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랑하늘 Jan 08. 2025

요구가 너무 많은 세상

지난 토요일 약속이 있어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습관적으로 고개를 들어 스크린을 봤다. 지하철이 언제 오나 확인하고 싶었을 뿐인데, 도착 예정 안내와 함께 지하철에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한가득 떴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5-10개 사이였던 것 같다. 이내 지하철을 타고 운 좋게 앉아 무심결에 올려다본 스크린. 이번에는 임산부 좌석에 대한 내용이 나오며 어떻게 하라는 내용이 또 연속적으로 촤르르 떴다. 지하철 한 번 타는데 참 하지 말아야 할 것도 해야 할 것도 많다.


그런데 비단 지하철뿐이던가. 휴대폰 속 세상은 더더욱 가관이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은 절대 하지 마세요(자매품: OO 하려면 꼭 해야 할 n가지)'라는 제목이 넘쳐난다. 관심을 끄는 제목 한 두 개를 클릭해 읽을 때까지는 '오. 꽤 유용하네~' 싶기도 한데, 몇 개가 넘어가면서부터는 '해!'와 '하지 마!' 지옥에 빠진듯한 느낌이다. 수많은 요구들에 진절머리가 나 금세 기분을 풀어줄 음악을 플레이시키고 화면을 끈 후 눈을 감는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런 무지막지한 정보 지옥 세상이 된 건. 분명 어릴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오히려 일반 시민이 접할 수 있는 정보가 턱없이 부족한 세상이라 웬만한 정보라면 힘이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원하지 않아도 강제적으로 제공되는 정보들에 아주 숨이 막힌다. A는 그걸 안 하면 큰일 난다고 말하는데, B는 그걸 하면 큰일 난다고 말한다. 어디서 나타난 무수한 C, D, E 등은 어차피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으니 공부해야 한다며 자신의 강의나 책을 권한다. 요지경 속이다. 비판적 사고를 하는 데도 정도가 있지. 하다 하다 과부하가 걸린다. 차라리 안 보고 말지! 

 

이쯤 되니 나도 (정보를 가장한) 요구 지옥에서 살 길을 찾는다. 그런 제목은 어지간하면 클릭하지 않는다. 그런 이상한 정보를 접할 바에는 차라리 예능이나 연예 기사를 보거나 노래를 한 곡 더 듣는 게 정신건강에 훨씬 낫다. 그럴싸한 제목에 낚여 클릭해 봤자 별 볼일 없는 내용인 경우가 많다. 눈만 아프지. 눈에 보이니까 아무 생각 없이 안 궁금했던 걸 클릭하는 건 이제 그만뒀다. 대신 궁금한 게 있으면 되도록 AI에게 물어본다. 각각 다른 의견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니 좋고, '~는 꼭 해', '~는 절대 하지 마' 요구를 하지 않아 사람의 불안 심리를 건드리지도 않는다.


이것도 해야 되고 저것도 해야 되는데 시간은 없고. 남들은 나보다 부지런해서 다 하는 것 같은데. 근데 난 어릴 때부터 시간이 아닌 효율로 살았잖아. 남들한테도 효율 좋단 말을 자주 들었고. 나만 뒤처지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과 내가 가진 강점에 사로잡혀 닥치는 대로 효율을 쫓다 보니 뭐라도 도움이 될 것 같은 그런 제목들에 더 눈이 갔었다. 그런데 허전하다. 분명 뭔가 하긴 하는데 알맹이를 놓치는 것 같다. 완전히 내 걸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겉만 훑고 넘어가는 느낌.


적어도 내가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한해서는 내가 사유하고 나만의 답을 내리며 한 발 한 발 가야겠다.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해도. 


알고리즘이나 광고를 통해 어떻게든 나에게 침투하려는 외부의 요구들, 흥칫뿡. 이젠 안녕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