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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Jan 29. 2023

생각과 감정보다 더 깊은 곳에

  스타벅스에 앉아 논문을 하나 읽으면서 딴 짓. 이사 온 아파트의 주차공간이 매우 협소하여 주차하는 영상같은 걸 보다가 나왔다. 사고 내지 않고 잘 살 수 있을까, 걱정했다. 차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며 집에 와서는 차에 있는 짐들을 집 안으로 들였다. 춘천 사무실에서 가져 온 짐이 아직 차에 있었기 때문이다. 짐을 집에 들이고 정리했다. 조금이나마 정리하니 훨씬 기분이 나아졌다.

  편의점에서 사 온 김밥과 오전에 끓여둔 만두계란국을 저녁으로 먹었다. 간단하지만 맛있어서 또 기분이 나아졌다. 설거지를 하며 남은 짐들은 어떻게 정리하고 보관해둘까 생각했다.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정리에 대한 압박을 가지지 말자. 정리해도 되고, 안 해도 돼... 하면서 나를 달랬다.

  세수를 하고 몸에 난 염증들에 연고를 발랐다. 베드 버그에 물린 지 24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가렵다. 얼룩덜룩한 몸을 보니 속상하다. 듣고 있던 팟캐스트도 끄고 다시 논문을 읽기 위해 앉았다. 영성치료에 대한 논문이었다. 고요했다. 옆 집의 TV 소리가 약간 웅웅 들렸다.

  고요해지니 비로소 내가 혼자 있구나, 라는 게 느껴지고 얼마 전 헤어졌던 사람이 보고 싶었다. 연락하면 안 되지! 하며 참는데 갑자기 너무 힘이 들어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뭐해요?" 

  "아기 밥 먹이고 있어. 무슨 일 있어?"

  "언니, 제가, 힘, 힘... 힘이..."

  "힘들어?"


  힘드냐는 말에 겉잡을 수 없이 눈물과 콧물이 나왔는데 말은 잘 나오지 않았다. 


  "수, 숨을 잘, 숨을 잘..."

  "잠깐만. 호흡해봐."


  상담사였던 언니는 나를 진정시키며 호흡하게 했다. 그 때서야 의식적으로 숨을 쉬는데 마치 오래 잠수를 하고 있다 뭍에 나온 것처럼 헐떡 거렸다. 


  "비닐 봉지 가져와서 숨 쉬어봐."


  전화를 끊고 두 손을 모아 입에 댄 채로 숨을 쉬었다. 머리에 피가 도는 듯 지릿지릿했다. 헐떡거리며, 이건 거의 울부짖듯이, 숨을 쉬었다. 눈물이 멈추지가 않았다.


  "언니, 내가 불안한가봐요."

  "그런가봐."

  "갑자기 너무 혼자라고 느껴져서..."


  서로 별 말은 하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 아기가 울고 보채는 소리들, 장난감에서 나오는 소리들이 시끄러웠고 그 소리에 좀 안심이 되었다.


  "사는 것 같아요. 시끄러운 소리 들으니까 사는 것 같아요. 제가 요새 자살 생각을 많이 했는데, 진짜 제가 죽을까봐 걱정돼요.... 아마 안 죽겠죠. 안 죽을건데... 이러다 죽을까봐..."

  "너 집 주소 알려줘봐."


  누군가와 통화한 것만으로 좀 나아졌다. 어떤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결 안심이 되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내가 죽는다고 해도 이 사람은 잠깐 슬프고, 혹은 오래 슬프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살예방센터에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그냥 전화를 끊었다. 다시 논문을 읽었다.  





출처: 김정규, 게슈탈트영성치료의 다각적 이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고, 약간의 신체 손상을 입었고, 재산상의 큰 손해가 발생했다... 지인들에게는 단편적으로 얘기하고 있었지만 내 고통은 여러 건의 내용들이 얽히고 섥혀 있는 듯 하다. 상담 선생님 떠올리면 또 내 생각을 고치려고(?) 할텐데 고쳐지기 위해 상담에 가고 싶지 않다. 같이 있어줬으면 좋겠다....





(김정규, 게슈탈트영성치료의 다각적 이해) 우리는 구름이 나인 줄 잘못 알고 산다. 그런 삶이 너무나 고단하다. 그것들이 뭉쳐지면 불편한 감정이 되고, 더 단단하게 다져지면 고통체가 되어 나를 찌르고 타인도 찌르고, 자연도 파괴하고, 그러다 극단적인 선택도 하게 만든다.


영성치료는 나를 찾는 작업이다. 구름을 벗어난 밤하늘의 달을 쳐다보라. 얼마나 신비로운가. 구름 사이로 잠깐잠깐 푸른 하늘이 나타나는 것을 보라. 아무 생각 없이 잠시 그냥 보라. 그곳이 참나의 자리이다. 생각과 감정보다 더 깊은 곳에 변치 않는 나가 있다. 그것은 감추어져 있지 않다. 항상 거기에 있지만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생각과 감정보다 더 깊은 곳에 변치 않는 나가 있다. 이 말이 나를 누그러뜨린다. 고유한 나. 변치 않는 존재. 내가 돈, 타인, 몸, 혹은 내 감정과 생각을 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살아갈 만하다. 내 존재로써 의미가 있다면 숨 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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