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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말이 Feb 16. 2020

잔소리에도 지혜가 필요하다.

소심이의 사랑 이야기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할 정도로 편한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하면 서서히 상대의 흠도 보이기 시작한다. 친구와 술을 너무 자주 마신다거나, 게임을 많이 한다든지, 돈을 계획 없이 막 쓰는 것과 같은 미처 보지 못했던 안 좋은 모습들이 그제야 보이는 것이다. 나의 연인은 근래에 가장 신경 쓰이는 사람이고, 가장 관심 가는 사람이다. 그 사람의 행동, 말투 하나하나가 눈과 마음에 꽂힌다. 머리에도 박힌다. 그 사람의 이해 안 되는 행동, 잘못된 행동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들처럼 쉽게 흘러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상대의 안 좋은 습관들이나 행동들이 손톱 밑의 가시 같이 느껴진다.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사랑을 시작했고 결점 같은 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작은 흠이지만 나에게는 가장 거슬리는 아픔이 된다. 다른 사람들을 대하듯 쉽게 넘어가지지 않는다. 꼭 간섭하고 싶고 잔소리가 자꾸 목 끝까지 차오른다.

             

 하지만 소심이들은 그런 간섭에 상대가 관계를 부담스러워할까 봐 속으로 삼키는 경우가 많다. 늘 술에 취해 집에 늦게 들어가는 연인에 대한 불만은 쌓이지만 화를 내지 못한다. “답답하게 왜 그래?” 같은 질문이 돌아올까 봐 무섭다. 하지만 한 번 눈에 들어온 상대의 흠은 머릿속에 맴돌면서 부정적인 사고로 전파된다. ‘저런 행동들 때문에 우리 관계가 흔들리면 어떡하지?’ 혹은 ‘관계를 이어나가는데 걸림돌이 되진 않을까?’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간섭 같아도, 집착 같아도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그런데 싸움이 될까 봐 말은 못 하겠고 답답하다. 쌓아두면 곪고 곪다 보면 병이 되는 법인데 언제 가는 병이 되겠구나 싶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 간섭하고 싶은 마음과 관계를 평안히 유지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한다.

           

 소크라테스의 부인. 크산티페는 악처로 유명하다. 돈을 벌어오지 않는다고 구박을 하고 물을 뿌리기도 했다. 소크라테스 조차 “젊은이여, 결혼하라. 좋은 처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고 , 악처를 얻으면 철학자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자신이 악처를 얻었기에 철학자가 될 수 있었다는 식의 농담이다. 하지만 사실 크산티페의 사정을 들어보면 악처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당시 아테네에서는 현재와 같은 유료 강연이 없었다. 책을 출간해도 베스트셀러로 많은 인세를 얻지도 못했다. 하지만 늘 철학을 논하느라 사람들만 만나며 돈을 벌어오지 않는 소크라테스를 남편으로 맞은 크산티페는 소크라테스가 내팽개친 석공 소를 운영하고, 집안 살림까지도 도맡아 했다. 돈도 벌고 집안일도 크산티페가 모두 해낸 것이다. 그런 아내가 남편에게 바가지를 좀 긁었다고 악처로 평가받는 것은 크산티페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도 끝까지 결혼 생활을 유지했던 것 같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에게나 흠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장점도 있으며, 사랑스러운 면모도 가득하다. 누구나 악처로 생각했던 크산티페는 소크라테스가 돌보지 않는 가정을 혼자서 책임졌다. 소크라테스는 아내의 표면적인 흠보다 더 큰 장점들을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도 결혼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도 소크라테스와 같은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지금 보이는 상대의 흠이 내가 받아 들일만 한 것인지, 평생 받을 스트레스의 원흉이 될 것인지 가늠해야 한다. 수긍할만한 흠이라면 그것에 대해서는 평생토록 말을 아끼자. 그 정도의 흠은 상대도 나의 것을 참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판단되는 흠이라면 즉시 상대에게 말해야 한다. 수긍하지 못하고 참다 보면 결국 곪아 병이 된다. 처음에는 작은 혹이었는데 나중에는 암이 된다. 고요한 밤을 헤치기 싫어 고통의 비명마저 참을 수는 없는 것이다. 때로는 오랜 평화를 위한 잠깐의 갈등도 필요한 법이다.

          

 연애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상대의 흠이 보이기 시작할 때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보다 이성의 냉철함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흠을 극단적으로 키우거나 반대로 작게 만들어서 좋은 사람을 놓치거나 좋은 사람인 줄 알고 오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 사람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더라도 내 사랑을 지키고, 내 사랑의 순간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흠의 크기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용기를 갖추어야만 나의 사랑과 시간을 지킬 수 있다. 소크라테스만큼 대단한 철학자는 못 되더라도 나의 사랑과 상대에 대한 철학은 꼭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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