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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Dec 14. 2024

호빵과 찐빵

내가 만드는 겨울 맛 

겨울 먹거리는 따뜻해야 한다. 그래야 제맛이다. 마트에 들렀다가 유통기한이 임박해서 반값 할인하는 호빵이 보였다. 잠깐 망설이다 집어 들었다. 하루만 지나면 휴일이고 식구들이 모여 앉아 하나씩만 먹어도 부족할 뿐이지 남을 일이 없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고구마 호빵을 쪄서 주었다. 냉동된 것이 아니었기에 5분 안팎의 시간을 보내면 폭신한 빵으로 살아난다. 아이는 금세 다 먹었다. 매일 사 오던 팥빵 대신 고구마가 들어간 것을 처음 경험하는 것이니 당연하다.     


내 것은 찌지 않았다. 솔직히 파는 호빵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완전히 거부하는 건 아니지만 매번 먹고 나서는 기분이 별로다. 그만큼 기대했던 것을 채워주지 못했다는 의미다. 다른 한편으론 내가 해봐야겠다는 도전 의식을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    

옥수수찐빵

시판 빵은 강하게 다가오는 단맛과 부드러움이 부담스럽다. 순식간에 달콤함에 살짝 취하다 보면 빵의 분위기를 느끼기 어렵다. 부담 없이 쑥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는 이라면 환영하겠지만 나는 다른 분위기를 찾는다.  

   

아주 오래전 찐빵을 만든 적이 있다. 난 시판 빵과 구분 짓기 위해 집에서 만드는 것을 찐빵이라 부른다. 엄마가 해주었던 막걸리가 들어간 빵이 내가 만든 첫 찐빵이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레시피를 배웠다. 엄마 빵의 핵심은 막걸리다. 빵에 술맛이 날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오히려 정감 있는 옛날 빵의 소박함과  은은한 맛이 압권이다.  


족히 십 년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다. 그 후론 번거로움 때문인지 빵을 사 먹는 걸 택했다. 겨울이 길다고 여기다가도 서너 번 호빵을 사 먹으면 이 계절이 지났다. 겨울을 맞이하면서 오랜만에 만들어 보기로 했다. 모양이 일정치 않아 투박해 보이지만 내 손을 거친 그것이 그리웠다.     


평소 빵 굽던 날 기억을 더듬으며 마지막을 오븐 대신 찜통에 직행하도록 했다. 옥수수빵이 궁금해서 통조림 옥수수를 믹서에 갈아서 반죽했다. 인스턴트이스트를 넣고 반죽이 부풀어 오르기까지 한 시간 정도가 필요하다. 둥글게 빵 모양을 만들어 두고도 다시 전과 비슷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빵에 소를 넣고 싶으면 팥이나 채소 등 원하는 것을 더하면 된다. 


가게에서 바로 사서 집에 오자마자 혹은 편의점에서 뜨겁게 쪄진 것을 바로 꺼내어 먹는 간편함은 없다. 빵을 만드는 일에 별로 흥미가 없다면 만들어 먹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내 손에서 태어난 빵을 마주하다 보면 기대감이 자연스레 부풀어 오른다. 이번에는 그동안 먹던 것과 어떻게 다른 지 궁금했다. 익히 알고 있는 맛이지만 새로운 걸 알려줄 것 같다.     

고구마호빵

두 시간을 훌쩍 넘겨야 빵을 만난다. 대 여섯 개 이상 만드는 동안 처음과 같은 마음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빵을 만들다 보면 처음에는 신이 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피곤이 밀려와 대충 할 때도 많다. 이런 걸 미리 방지하기 위해 일정한 리듬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정말 예쁘게 만들고 싶다면 평소보다 좀 더 신경 써야 한다. 모양이 별로여도 괜찮다면 설렁설렁해도 무리가 없다. 첫눈에 들어온 빵 상태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빵을 한입 먹으면 그런 기분은 눈 녹듯 사라지기 때문이다.     


집에서 만든 찐빵에는 집의 향기가 있다. 그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려는 엄마의 마음이면서 일상을 즐겁게 하려는 노력이다. 솔직히 사 먹는 게 지혜로운 방법일 수도 있다. 애쓰지 않으면서도 편하게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더욱이 마지막 수북이 쌓인 설거지에서도 해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만든 건 그만의 멋이 살아서 숨 쉰다. 누가 봐도 감탄할 만한 상당한 실력이 아니더라도 이 빵을 먹는 식구들의 칭찬이 연이어 쏟아진다. 우리 가족이 만들었다는 이해심과 고마움은 다른 이유가 끼어들지 못하게 한다. 완벽하지 않을수록 오히려 응원이 커진다.     


겨울날을 찐빵을 만들고 함께 먹으며 보낸다. 누구나 한 번쯤 그러고 싶은 계절의 풍경이다. 대단한 일은 아닐지라도 해봐야겠다는 큰 마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시간을 보내면서 지금 내 앞에 있는 어려움을 잠시 잊는다. 누군가는 현실을 피해 가는 일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힘들 때 잠깐 비켜나 있는 것도 좋다.  

    

그동안 시간은 흘러가고 이전과는 다른 좋은 생각이 들어올 수도 있다. 지금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러하기 위해 빵을 오랜만에 만들었다. 호빵과 찐빵 사이에는 닮은 것 같으면서도 다른 게 분명 존재한다. 내가 직접 뛰어든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찐빵을 준비하며 일상과 잠시 거리를 두고 여유를 만들어 간다. 그리고 작은 용기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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