


요즘 들어 사람들이 더욱 보통의 하루에 주목한다고 한다. 아이가 집밥을 찾는 것 역시 이런 범주에 들어간다. 매일이 별일 없이 지나야 그럴 수 있으니 참으로 귀한 날이다. 갑작스럽게 어려운 일을 마주할 때면 어제와 같은 을 기다린다. 그리고 돌아보면 매일이 그러한 때인데 모르고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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