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 가운데는 내가 전혀 예상하지 않았지만 뭔가 어떤 큰 힘에 의해 이뤄지는 일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어떤 이는 팔자, 운명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풀어서 우주의 기운이 나의 파장과 공명을 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을 섭리하고 부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그분이 주시는 선물과 같은 좋은 때, 좋은 타이밍, 혹은 그냥 흘러가는 시간 (크로노스)에서 의미를 건져 올릴 수 있는 때 (카이로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때)라고나 할까요. 이 선물을 받으면 고통 속에서도 견딜 힘을 얻고, 인내하다가 포기하고 싶을 때 하루 더 참을 수 있는 영적인 양식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이 때는 너무나 주관적이고 때때로 이게 좋은 선물인가 했더니 어느새 저주로 바뀌고, 반대로 ‘아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했는데 그것이 또 복으로 바뀌는 새옹지마와 같은 정말 그분의 속을 알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될 때도 있습니다. 뭐 어떡하겠습니까? 이런 하느님을 일찍이 경험하신 솔로몬 왕이 남긴 말씀으로 위안을 삼아야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도서 3:11 개역개정).
기적
지난 7월 18일 저는 여성병원에서 급한 콜을 받고 마음의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산모가 출산을 앞두고 있는데 아기가 22주밖에 되지 않아 출산 뒤 생존할 확률이 지극이 낮고, 산모가 아기의 세례를 원한다는 전언이었습니다. 도착한 병실에서는 산모가 진통을 시작했고, 그 곁에 붙은 방에서는 신생아 중환자실 의사와 간호사, 호흡기 치료사 등이 기도삽관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이런 광경을 함께할 수 없는 아주 이례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이윽고, 22주 된 아기가 엄마 몸 밖으로 나왔고 곧장 신생아 중환자실 팀이 대기하고 있던 방, 이동식 인큐베이터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신생아 중환실 여의사가 기도삽관을 시작했습니다. 성인 중환자실에서 환자가 힘들어해서 기도삽관 전에 함께 기도하며 그 광경을 지켜본 적이 있지만, 신생아의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저렇게 작은 아기에게도 기도삽관이 가능한가’ 순간 무지한 채플린의 마음이 두려움으로 휩싸였습니다. 기도삽관을 시도하는 의사도 긴장한 듯 보였습니다. 그런 탓일까 첫 번째 시도는 실패였습니다. 의사는 다른 튜브를 요구하며 저에게 기도해 달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분은 독실한 가톨릭신자였습니다. 때때로 신생아가 출산할 때 죽으면 그 자리에서 환자의 동의를 얻어 세례를 주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쨌든 두 번째 시도에 기도삽관이 이뤄졌고, 곧장 아기는 신생아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의료진들이 아기를 인큐베이터 속에 누이고 기본적인 검사를 하는 동안 저는 산모 가족들을 돌봤습니다. 산모의 어머니는 연신 ‘할렐루야’를 외치며 기적이 일어났다고 기뻐했습니다. 아직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의사도 의료진도 예상밖의 상황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저도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고 세례를 줘도 되겠다 싶어 마음을 놓고 휴식을 가졌습니다. 이윽고, 산모가 뒷수습을 마치고 걸어서 아기를 보러 왔습니다. 보통은 휠체어를 타고 병실로 들어오는데, 얼마 기뻤으면 그랬을까요…. 벌떡 일어나 걸어서 인큐베이터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아기를 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슬픔
이 기적의 시간이 끝이 난 것은 일주일 뒤였습니다. 7월 26일 수요일 새벽 콜을 받고 신생아 중환자실에 들어섰습니다. 그곳에서 간호사들과 그 사이로 보이는 작은 아기를 다시 만났습니다. 생기를 잃은 아기의 몸은 벌써 싸늘하게 식었습니다. 아기 엄마와 할머니는 이미 자리를 떠난 뒤였습니다. 전화를 했습니다. 애도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아기 엄마는 울음기가 채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목사님이 마지막 가는 길을 축복해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병실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간호사 여러 명이 뒷수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다가 축복기도를 하자, 간호자들도 함께 참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물로 아기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000에게 세례를 줍니다. 아멘”
지난 일주일 동안 아기 엄마는 이곳에서 아기와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을 것입니다. 000가 단지 일주일 정도 밖에 이 세상에 살지 못했지만, 그는 그의 엄마와 할머니 다른 모든 가족들, 그리고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만큼 우리는 실망하고 슬퍼했습니다. 하지만, 기적 같은 출생, 7일간의 생존의 의미를 이 일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상황에 맞게 찾게 되기를 기원했습니다.
희망
의미를 찾기 원하는 기도를 한 때문이었을까요 그렇게 믿고 싶네요. 지난 2일 뜻밖의 일로 저는 새로운 힘을 얻게 됐습니다. 여느 때와 다르게 이번 신생아의 죽음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더 무거워지는 듯했습니다. 보통은 일주일 정도 지나면 플래쉬백이라고 부르는 회상 장면도 사라지는데, 이번 경우는 죽은 신생아의 모습이 제 뇌리를 잘 떠나지 않았습니다. 잠을 못 이루거나 일상에 지장이 있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휴식을 취할 때나 다른 환자들의 죽음을 대할 때 다시 생각이 나는 겁니다. 그리고, 신생아 중환자실 방문이 좀 꺼려졌습니다. 하지만, 일은 해야 하니 방문을 거를 수는 없었죠. 이 날은 특히 완화의료 수업을 선택한 의대 4학년 학생이 저를 따라다니며 병원 채플린이 하는 일을 관찰하는 실습시간이었습니다. 이 학생과 함께 처음 방문한 장소는 산모들이 출산 뒤 몸을 추스르고 아기들을 돌보는 병동이었습니다. 병실문을 열고 들어가 소개를 했습니다. 산모와 가족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때마침 그곳에는 울긋불긋한 손목 리본과 머리띠를 한 예쁜 아기가 사진촬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카메라를 보며 연신 방긋방긋거리는 아기가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럽던지요, 같이 동행한 의대생과 저는 넋을 놓고 그 '신생아 모델'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기 아빠가 입을 열었습니다.
“목사님, 정말 기적과 같은 아기입니다.” 자초지종을 물어봤습니다. 아기 아빠는 제 질문에 23주에 조기 출산해서 병원에서 쭉 지내다가 이제 건강하게 퇴원하게 됐다는 겁니다. ’ 23 주라…’ 아기에게 축복기도를 해주고 다시 그 아기를 바라보았습니다. 새파란 눈에 하얀 볼, 통통하게 살이 오른 손등, 그리고 주변에 둘러보며혀를 오물거리고 저를 보며 방긋 웃었습니다. 순간, 제 가슴속에 뭔가 뭉쳐있던 것이 풀리고, 어둡고 침침했던 한 장면이 마치 흑백 tv에서 컬러 tv의 장면으로 바뀌는 듯한 생각인지 느낌인지 알 수 없는 오묘한 체험을 햇습니다. 그리고, 한 장면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얼마 전 마주한 22주에 태어나 23주에 생을 마감했던 000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슬프거나 힘들지 않았습니다. 왜냐고요, 그 아기는 더 이상 죽은 아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품에서 영원히 살아 있는 아기이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체온과 색깔을 주님 앞에서 다시 찾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고 있던 살아 있는 아기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저는 믿게 되었습니다. 병실을 나와서 잠시 의대생과 이야기를 나눈 뒤 제가 겪은 전후의 일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학생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도 믿는 사람입니다. 그 아기가 영원히 살아 있다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