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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랑하늘 Feb 12. 2024

시월드가 없다.

명절 정도는 챙길 의향이 있었는데

브런치의 단골소재, 시월드. 특히 명절 전후로 이에 대한 글이 폭발하는 것 같아 나도 한 번 적어보려 한다.


나는 엄연히 시댁이 존재하고 있지만 - 친정보다도 가까운 곳에 - 마치 없는 것처럼 생활하고 있는데, 남편이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댁과 연을 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남편은 처음 만난 모임 자리에서부터 부모님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얘기했다. 남의 가정사엔 딱히 관심이 없어 내가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뿐. 다 큰 성인이 그런 얘길 한다는 게 미성숙해 보였지만 그 주제의 얘기만 칼 같이 끊기는 어려워 만날 때마다 조금씩 들었다. 그러다 보니 가정사에 대해 꽤 많이 알게 되었고, 그러면서 부정적인 감정이 지속되는 것 자체는 이해가 됐다. 그래서 '그래도 부모님인데' 같은 소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부모님이면 끊어야지.' 같은 소리 역시 마찬가지고.



결혼 준비를 시작하면서 '부모님'이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남편은 애초에 부모님과 결혼식을 같이 의논한다는 전제가 아니라 부모님이 결혼식에 끼어든다고 생각했고 그걸 탐탁지 않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우선 그분들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끼친 게 아니기에 무조건 거부할 이유도 명분도 없었고, 어쨌든 남편을 존재하게 한 점에 대해서는 감사의 마음이었으며, 가능하다면 부모님과 못 지내는 것보다는 잘 지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더도 덜도 말고 딱 내가 할 수 있는 범위까지는 행동하기로 했다.


양가 인사 전 시어머니가 나를 먼저 보고 싶어 하신다고 해서 기꺼이 그렇게 했다. 조용한 장소가 마땅치 않아 당시 남편과 오랜 시간을 보내던 아지트에서 뵈었다. 조그마한 공감에 눈물을 흘리셨고, 부모님 모두 남편과 잘 지내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고, 새로운 구성원(=나)을 계기로 관계가 나아지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인사를 갔을 때 결혼 방식에 대한 이야기로 조금 이슈가 있었고, 이후 몇 번의 마주침 속에서 은은한 갈등이 번졌다. - 물론 나와 시부모님이 아닌, 남편과 시부모님 사이에 - 그러다 우여곡절 속 치른 가벼운 상견례를 끝으로 결국 남편은 부모님과의 절연을 선언했다.



부모-자식 간의 서사에서 나는 제삼자일 수밖에 없고, 그 정도 지지고 볶으며 내린 결정이라면 존중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알겠다고 했다. 30년 이상 쌓아 온 그들만의 역사에 내가 무슨 권리로 끼어들고,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진 않았다.  



- 갑자기 떠올라 이쯤에서 여담 하나 -

나와 대화를 나누며 남편도 울고 시어머니도 울고 시누이도 울었다.

내가 전문 상담가도 아닌데. 오랜 기간 직업적으로 행한 부모 상담의 영향일까?

그 정도의 대화만으로도 각자의 한이 터져 나왔나 보다.

(이런 일이 생길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나와 독대를 하면 시아버지도 우시려나.






이런 연유로 나에겐 시월드가 없어 명절 연휴에 완전히 자유다.


평소보다 배달 음식점 선택권이 적다는 게 불만이라면 불만이고, 설날 아침엔 남은 피자와 콜라를 먹으며 게으르게 쉬었다. 대체 공휴일인 오늘은 명절 음식이 생각나기도 하고 무료하기도 해서 친정에 가서 떡만둣국, 녹두전, 동태전, 갈비찜을 먹고 왔다.


북적이는 걸 무척 싫어해 막상 대가족이 모여 명절을 보낼 땐 얼른 집에 가고 싶었는데, 결혼을 하고 아주 적막한 명절을 보내게 되니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친정에 갔다. 하지만 반가움을 나누고 조금 있으니 또 조용한 우리 집이 그리워져서 금방 돌아왔다. 역시 모순적인 인간이라 생각하며 연휴를 마무리 하는 지금, 참 편온하다. 



평화로운 설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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