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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석 Mar 31. 2024

부활절에 다시 쓰는 고백록

2024년 부활절 묵상


부활의 아침입니다!

안식 후 첫날, 부활을 처음 목격한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요 20:1) 베드로와 요한 등 사도들에게 제일 먼저 그 소식을 전한 사도들의 사도였죠. 여성이고, 그 출신과 업적에 대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복음서는 이렇게 작은 사람, 낮은 사람 그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낮고 비천한 사람들을 주목합니다. 오늘날 세상과는 완전히 다르죠. 그 이유가 뭘까요?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그들의 연약함 속에서 일하시길 원하시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지은 원죄로 인해 이 세상은 부조리와 불평등과 혐오와 차별이 일상이 되어 버렸죠. 모두가 내 안전을 자기 힘으로 지켜야 하는 위험시대, 즉 하나님 부재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의 당연한 말로죠. 그러나, 하나님은 창세 전부터 이 인류의 이기적인 병을 고치기 위해 이 기울어짐과 어둠을 균형과 충만한 빛으로 회복하기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 이해할 수 없는 영원한 사랑이 이 땅에서 우리가 인식할 수 모양으로 나타난 사건이 바로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사건입니다.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낮고 비천한 자리에 누우신 하나님 아들, 그러나 그의 낮아짐이 그의 지극한 높으심의 이유가 될 줄은 귀신도 몰랐죠. 이렇게 여인의 후손의 발뒤꿈치가 상하므로, 우리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능력의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은혜로 말이죠, 선물로, 수지맞았죠!


부활은 여전히 믿기 힘든 사실이지만 예수님의 삶과 그분을 통해 드러나는 성부 하나님의 말씀이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너무나 정교하기 상호연결,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 부인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아담을 깊이 잠(성경에서 잠은 많은 경우 죽음을 상징합니다) 들게 하시고 그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성을 만들고, 그 여성과 아담이 연합하여 하나를 이루게 하시는 이야기가 단순히 결혼제도의 기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엡 5:31-32)고 합니다. 그럼 뭐냐, 십자가에 달린 채 창에 그 옆구리가 찔려 물과 피를 쏟으신 예수님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신부인 교회가 탄생하고, 그 분과 연합(Union of Christ)하는 구원을 암시하는 그림이라는 것이죠. 저도 처음에는 좀 지나치게 풍유적인 해석처럼 보였는데 이제는 자명해 보입니다.


2024년 부활절 아침입니다. 전대미문의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며 저는 신앙적으로 시험에 빠졌습니다. 수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나도 모르게 냉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멀어지게 된 하나님은 어느새 내 아버지가 아니라 이웃집 아저씨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다시 성경을 공부하면서 저의 연약함을 말씀을 통해 어루만져주시는 주님 앞에  다시 무릎을 꿇습니다. 저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받아 주신 주님은 코로나 때나 지금이나 성경을 통래 동일하게 말씀하시고 계셨는데 저는 주님이 제게 침묵하고 계시다고 불평만 하고 있었네요. 부끄러움은 왜 항상 제 몫일까요!


사랑하고 뵙고 싶은 주님,

이제 말로만 하는 종교놀이 그만하겠습니다. 이해될 때만 믿고 이해 안 될 때는 삐지고 불평하는 일도 이제 그만하렵니다. 병원에서든 밖에서든 진짜 신앙생활 해볼게요 코끝에 호흡이 다하는 순간에 영원한 행복과 불행이 판가름 난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 주세요. 그래서, 오늘 지금 이곳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일, 즉, 공의를 이루고, 자비를 행하고, 겸손히 주님과동행하며 화평케 하는 일에 진심을 다하도록 주의 영을 충만하게 부어 주세요. 아멘!

perfect submission, perfect de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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