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교회 순례기 10 라오디게아
라오디게아는 교양이 넘친다. 흥분해서 감정의 균형을 깨트리거나 지나치게 타인의 일에 간섭하는 일도 없다. 말소리며 걸음걸이, 인상마저도 칭찬 일색이다. 집안도 부유하여 가족 모두가 고등교육을 받았고 사회적 지위 또한 높다. 맘에 들지 않는 선물은 정중히 거절하면서도 상대방의 기분을 묘하게 상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그렇다고 값비싼 선물을 드러나게 좋아하지도 않는다. 당연히 그 정도 선물은 받을 만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라오디게아를 아는 사람들은 경박하게 화려하지도 않고 누추하게 어둑하지도 않은, 연하고 부드러운 중채도의 태도에 언제나 감탄한다. 우아하고 교양 넘치는 그 삶에 대한 찬사만큼이나 누구에게나 무관심하고 매사에 자기중심적인 이면을 보는 눈도 적지 않다. 어떤 평가에도 라오디게아는 흔들리지 않는다. 자기만족에 도취해 있는 자만이 취할 수 있는 반응이다.
매년 성탄이면 이곳저곳 기부하는 금액이 적지 않다. 도움받은 이들의 감사 편지가 우편함에 쌓이고 그 겉봉은 뜯기지 않은 채 쓰레기통으로 옮겨진다. 어려운 이웃들의 사정이 방송을 타고 흘러나오면 자동적으로 채널을 돌린다. 언젠가 그 이유를 들었다. "난 그런 사정을 듣는 게 너무 힘들어. 뒤틀린 얼굴과 가련한 목소리를 참으면서 보고 들을 의무는 없잖아, 불편하면서까지. 그렇지 않아도 도움을 줄텐데..." 틀린 말은 아니다. 꼭 손을 잡고 안아 주지 않아도 얼마든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 성탄 축제에 맞춰 새롭게 구두를 장만해야 하는 라오디게아는 시간을 내 백화점을 찾는다. 발에 꼭 맞는 크기와 맘에 드는 색감과 질감을 찾아 진열장의 상품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신어 본다. 재어 보지 않은 아이의 발엔 새 신발이 조금 작다. 그래도 아이는 신에 발을 맞춰 구겨 넣는다.
고요하던 집안에 작은 소동이 일어난 것은 아이의 정직함 때문이었다. 부모를 닮은 아이는 영리했다. 하지만 비열한 수단과 방법을 그럴듯한 목적으로 잘 포장해 내는 법을 배우기엔 아직 어렸다. 그래서 솔직하게 자신의 실수를 밝히고 그에 응당한 결과를 받아들였다. 그것이 문제였다. 라오디게아는 정직해서 성공하지 못한 아이에게 분노했다. 충분히 감추고 이길 수 있는 게임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 못마땅했다. 이번에도 게임의 규칙은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다. 규칙을 어긴 아이는 혼란스럽다. 정직한 실패는 비난받고 부정한 성공은 칭찬받는 어른의 세계가 불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도 그 규칙에 익숙해져 갈 것이다. 아이에게 부모는 부요하고 교양 넘치는 그들의 세계를 입혀 주어야 한다. 때로는 아이의 흰 옷이 눈에 거슬린다. 그러면 비싸고 질 좋은 염료를 사서 정직하나 초라한 그 옷을 잘 포장해 주면 된다.
라오디게아 언덕 저편에 펼쳐진 풍경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새하얀 석회층은 뭉게뭉게 떠다니는 구름층과 쌍을 이루고, 에메랄드 빛깔 호수는 이들의 변화무쌍한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다. 경이로운 풍경 뒤로 돌아가면 거대한 무덤군이 뜨거운 태양 아래 펼쳐진다. 생전 호사로움을 자랑하듯 무덤의 크기나 형식도 대단하다. 그렇다한들 무덤에 누운 자는 말이 없고 곳곳에 열린 석관은 죽은 자의 육체마저 벌거벗겼다. 여기 죽은 자들의 거대도시는 저 멀리 라오디게아를 비추는 듯하다. 어쩌면 이 거울 이미지가 라오디게아의 진본인지도 모른다. 그토록 고상하고 품위 있던 형식적 삶을 도굴꾼들이 낱낱이 파헤쳐 놓았고, 그것이 바로 성스러운 도시-히에라폴리스-라는 이름의 뒷면이다. 무덤의 잔해들을 뒤덮는 무더위를 피해 순교자의 기념교회 아치문 그늘에 잠시 기대어서 사는 날 동안 한 순간도 라오디게아의 식탁에 함께 앉을 수 없었던 한 사람을 떠올린다.
그 사람 나사로에게 진실하신 그리스도가 말씀한다. "네가 내 보좌에 함께 앉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